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거부한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건넨 뜻밖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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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기자]
▲ 사진은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의 한 장면 |
ⓒ 카카오TV |
우리 집은 명절에 친척들이 거의 모이지 않아 가족끼리 간단하게 지내는 편이라서, 식구가 많은 남편 쪽 명절 풍경은 더더욱 낯설었다. 거의 스무 명 가까운 친척들이 북적거리는 와중에 남자들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날랐다. 어릴 때 티브이에서나 보던 전형적인 명절 풍경 속에서 나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앉아 있었다.
내 친척들과도 부대끼지 않고 지냈는데 결혼식 이후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이제 한가족이 됐다는 실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냥 이번에 이 집안의 장손과 결혼한 새로운 며느리라는 역할로 참석한 것이었다. 내가 사교성이 없는 게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명절을 지내러 온 며느리라는 것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어색하고 불편한 역할이었다. 남편과 결혼한 것이 나를 지우고 남편 가족의 세계에 준비된 자리로 들어서겠다는 약속은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도 남녀의 성 역할이 극명하게 나뉘어 있는 그 공간에선 남편의 곁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불편했다. 그렇다고 '며느리 역할'을 하기 위해 부엌에서 서성이며 싹싹하게 일손을 돕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이미 나는 언뜻 깨달은 것 같다. 이 공간에서 어떤 선택을 해도 편안해질 수 없다는 걸.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고, 할 수 있는 건 '편하게 있으라'고 속 모르는 말을 하는 남편을 흘깃 미워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남편과의 결합이 개별적인 작은 교집합을 만드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 안에 서로의 가족 문화까지 성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수줍고 어려서 그렇지, 언젠가는 시어머니에게 이 모든 역할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시아버지는 믿는다. 그런 분에게 내가 남편과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명절을 한번 보내고 나서 순식간에 명절을 싫어하게 됐다. 명절이 한 달쯤 뒤로 다가오면 남편 얼굴만 봐도 괜히 투덜거리고 싶어졌다. 이혼을 하지 않는다면 명절은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주기적으로 겪어야 하는 행사였다. 평생 1년에 두어 달을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명절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몇 년 전부터 명절을 비롯해 가고 싶지 않은 장소에는 웬만하면 가지 않겠다고 혼자서 결정했다. 내가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면, 가고 싶지 않은 결혼식이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는 모임 같은 데에 굳이 가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물론 명절처럼 온 국민이 합의하고 있는 문화에 참석하지 않는 일은 조금 다를 것이다.
결혼을 하면 며느리가 되고, 며느리는 남편 쪽의 명절에 우선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들이 많다는 점이다. 남편 집안의 명절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긴 거리를 운전하느라 피곤'해진다든가 '내 조상을 위해 벌초'하는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단순히 명절이라는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은 명절 당일에 조상을 모시고 여성은 그 행사를 위해 보조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불평등한 위치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양가 어디를 가든 노동의 총량은 비슷하더라도, '시가 먼저'가 아니라 '양가 번갈아서'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결혼한 배우자와 성별로 인한 불평등한 현실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노동을 떠나 부부 관계에 퇴행적인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관습을 깨면 어떤 일이 생길까. 관습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고, 게다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그 형태도 다르다. 여건에 따라 무엇은 생략하고, 무엇은 더해지기도 한다. 알고 보면 꼭 지켜야 하는 절대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어떤 전통은 가치 있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불합리한 희생을 바탕으로 한 불평등한 전통이라면 바뀌어야 한다. 변화에는 불편함이 따를 수 있지만, 그 불편과 갈등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이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면 다음 세대에는 분명 의미 있는 갈등이 아닐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결혼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고 받아들이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한 번쯤 내가 명절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스스로 고민하고 저울질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관습을 거부했을 때 나에게 생긴 일
▲ 명절에 참석하지 않을 뿐 시부모님과 왕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시아버지는 나와 막걸리를 마셨다. |
ⓒ flickr |
사실 내 성격상 아니라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가적으로 생기는 상황을 흔들림 없이 넘기는 편이다.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또 자신이 결정한 일을 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모두에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둥글게 살아가는 것이 불편한 나에게는, 누군가 나를 싫어하게 되더라도 오히려 명절을 거부하는 것이 마음 편한 결정이었다.
명절에 참석하지 않을 뿐 시부모님과 왕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시아버지는 나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형제도 많고 제사도 많은 집안에서 시어머니가 잘 적응해서 살아왔으니, 나도 자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그런데 그게 나에게는 힘들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뜻밖의 말씀에 놀라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남편 쪽의 명절 문화를 내가 바꿀 수도 없고, 바꾸려고 노력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내가 그 문화에 편입돼야 했다면 나는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미워했을 것이다. 개개인이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는 게 이기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와 남편에게, 그리고 나와 시부모님의 관계에는 오히려 진짜 가족이 되는 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의 역할을 명시하는 명절 문화 바깥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입체적으로 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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