[시론] 시대 뒤처진 전자금융거래법, 손볼 때 됐다

2021. 9. 2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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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금융산업 분야에서 최근 수년간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핀테크(Fin Tech)의 등장을 꼽을 수 있겠다. 디지털 기술을 금융에 활용하는 핀테크는 금융서비스를 쉽고 편리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결혼식장에 가지 않고도 모바일 메신저로 축의금을 보낼 수 있고, 은행 창구에 가지 않더라도 금융 플랫폼을 통해 금융 상품을 비교하고 가입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핀테크 덕분에 토스 같은 유니콘 기업도 탄생할 수 있었다. 간편 송금 서비스를 시작으로 금융플랫폼으로 도약한 토스는 인터넷은행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탄탄한 고객 기반과 데이터를 갖춘 네이버·카카오 같은 빅테크들도 금융업에 진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자극받은 금융회사들은 앞다퉈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산업에서 가장 큰 폭의 혁신과 경쟁이 현재 진행 중이다.

「 법이 금융산업 현실을 못 따라가
금융 혁신과 소비자 보호 절실해

그런데 빅테크와 핀테크의 금융업 진출이 활발해질수록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빅테크나 핀테크는 현행법상 금융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금융회사와 같은 높은 수준의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는다. 금융회사들은 이들이 금융 업무에 관여하면서도 동일한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들이 금융플랫폼을 통해 금융 상품을 구매하더라도 플랫폼을 운영하는 빅테크나 핀테크에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 법적으로 금융 상품을 판매한 것은 금융회사이고, 금융플랫폼은 금융 상품의 광고를 해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도 최근 금융플랫폼의 일부 행위에 제동을 걸면서 금융 규제 체계에 들어올 것을 요구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이나 핀테크의 등장은 좋은 면만 있는 것도, 나쁜 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현행 법 제도가 금융산업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빅테크나 핀테크를 규율해야 하는 전자금융거래법은 2006년 제정된 이래 지난 15년간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아이폰이 미국에서 출시된 것이 2007년, 카카오톡이 등장한 것이 2010년, 토스가 출범한 것이 2015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 당국은 수년째 가이드라인이나 법령 해석을 통해 땜질식으로 전자금융거래법을 운용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간편결제나 송금을 위해 기업에 맡긴 예탁금은 최근 2조원까지 늘었다고 한다. 이 돈은 당연히 소비자의 것이다. 그런데 간편결제 업체가 이 돈을 임의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 기업이 파산하면 소비자는 자신의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금융 당국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실제 분쟁이 발생하면 가이드라인만으로 첨예한 법률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핀테크 산업도 마찬가지다. 2006년 전자금융거래법은 자금 이체용으로 전자자금이체업 라이선스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간편 송금은 본래 상품을 사기 위해 맡겨놓은 선불충전금을 이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이는 금융 당국의 적극적인 법 해석이 없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다. 현실에 맞지 않는 과거의 법 때문에 핀테크 기업들이 제2의 토스로 성장하는 데에 장애가 되지 않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스마트폰도 메신저 앱도 금융플랫폼도 없던 15년 전에 만들어진 법을 갖고 금융 소비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금융산업의 혁신을 외치는 것은 마치 칼 한 자루를 주고 현대전에 나가서 이기라는 것과 비슷하다. 그 피해는 금융 소비자와 유니콘을 꿈꾸는 젊은 혁신가들에게 갈 수밖에 없다. 여러 당사자가 이해관계를 조금씩 조정하고 지혜를 모아 하루속히 디지털 금융기본법인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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