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한국에게도 묻는다

김성호 2021. 9. 2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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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336] DMZ국제다큐영화제 아시아경쟁 <실루엣>

[김성호 기자]

미군이 철수했다. 간신히 자리 잡은 질서가 또 다시 파괴됐다.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이 나라를 탈출했다. 세계 여러 나라 외교관들도 앞을 다퉈 빠져나갔다. 무주공산이 된 수도 카불은 테러단체 탈레반에게 접수됐다. 다른 거의 모든 도시도 마찬가지다. 제 나라를 버리겠다는 난민들이 쏟아진다.

아프가니스탄 이야기다.

아프간은 1980년대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구 소련이 군대를 몰고 아프간까지 남진했다. 아프간 난민 150만 명이 이란으로 향했다.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언어도 달랐던 소련과 종교와 말이 같았던 이란 사이에서 이란을 선택한 이들이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이란에서 태어난 아프간 난민 중 나이가 많은 이들이 중년이 됐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 실루엣 포스터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이란에 사는 아프간 난민 가족

영화 <실루엣>은 이란에서 사는 아프간 난민 가족의 이야기다. 4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들 가족은 그 시간을 견뎌 이란에 새로운 터전을 꾸렸다. 아버지는 재봉사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대학교에 보냈다. 손자와 손녀들까지 태어난 이란은 이들에게 집이 됐다.

타기는 이들 가족의 둘째 아들이다. 이란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학교에 들어가 공학을 전공했다. 잘 배운 영민한 청년이다.

그런 타기에게 고민이 하나 있다. 이란에선 졸업한다고 해도 취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자신이 아프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프사네 살라리 감독은 아프간 난민이 맞닥뜨린 현실의 딜레마에 주목한다. 아프간 난민들은 이란에서 시민 자격을 얻지 못했다. 난민으로 체류하며 직업과 이동에 제한을 받는다. 자치권도 참정권도 없는 난민 거주자다.
 
▲ 실루엣 스틸컷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버지와 아들의 엇갈린 마음

세대는 달리 생각한다. 전쟁과 피난을 겪은 아버지는 이란에서의 삶이 감지덕지다. 적어도 가족을 건사하며 오늘을 평화롭게 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이란에서 자란 자녀들은 다르다. 손녀는 이란 초등학교에서 쫓겨나게 됐다. 아프간 난민들은 이란이 아닌 아프간 학교를 다녀야 해서다. 저학년은 이란 학교를 다닐 수 있지만 놀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어린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남는다.

타기는 아프간으로 가겠다는 꿈을 꾼다. 이란에선 자유가 없다는 걸 안다. 타기에게 이란은 자기의 나라가 아니다. 정세가 불안하지만 아프간이 제 나라라고 느낀다. 비록 평생을 이란에서만 살았지만 말이다. 타기의 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와 함께 일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많이 배우고도 옷이나 자르는 게 불만스럽다. 타기는 형처럼 살고 싶지 않다.

타기는 결국 카불로 떠난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카불에서 살기로 한 것이다. 카불에서 타기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았던 마을을 찾는다. 고모와 아직 살고 있는 친척들을 만난다. 이란과 비할 수 없이 가난하지만 타기는 그곳의 산과 계곡이 제 조국의 것이라고 느낀다. 자유롭다고 믿는다.
 
▲ 실루엣 스틸컷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가본 적 없는 아프간이 제 나라라고

영화가 제작된 2010년대 중반은 아프간이 제법 안정된 시기다. 아직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최소한의 질서가 지켜지고 있다. 테러가 자행되고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일이 있지만 타기는 그런 아프간조차 제 조국으로 사랑한다.

이란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건 타기뿐만이 아니다. 타기의 여동생은 이란에서 의학을 공부한다. 그러나 그녀가 의사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오빠를 사랑하지만 제 오빠가 아프간으로 떠나는 걸 막지 못한다. 그리고서는 아프간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오빠에게 연락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한다.

그녀 스스로도 이란의 현실이 불만족스럽다. 어느날인가는 타지에 있는 친구 결혼식을 가는길에 버스기사가 탑승을 거부하기도 했다. 여행허가서를 내보이라는 것이었다. 아프간 난민에 대한 혐오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녀는 이란에서 나고 자랐지만 여행을 갈 때도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일상에서 아프간 난민을 구분하고 혐오하는 시선이 넘실댄다.

 
▲ 실루엣 스틸컷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난민에게 필요한 건 안전만이 아니다  

<실루엣>이 그린 이란의 아프간 난민들은 오늘날 한국에도 상당한 인상을 남긴다.

이란의 아프간 난민은 40년이 지나도 난민이다. 아프간 난민의 자손들은 제가 이란사람이 아닌 아프간인이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갖는다. 이란학교는 아프간 난민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저의 아이들과 구분하는 것을 가르친다. 아프간 난민들은 이란 안의 소수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프간 난민을 진정으로 포용하지 못했기에 그 자손들은 이란을 떠나길 선택한다. 그곳이 제 목숨을 앗아갈 위험한 땅이라 해도.

예멘과 아프간 사태가 발생했을 때마다 한국에선 난민 수용 논의가 불거졌다. 하지만 누구도 한국이 그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력이 있는지를 돌아보지 않았다. 인간은 때로 안전보다도 자유를 원하게 된다. 우리는 난민들에게 어디까지 자유를 허용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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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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