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오상욱 인터뷰③] 김정환 "강하게 키운 오상욱, 세계 1위 되더라"

배영은 2021. 9. 22. 15: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쿄올림픽은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세계적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한 무대였다. 명승부 끝에 금메달을 딴 김정환(38), 구본길(32), 김준호(27), 오상욱(25)은 귀국과 동시에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과 광고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 사이 두 차례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국내 대회에 나가 1~3위를 휩쓸었다. 실력과 외모, 인기를 모두 갖춘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다.

13세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 같은 호흡을 자랑하는 '어펜저스' 맏형 김정환(왼쪽)과 오상욱. 정시종 기자


이들 중 맏형 김정환과 막내 오상욱을 대표로 만났다. 둘의 나이는 13세 차. 김정환은 "오상욱의 중·고교 은사들이 나보다 후배"라며 웃었다. 그럼에도 나이의 간극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놀리며 장난을 치고 폭소를 터트렸다. 같은 반 친구처럼 완벽한 '케미(케미스트리)'였다.

그러다 펜싱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을 때는 나란히 눈빛부터 진지해졌다. 오랜 시간 축적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한 선배와 그 자양분을 온몸으로 흡수해 더 크게 자라난 후배의 조화. 혼자서도 충분히 강한 김정환과 오상욱은 함께 있어 더 강해보였다.

-두 선수 스타일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김=공룡으로 치면 저는 육식 공룡 티라노 사우르스, 상욱이는 초식 공룡이에요. 종 자체가 달라요. 물론 초식 동물만의 장점도 있죠. 하지만 '초식 동물이 고기도 먹으면 좋은 점이 더 많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얘기하게 돼요. '근성'이라는 건 쉽게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는 게 아니라 승부나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거거든요. 저도 '김정환' 하면 늘 믿을 수 있는 선수가 되려고 훈련 때부터 늘 신경을 최고조로 곤두세워요. 훈련을 경기 같이, 경기를 훈련 같이 하려고 하고요. 물론 이런 저 자신이 가끔은 싫을 때도 있어요. 늘 몸이 뜨끈뜨근해서 오래 못 살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상욱이는 정말 오래 살 거예요. 혈압을 높일 일이 없거든요.
오=형, 제가 나중에 잘 보살펴 드릴게요.(웃음)
김=간병하러 올래?(폭소)

-오상욱 선수도 이런 근성의 영향을 받았겠네요.
오=2016년에 세네갈로 국제대회를 갔는데, 단체전에서 저 때문에 졌어요. 그 당시 제가 따라 들어가는 동작을 잘 못해서 그런 일이 잦았거든요. 그때 형이 외국 선수들도 다 있는 데서 '너 지금 (잘 안되는) 그 동작 100번 해' 하더라고요. 경기에 져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저에게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김=경기장에서 피스트에 서 있던 상욱이한테 '너 이리 내려와 봐' 했죠.(웃음)
오=다른 선수들은 별로 신경 안 썼겠지만, 저는 남들이 다 보는 데서 그 동작을 반복하는 게 솔직히 조금 창피했어요. 그런데 그 후에 조금씩 잘 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됐다' 싶은 느낌이 오더라고요.
김=결국 그 기술이 오상욱을 세계랭킹 1위에 올려놓은 주 무기가 됐어요. 저도 과거에 가장 못했던 동작이 지금 저의 주된 기술이거든요. 운동 선수가 자신 없는 기술을 회피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내 팔다리도 멀쩡한데 남들 다 하는 게 안 될 리 없다. 될 때까지 해보자' 생각해야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고요. 그래서 저도 상욱이한테 '남들이 보든 말든 100번 해' 한 건데, 어느 순간 그 동작을 저보다 잘하고 있더라고요.(웃음)

13세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 같은 호흡을 자랑하는 '어펜저스' 맏형 김정환(왼쪽)과 오상욱. 정시종 기자


-'어펜저스' 인기 덕에 펜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 같아요.
김=주변의 펜싱 선후배들이 직접 운영하는 펜싱 클럽이나 동호회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연락을 많이 주세요. '너희들이 큰일 하고 있다'면서요. 저희한테 맛있는 밥이라도 사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와서 사인회 좀 하라'면서 더 활용하려는 분위기입니다.(웃음) 저희가 펜싱 인기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죠.

-최근 열린 두 차례 국내대회에서도 '어펜저스' 멤버가 1~3위를 휩쓸었죠.
김=동생들에게 '우리가 펜싱으로 계속 결과물을 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세계 1등을 하고 와서 박수를 받았는데, 국내 경기에서 1등을 못하면 반대로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고요. 국내 대회 잘 치러서 '도쿄올림픽 매듭을 잘 짓자'고 했는데, 완벽한 매듭을 지었네요. 앞으로는 국제대회에서도 우리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가야죠. 그래야 저희가 지금 받는 사랑도 떳떳하게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꼭 한 번 말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나요.
김=저희가 요즘 방송에서 실제 모습의 95% 정도를 보여드리고 있어요. 다들 펜싱 외에도 재주가 많은 친구들이라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면 좋을 것 같아요. 방송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곧 펜싱 대중화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세 번의 올림픽을 겪어본 선수로서, 지금의 관심이 '역대급'이라고 느껴요. 앞으로는 펜싱이 '반짝 올림픽 특수'에 그치지 않고, 평소에도 꾸준히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종목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펜싱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1순위겠죠. 펜싱도 이렇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는 종목이라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오=도쿄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할 때, 럭비 대표팀 선수들과 같은 비행기를 탔어요. 공항에서 저희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인터뷰하고,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서 축하도 받았거든요. 그런데 럭비 선수들은 저희 때문에 안에서 10분간 대기하고, 나와서도 사진 두 장만 찍고 집에 가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그 선수들이 흘린 땀이 저희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있거든요. 저희가 이렇게 관심 받고 인기도 얻는 건 당연히 정말 감사하죠. 그와 동시에 금메달은 못 땄어도 정말 값진 땀을 흘린 다른 종목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김=맞아요. 저희 역시 과거에는 럭비 대표팀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지금 상황이 어려운 여러 종목들도 대중의 관심이 있다면 성장 기간이 단축될 수 있어요. 그늘에 가려진 비인기 종목에도 많은 격려를 보내주셨으면 해요.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