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월병 집에서 중국인의 중추절 별미를 맛봤다

최승표 입력 2021. 9. 21. 07: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추석 때 송편을 먹듯이 중국인은 중추절에 월병을 먹는다. 가족끼리 보름달 닮은 과자를 먹으며 안녕과 복을 기원한다.

한국인이 추석 때 송편을 먹듯이 중국인은 중추절이 되면 월병을 먹는다. 인천 차이나타운, 서울 대림동과 명동 등 화교 집단 거주지마다 추석을 앞둔 이즈음이면 월병 가게들이 부쩍 바빠지는 이유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100년 역사의 노포를 찾아 월병과 중추절 이야기를 들어봤다.

중추절은 중국 4대 명절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우리가 추석을 한가위라 부르며 최대 명절로 치르는 것과 달리 중추절은 그리 큰 명절이 아니다.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춘절과 달리 가까운 가족끼리 모여서 안녕을 확인하고 식사하는 정도다. 요즘은 제사를 생략하는 집도 많다. 유방녕(64) 인천 차이나타운 상가번영회 부회장은 "산둥성에서는 중추절에 삼겹살찜이나 가오리, 꽃게 같은 해산물로 음식을 해먹고 제철 과일을 먹는다"며 "특별히 중추절 음식이라 할 만한 건 없지만 중국 전역에서 월병만큼은 꼭 챙겨 먹는다"고 말했다.

중국 음식처럼 다양한 음식도 없다고 하지만, 중추절 음식은 월병 말고 딱히 없다. 제철 채소와 고기, 해산물로 요리를 만드는 정도다. 산둥성에서는 삼겹살찜이나 어향가지 같은 요리를 많이 먹는다고 한다.

월병은 중국을 비롯한 모든 중화권 국가가 중추절에 챙겨 먹는 음식이다. 보름달을 닮은 월병을 먹으며 복을 기원하는 문화가 이어져 왔다. 원래 한국인은 집에서 송편을 만들어 먹었지만, 중국인은 대부분 과자집에서 파는 월병을 사 먹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복래춘(福來春)’ 같은 월병 전문 과자점이 화교 거주지에 많은 이유다. 복래춘은 1951년부터 70년째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가게 간판에는 '100년 전통' 월병, 공갈빵 전문점이라 쓰여 있다.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서 건너온 곡희옥(72) 사장의 할아버지가 1920년대부터 서울과 인천에서 월병을 팔았기 때문이다.

인천 차이나타운 화교 소학교 앞에 자리한 복래춘. 지금 자리에서는 1951년 개업했지만 곡희옥 사장 할아버지가 1920년대부터 월병을 만들어 팔았기에 100년 전통 과자점이라고 자부한다.

곡씨 가족이 100년 세월 동안 월병을 만든 이야기는 질곡의 현대사라 할 만하다. 중국에서부터 과자를 만들었던 곡 사장의 조부는 서울 북창동과 소공동에서 월병을 만들어 팔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도중에 목숨을 잃었고, 남은 가족은 인천으로 이주했다. 곡 사장의 부모는 어렵게 생계를 이어왔다. 번듯한 가게가 없어 부지런히 구운 월병과 과자를 인천 부둣가와 서울 곳곳에서 내다 팔았다. 복래춘을 일군 곡희옥 사장은 지금 건강이 좋지 않다. 오랜 세월 과자를 굽느라 몸이 성치 않아서다. 지금은 곡 사장의 아들인 곡사충(39)씨가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현재 복래춘은 인천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노포로 명성이 자자하다.

복래춘의 대표 과자인 팔보월병. 여덟 가지 재료를 넣고 구운 산둥식 월병이다.

월병 만드는 방법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밀가루에 라드(돼지기름)를 넣고 반죽을 만든 뒤 팥, 콩, 녹두 등을 넣어서 둥근 모양의 틀에 굽는 게 일반적이다. 복래춘은 7~8가지 종류의 월병을 만든다. 팥 월병, 고구마 월병 등 이색 월병도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건 '팔보월병(1300원)'이다. 곡희옥 사장의 아내 유서지(67)씨는 "건포도, 땅콩, 깨, 모과, 호두, 아몬드, 박 씨, 해바라기 씨, 이렇게 여덟 개 재료를 넣은 월병이 정통 산둥식 월병"이라며 "남방 지역에서는 삶은 달걀이나 피단, 간 돼지고기를 넣어 굽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팔보월병은 여태 먹어봤던 다른 월병보다 훨씬 고소했다. 견과류가 다양해서다. 속이 꽉 차 있어 하나만 먹어도 든든했다. 복래춘은 월병 말고도 공갈빵, 계란과자, 깨과자 등 다양한 종류의 과자를 만든다. 중국에서는 중추절에 공갈빵도 많이 먹는다. 안이 텅 빈 중국식 호떡으로, 차이나타운의 수많은 상점에서 공갈빵을 판다. 복래춘 공갈빵은 2~3일이 지나도 바삭바삭했다.

인천=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