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수 캐스터의 헤드셋] 돈 내고 9회 무승부? 그래서 제안합니다

데스크 2021. 9. 21.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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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야구장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초등학교 시절, 즐거웠던 방학이 끝나는 개학날 아침은 늘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방학은 왜 그리도 빨리 흘러가는지, 별로 한 것도 없고 신나게 놀지도 못했는데 왜 그리도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는지, 방학숙제는 왜 그리도 많은지. 개학 전날에는 밀린 방학숙제를 하느라 지옥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제일 괴롭고 힘든 일은 방학 기간의 하루하루를 모두 기억하고 밀린 일기를 쓰는 것이죠.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지금 흰머리가 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를 마치고 차분하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일기장에 기록하는 것이 그리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닌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아무튼 방학기간의 일기를 개학 전날 혹은 개학일 새벽에 일어나 몰아 쓰는 일은 거의 마법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오늘 할 일은 미루지 말고 오늘 끝내야 한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다음 방학이 끝나는 날은 여지없이 밀린 일기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뿐만이 아니고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경험(?)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갑작스레 밀린 방학숙제와 밀린 일기를 왜 언급하는지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거두절미하고 아래 도표를 보시면 그 궁금증이 해결될 것입니다.


올림픽 브레이크 이전까지 경기수와 무승부, 그리고 브레이크 이후 경기수와 무승부를 비교한 수치입니다(전반기까지는 12회 무승부.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는 9회 무승부).


마치 제때 하지 못한 방학 숙제나 일기를 한꺼번에 해치우는 것처럼, 밀린 경기 소화하느라 정신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올 시즌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순연되는 경기도 많았고, 올림픽 브레이크로 인해 144경기를 소화하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기에 브레이크 이후로는 12회 연장전 없이 9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무승부로 처리하기로 합의했죠.


정상적으로 연장전까지 치르면서 144경기를 소화하기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기에 내린 결정입니다.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선수들의 체력, 가용할 선수의 제한, 팀에 따라 각기 다른 선수층. 그 외에도 코로나19로 인해 각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 대응 단계에 따라 무관중 혹은 약간의 관중으로만 치러야 하는 경기.


그런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야구팬들의 견해 차이가 있지만 야구팬이라면 9회 무승부 합의 이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기껏 시간 내서 야구 보러갔는데 3시간 넘도록 응원하고 무승부로 끝나고 돌아서면 세상 허무하다!!”고 말입니다. 12회 무승부도 아니고 9회 무승부.


그러다보니 최근 야구는 마치 밀린 방학숙제를 하루 만에 해치우거나, 밀린 일기 한꺼번에 써버리는 느낌입니다. 승리를 목전에 둔 팀이 동점을 허용해 무승부로 끝나면 몹시 아쉽겠지만, 뒤진 팀이 가까스로 동점으로 무승부 경기를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면 프로야구인지 동네 클럽의 친목대회인지 헷갈립니다.


현장에서 보는 팬이나, TV로 시청하는 팬이나 허탈하고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경기를 치른 선수들 또한 뭔가 찜찜한 표정으로 덕아웃을 향합니다.


물론 ‘동점 무승부’ 경기라고 해서 모두 다 재미없는 경기라는 말은 아닙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경기도 분명 있습니다. 아주 가끔. 가뜩이나 도쿄올림픽에서의 실망스러운 성적과 내용,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한 프로 선수들, 은퇴 선수의 수감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은 야구를 보지 않겠다고 하는 팬들이 늘고 있으며, 나의 아까운 돈과 시간을 다시는 프로야구에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와중에 승패를 가리지 못하는 허무한 경기를 보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으니 팬들의 외면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승패도 없고, 감동도 없고, 경기장에 갈 수도 없고. 마치 KBO 3무(無)리그가 아닌지.


올림픽이 예고 없이 갑자기 치러졌던 것도 아니고, 기상상황으로 인해 경기가 취소될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임에도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이렇게 밀린 숙제하듯 리그를 치렀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KBO, 구단, 선수 이구동성으로 “팬이 중요하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습니다. 바꾸어서 물어보겠습니다. 팬의 입장에서 팬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은 해보셨나요.


첫째도 둘째도 재미있는 야구, 승패가 있는 야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는 싸움구경이라 하지 않던가요. 물고 뜯고 싸우고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그 안에서 승패를 볼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재미있는 경기입니다.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승자는 패자에게 위로를 하는 모습. 야구팬은 바로 그런 모습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기든 지든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즐기기 위해서 야구장을 찾았는데 9회 무승부라니. 마치 피 튀기게 싸우다가 시간 되었으니 그만 싸우는 꼴이랄까. 그 싸움을 돈 내고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허무 하겠습니까.


지난 12일에는 모든 경기가 더블헤더로 치러졌죠. 그런데 삼성-한화전은 두 경기 모두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지난 16일 5경기 중 2경기는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관계자 여러분이라면 그런 경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요. “와우!! 오늘 경기 진짜 재미있었어!!” 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때 관객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한국영화가 이제는 천만관객을 훌쩍 넘깁니다. 재미있으니까요. 티켓 한 장 가격이 10만원이 훌쩍 넘지만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 아낌없이 지출을 합니다. 재미난 공연을 보기 위해서죠.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까 고민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경기를 빨리 끝낼 수 있을까만 연구하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스피디한 경기에 재미가 더해지면 가장 좋겠지요. 그러나 팬들은 시간이 좀 길어도 재미있는 경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부득이한 상황이지만 9회 무승부는 대안으로 부족합니다.


물론 ‘일부 팬들은 경기수를 줄이면 되지 않는가’ 라고 할 수 있겠으나 경기수를 줄이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분명 아닙니다. 기록의 연속성의 문제, 각종 광고, 후원, 중계권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올 시즌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다음 시즌부터는 무승부를 없애주기를 바랍니다. 정규시즌에는 9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할 경우, 10회부터는 국제대회에 적용하는 승부치기 룰로 승패를 가렸으면 합니다. 어떻게든 승패가 갈릴 것이고, 시간도 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리그운영에서 가장 최우선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KBO, 구단, 선수가 늘 이야기하는 “팬” 이어야 합니다. 팬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리그는 망한 리그입니다. 어떤 요소보다도 팬이 야구의 중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구에 미치도록 열광하고, 정말 재미있는 경기, 승패가 있는 경기 내일도 모레도 또 관심 갖고 지켜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허무하게 끝나는 무승부 경기는 이제 그만 보고 싶습니다. 고객이 짜다면 짠 것입니다. 팬이 재미없다면 재미없는 것입니다. 거듭 당부합니다. 재미는 둘째라 하더라도 승부는 가려주세요!


글/임용수 캐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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