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이 100세에도 '팔팔'..'다산왕 기린' 장순이의 추석 [영상]

편광현 2021. 9. 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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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살 생일파티 장순이, 여전히 무리 이끌어
소식, 순한 성격에 장수..자녀·손주와 생활
동갑내기 사육사 "내년 추석에도 함께 하길"
기린 장순이가 35번째 생일 케이크를 먹는 모습. 사진 에버랜드

"큰할머니라 먼저 먹긴 할 텐데...조금만 먹을 걸요?" 14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로스트밸리'. 박준영(35) 사육사는 동료들과 함께 기린들을 위한 추석 특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 사육사는 "달 모양의 추석 상에 좋아하는 음식들을 잔뜩 차려주려고 한다. 양배추, 당근 등과 함께 알파파라는 수입산 건초를 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5번째 추석을 맞은 장순이가 좋아하는 아카시아, 버드나무 잎도 충분히 준비했다"고 했다.

그가 말한 장순이는 기린들의 '대모'이자 최연장자다. 이 동물원에 있는 기린 11마리는 모두 한 가족이다. 새끼 18마리를 낳아 세계 최다산(最多産) 기린이 된 '장순이'와 그의 자녀 4마리, 손주 6마리가 함께 산다. 나머지 자녀 14마리는 전국 곳곳의 다른 동물원에서 지낸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한국에서 기린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건 사실상 장순이 덕분이다. 한국 기린들의 큰 어른인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박준영 사육사가 장순이에게 사료를 주고 있다. 정수경 PD


무리 이끄는 '큰할머니', 세계 최장수 됐다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난 장순이는 올해 만 35세가 됐다. 그를 관리하는 박준영 사육사와 동갑이다. 하지만 기린 평균 수명이 25~30세인 걸 고려하면 사람 나이로 100살이 넘는다.

백세장수 노인인데도 타고난 건강 때문인지 풍채가 좋다. 몸무게는 암컷 평균보다 조금 마른 1500㎏이다. 하지만 일가족 11마리 중 키가 4m로 가장 크다. 등 색깔도 눈에 띄게 진하다. 전 세계 동물원 기린 중 최고령으로 알려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동물원의 힐디(1973~2007·34세)를 뛰어넘었다.

통상 기린은 수컷이 무리를 이끄는 부계사회를 이룬다고 한다. 하지만 장순이는 일반적인 암컷과 달리 이동할 때 가장 먼저 움직이고 가끔 외부로 나오지 않으려는 기린을 챙겨 데려오기도 한다. 위험한 걸 발견했을 땐 상대방의 목을 치는 등 무리에게 경고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연륜에서 우러나는 '리더십'을 가진 우두머리의 모습이다.
16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만난 아시아 최고령 기린 장순이. 뒤에서 목 기지개를 켜는 기린은 장순이의 손자 한결이. 장순이의 막내딸 천지가 낳았다. 사진 에버랜드


장수 비결은 '연한 잎만 조금씩'


이날 장순이는 사육사가 통에 채워준 사료를 먹다 3분의 1 정도 남기고 뒷걸음질 쳤다. 사육사들은 '장순이가 다른 기린보다 식탐이 적다'고 입을 모은다. 특식이나 간식을 줘도 늘 정해진 양만 먹는다.

2주 전 장순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만든 35번째 생일 케이크도 대부분 남겼다. 덕분에 다른 가족들이 포식했다고 한다. 박 사육사는 "주식인 나뭇잎을 먹을 때도 연한 부분만 골라서 먹는다. 운동도 꾸준히 하는데 사람으로 치면 식단관리를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순이의 타고난 성격도 장수에 한몫했다. 이름처럼 성격이 순한 장순이는 사육사들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라고 한다.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아 큰 사고가 나지 않았고, 다른 기린들과 싸운 적도 없다. 박 사육사는 장순이의 이름을 강조하며 웃었다.
"우연히 맞아 떨어졌지만 장순이는 이름처럼 목이 길고, 오래 살고, 순하죠."

19번째 임신, 사육사가 막았다


아직 팔팔하다지만 나이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사육사들은 장순이의 건강 상태에 늘 신경을 기울인다. 약 24년 동안 출산과 육아를 반복하며 최다산 기록을 세운 만큼, 몸이 망가졌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장순이는 18번째(막내) '천린이'를 출산한 2013년 후에도 임신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장순이의 건강을 고려한 사육사들이 남편 장다리와 분리했다고 한다. 이후 장순이에게 양질의 사료를 챙겨주고 운동을 시키는 등 '특별관리'를 했다. 다만 유난히 금실이 좋았던 남편 장다리는 6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동물원 보물이자 사육사 꿈 도와준 친구"


장순이가 2013년 9월 출산한 18번째 딸이자 막내인 천지와 함께인 모습. 사진 에버랜드
그래도 사육사들의 사랑 덕에 장순이는 잘 지내고 있다. 관절에 별문제가 없어 걸음걸이도 좋고 가끔 뛰기도 한다. 박 사육사는 "먹이를 씹는 저작 활동이 활발하고 아직 눈에 띄는 병이 없는 걸 봤을 때 장순이는 5~10년도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내 소망이기도 하다"고 했다.

박준영 사육사에게 장순이는 '운명' 같은 특별한 존재다.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던 2008년, 보조 사육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 장순이를 만났다. 장순이를 아기 때부터 맡아온 김종갑 사육사와 함께 일하다가 2013년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보조 사육사 시절부터 13년간 기린들을 돌봤다. 동갑인 장순이와의 추억도 그렇게 쌓여왔다.

박 사육사는 그래서 장순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자는 꿈과 함께….
"장순이는 우리 동물원의 보물이고 내가 사육사의 꿈을 꾸게 해준 친구죠. 내년 추석에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우리와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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