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두가지 은퇴 삶, '아, 옛날이여'vs'오라는 데 많네'

한익종 2021. 9.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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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78)

“자줏빛으로 물드는 해안의 바위에 걸터앉은 기찬은 은퇴 후 겪은 일련의 사건을 회상하며 낯빛이 붉게 변한다. 노을빛에 의해서만은 아니다. ‘괘씸한 것들 내가 지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예전에는 내 밑에서 온갖 아양을 떨던 것들이 갓끈 떨어졌다고 이젠 본 체도 안 해?’”

우리는 중요한 가치와 진실을 너무 쉽게 간과하고, 망각하고 살고 있다. [사진 pxhere]


어느 여성 정치인이 중얼거렸던 ‘소설을 쓰고 있네’라는 말처럼 나도 소설을 한번 써 봤다. 그러나 소설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인생 후반부 사람들 사이에서 수없이 나오는 한숨이며 은퇴자가 못내 섭섭해하며 하는 원망이다.

얼마 전 옛 직장 대표가 전화해 왔다. 직장생활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내게 전화하는 것 자체가 의아한 일이지만 “내가 유명인사가 됐다”, “대단하다”하면서 추켜세우고는 얼마 후 제주에 갈 텐데 내 주위에 머물면서 옛 이야기 나누고자 하니 펜션 좀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여러 경우를 따져보며 3일간의 노력 끝에 한 곳을 추천해 줬더니 그 후 일언반구 없이 깜깜 무소식이다. 나는 가예약한 펜션 주인한테 실없는 사람이라는 핀잔을 들었고…. 옛 버릇 못 고쳤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 후배와 통화 중에 옛 상사의 근황을 물었더니 후배들이 몇 년 전까지는 가끔 자리를 만들었었는데 한번 만나면 놔주지 않고 끝도 모르는 술에 이제는 질려 만남을 회피한다고.

공통점이 있다. 부와 명예를 누릴 만큼 누렸으면서도 아직도 바라기만을 하며 옛날의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후배나 이웃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만남을 회피당한다는 점이다. “아, 옛날이여”만을 부르짖으며.

푸르메재단에 오랫동안 거액의 기부를 하는 분이 있다. 발달 장애를 겪고 있는 장애아의 치료와 재활, 나아가서는 그들이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직업을 마련해 주는 푸르메재단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며. 자신만의 부귀영화만을 추구하지 않고 나눔과 봉사를 통해 사회의 어른으로서 존경받고 환영받는 그분은 아마 “오늘도 할 일이 많네? 갈 곳도 많고. 오라는 데가 너무 많아”를 외치지 않을까?

참 대조되는 삶이다. 은퇴 후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는 두 부류의 삶을 보며 반면교사,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는다. 우리는 중요한 가치와 진실을 너무 쉽게 간과하고, 망각하고 살고 있다. 바로 마사이족의 속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와 ‘혼자 꾸면 꿈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희망이고 기적이다’라는 표현을.

서울 가양동에 세워진 발달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 서진 학교 건물이 건축대상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서진 학교의 설립과정을 보면 눈물의 드라마(?)다. 수많은 소아적 이기주의를 극복한 서진 학교의 설립을 보면서 함께하는 사회로 가는 길은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해 본다. 설립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특수학교 서진의 사례는 함께하면 희망이고 기적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아름답게 살아갈 것인가? 은퇴 후 지난 10년간, 먼저 베풀고 배려하며 함께하자는 생각과 행동은 내가 주창하는 ‘발룬티코노미스트(봉사+경제활동)’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은퇴 후 인생 후반부를 ‘제3세대’, 혹은 ‘제3 섹터’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시기라며 재해석하고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발룬티코노미스트적 삶 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까? 발룬티코노미스트의 핵심은 과거의 욕심을 내려놓고 이웃과 사회와 함께하면서 즐기는 일을 오래게 하자는 것이다.

얼마 후 어느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직원들을 대상으로 생애교육 강의가 예정돼 있다. 내가 맡은 강의는 ‘공헌과 기여하는 인생 후반부의 삶’이다. 사회적 기여와 이웃에 대한 봉사가 인생 후반부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강조할 계획이다. 바로 발룬티코노미스트적 삶 말이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웃 동네의 독거노인 한 분을 만났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멈춘 노인사회활동 지원 프로그램을 수강하던 해녀 출신의 82세 학생이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언제 볼 수 있나요?” 환영받는 삶, 즐거운 삶이란 봉사하고 먼저 베풀며 함께 하는 삶이다.

함께 하는 사회로 가는 길은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사진 pxhere]


『기찬은 주홍으로 물 들어가는 한라산 쪽 여명을 보며 큰 기지개를 켠다. 새날이 밝았음을 기뻐하며,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이제 아이들에게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니들이? 라는 단어는 내 사전에 없다’를 외친다.』

‘소설을 쓰고 있네’는 인제 그만! 현실을 쓰자.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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