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 MZ 사랑법]③ 온라인 즉석만남, 이것도 사랑일까

안명진,노혜진,한제경 2021. 9. 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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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MZ 사랑법] 온라인 즉석만남의 그림자
"사람 만나고 싶었을 뿐인데.."
전문가들 "가볍고 진실함 없는 관계, 오히려 마음에 멍들어"
국민일보DB


직장인 지혜(가명·27)씨가 만남을 주선해주는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앱)’을 처음 내려받은 건 지난해 12월이다. 자취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나쁜 사람을 만나진 않을까’ ‘해코지를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물론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집과 회사만 오가는 일상이 답답했고, 사람을 만날 수 없는 데서 오는 외로움도 짙었다. 지혜씨는 조심스레 사진 몇 장을 골라 게시한 뒤 앱을 시작했다.

얼마 뒤 지혜씨는 마음에 드는 한 살 연상의 이성을 만났다. 대화도 잘 통하고 외모도 훤칠했다. 연락을 이어가며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의 반응이 걸렸다. 그 사람도 분명 지혜씨가 좋다고 했지만, 가끔 오는 연락은 늦은 밤 술에 취한 채였고 그나마 끊기기 일쑤였다. 지혜씨는 더 이상 그 사람과 연락하지 않았다.

이어진 만남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친해질 것 같았던 사람이 덜컥 ‘잠수’(연락 두절)하는 일이 잦았다. 지혜씨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 주로 온라인에서 허탈함과 허망함을 느끼는 상황에서 사용)가 왔다고 했다. 지혜씨는 소개팅 앱을 지난 2월 삭제했다.

코로나가 빚은 새로운 연애 풍속…‘온라인 즉석 만남’

청춘남녀가 소개팅 앱이나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즉석 만남’을 갖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대면 만남이 제한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방법이 없는 탓이다. 국민일보가 데이터 분석업체 앱에이프에 조사를 의뢰해보니 구글 플레이스토어(앱스토어)에서 카테고리가 ‘데이트’로 분류된 앱의 지난달 월간이용자수(MAU)는 지난해 말보다 65%가량 증가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지난해 1월과 비교해선 98% 늘었다. 약 1년 반 만에 전체 시장 규모가 두배 가량 뛴 것이다.
스마트폰 앱스토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개팅 앱. 구글 앱스토어 화면 캡처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운영하는 소개팅 앱 ‘하이라운지’의 경우 지난달 가입자 수가 지난 1월 대비 약 140% 증가했다. 가연 관계자는 “이 시기엔 회원의 신원인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앱 전반을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는데, 거리두기 3, 4단계가 시작된 7월부터 가입률이 점차 늘어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거리두기와 모임 인원 제한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사용자 증가에 따라 매출도 뛰었다. 지난 16일 기준 구글 앱스토어 매출 순위 상위 50개 앱 중 소개팅 앱은 16개에 달했다. 인기 앱 10개 중 3~4개는 소개팅 앱인 셈이다.

진실함 없고 가벼운 만남의 반복…청춘의 마음은 안녕한가

문제는 많은 청년들이 일시적인 만남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허망함과 허탈함, 심한 경우 자존감의 하락까지 토로한다는 점이다. 국민일보가 만난 청년들은 사람과의 소통 및 관계에 대한 욕구가 커 즉석 만남을 시도했지만, 외로움이 달래지기는커녕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외로움이 가중됐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민수(가명·34)씨는 지난 2월부터 소개팅 앱을 이용했다. 민수씨는 이용 동기에 대해 “본가에서 떨어져 나와 회사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동네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앱을 지운 상태라고 했다. 민수씨는 “소개팅 앱이 내 외로움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앱을 지웠다”고 했다. 그는 “대화가 잘 통하는 듯하던 상대가 언제부터인가 특정 암호화폐(가상자산)의 수익성이 좋다고 말하더니 투자해보라고 계속 독려를 하더라”고 말했다. 민수씨는 이 일을 계기로 앱을 통해 만난 상대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선 즉석 만남의 허무함과 허탈함을 호소하는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개팅 앱뿐 아니라 익명 활동이 가능한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즉석 만남이 이뤄진다. 대학생이 사용하는 앱 ‘에브리타임’이나 직장인 대상 ‘블라인드’ 등에선 누군가 만날 사람을 찾는다며 올린 ‘구인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익명 커뮤니티에서 즉석 만남을 경험했다는 이들도 허탈함과 실망감을 토로하긴 마찬가지였다.

대학원생 현수(가명·27)씨는 지난해 말부터 익명 커뮤니티를 통한 즉석 만남을 이어왔다. 수개월째 아무런 사적 모임을 갖지 못해 외로움이 컸다. 현수씨는 “코로나19 이전엔 독서모임과 교내 운동 동아리, 외신 읽기 모임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갑자기 모두 중단되니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현수씨는 즉석만남에서 진정한 위로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현수씨는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은 말이 통하는 것 같아도 몇 번 보면 연락이 끊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우울감이 생기고, 나도 큰 기대를 안 하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마음이 맞는 듯하던 상대에게 정을 붙여봤자 곧 신기루처럼 사라지더란 얘기다. 현수씨는 “진짜 잘 해보고 싶은 상대가 나타났을 때, 내가 그 사람과의 관계도 게임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끼곤 스스로에게 놀랐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종의 ‘액체 사랑’의 형태”라고 분석했다. 깊은 관계를 맺고 상대에게 집중하기보단 끊임없이 새로운 만남을 찾아 흘러다닌단 얘기다. 김 교수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청년들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통계는 많다. 온라인을 통한 만남이 관계의 폭과 자기결정권을 늘리는 장점도 있다”면서도 “관계나 이미지 공급의 과잉이 일어나 심리적 불안감을 부추길 수 있다. 만족을 극대화하겠지만 그 자체로 진정한 감정적 요구를 충족할 순 없는 것”이라고 짚었다.

가볍고 불안한 ‘액체 사랑’…애착 충족·외로움 해소엔 "글쎄"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만남은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특성이고 개인의 자유이므로 잘못된 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만남으로 쾌락을 얻을 순 있지만 결국 본래의 목적인 사랑과 친밀성과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부재하는 애착을 느끼고 외로움을 해소하기에 온라인 즉석만남이 잠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애착은 결국 감정이라 지속적 관계에서 나오는 친밀감을 얻지 못하면 오히려 반동 형성 때문에 보상적으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허탈감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즉석 만남을 통해) 즉각적인 외로움 해소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진실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곽 교수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로움이 아닌 깊은 부분의 외로움까지 해소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진지하고 깊이 있는 관계가 이뤄져야 진정한 외로움 해소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온라인 만남 외에도 진실하고 깊이있는 만남을 이어나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노혜진, 한제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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