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여름' 아쉬워도..'휠체어농구 주장' 조승현의 농구는 계속된다

조효석 2021. 9.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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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지난 15일 늦은 저녁, 전화를 받은 남자 휠체어농구 국가대표팀 주장 조승현(38)은 마침 개인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던 참이었다. 2020 도쿄패럴림픽이 끝난 지 약 열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도쿄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그는 이전까지 드리블이나 슈팅 훈련 외에 따로 하지 않던 웨이트트레이닝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내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몸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패럴림픽 무대에서 대표팀은 기대치를 채우지 못했다. 조별리그와 9·10위 결정전을 포함해 본선 승리는 단 한 번뿐이었다. 지역 예선에서 꺾었던 라이벌 일본이 은메달을 차지한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그는 “우리는 10년 이상을 패럴림픽 4강을 목표 삼고 운동한 세대다. 그 원대한 계획의 마지막 단계가 이번 패럴림픽이었다”며 아쉬워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16일 조승현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루지 못한 꿈

선수들에게 패럴림픽은 그 자체로 꿈의 무대다. 특히나 이번 대회는 대표팀에 남달랐다. 2019년 대표팀을 이끌고 21년만에 패럴림픽행을 이끈 고(故) 한사현 감독 때문이었다. 국내 휠체어농구 역사의 산 증인이던 한 감독은 도쿄패럴림픽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4강을 이뤄내겠다고 공언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없었다면 이 목표는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암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의료계 파업 와중 찾은 응급실에서 잘못된 처방을 받은 게 병세가 악화된 원인이었다.

조승현은 한 감독이 코트에서 뛰던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항상 의견이 맞지는 않았지만, 한 감독은 그에게도 의지가 많이 되던 존재였다. 그는 “본래 자유투를 던질 때 나름의 루틴대로 생각을 하지 않고 던지는데, 이번에는 한 감독님 이름을 되뇌이며 던졌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평소보다 더 잘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경기 중에도 ‘한 감독님이라면 이런 때 뭘 원하셨을까, 무슨 지시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뛰었다”며 “저뿐 아니라 다들 그랬을 것이다. 옆에 계신단 마음으로 했다”고 말했다.

사실 한 감독이 생전 목표로 삼은 패럴림픽 4강은 무모하다 할만한 도달점이었다. 조승현은 “선수단에게는 첫 패럴림픽이다. 월드컵 처음 나간 팀이 4강 가겠다고 한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는 “현실적으로 첫 번째 목표는 조별리그에서 최소 2승을 하고 8강에 가는 것이었다”면서 “(1승을 거둔) 콜롬비아는 당연히 잡을 거라 생각했다. 캐나다와 일본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여겼다”며 아쉬워했다. 대표팀은 일본에 7점차, 캐나다에 10점차로 졌다.

힘들었던 꿈의 무대

대표팀이 예상보다 더 힘을 쓰지 못한 데는 전력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코로나19로 2년 넘게 국제무대에 나서지 못한 사이 심판들의 판정 경향이 크게 달라진 것도 그중 하나였다. 본선에서 예상과 다른 판정에 선수들은 크게 당황했다. 평소 자유투 유도가 주요 공격 패턴 중 하나였던 조승현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에서 연초부터 합숙 훈련을 했지만 다른 팀과 연습경기를 할 수 없었다. 전지훈련 뿐 아니라 수시로 서로 겨뤄왔을 유럽, 북미 팀들과는 조건이 달랐다.

가드인 조승현은 대표팀에서 팀의 지휘자이자 스코어러다. 그는 “장애인스포츠가 전체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려면 (대표격인) 휠체어농구가 아무래도 성적을 내줘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 면에서 책임과 부담이 분명 있었다”며 “저희가 더 잘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유독 경기 막판 4쿼터에서 밀리며 승리를 내준 데 대해서는 “선수층이 두텁지 않다 보니 쉽게 로테이션을 돌릴 수 없었다”면서 “체력적인 부담이 작용했던 듯하다”고 복기했다.

개인적으로 얻은 소득이 없지는 않다. 조승현은 “캐나다의 패트릭 앤더슨이라는 선수가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일반 농구로 치면 마이클 조던급인 선수”라고 소개하면서 “예전에 맞붙었을 때는 정말 앞에 아무 것도 안 보일 정도로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해볼만 했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국제무대에서 한 경기 20점 이상 넣기 쉽지 않았는데 경험이 쌓이면서 이번에는 국내에서만큼 득점이 나왔다”며 “다만 체력적으로 마지막까지 밀어붙일 힘을 길러야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아름다운 끝을 위해

조승현은 내년 아시안게임이 어쩌면 마지막 무대가 될 수도 있다. 그는 “물론 제가 그만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도 “국가대표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제 다음부터는 후배들이 더 해줘야 한다. 그게 한국 휠체어농구를 위해서 바람직하다”면서 “물론 후배들에게는 ‘나는 내 자리 쉽게 내줄 생각 없다. 너희들이 따내야 한다’ 말은 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런 후배가 빨리 좀 나왔으면 좋겠다 싶다. 그럼 정말 웃으며 내려올 수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내년 아시안게임은 더 중요하다. 조승현은 “저희가 패럴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에서는 결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야 휠체어농구가 퇴보하지 않고 탄력을 받아 한 단계 올라갈 계기가 된다. 그 정도 계기는 만들어놓고 싶다”고 덧붙였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인 다음달 1일 국내에서도 휠체어농구리그 KWBL 시즌이 개막한다. 조승현 역시 소속팀 춘천장애인체육회 소속으로 이전 소속팀인 서울시청을 상대할 예정이다.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대부분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다. 조승현은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일반 농구보다 느리고 슛도 덜 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지만, 휠체어농구에 적용되는 규칙이나 특성 등을 알고 보면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다”며 관심을 부탁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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