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가수 션을 아이티로 불러들인 지진 피해 어린이 편지

허호 2021. 9.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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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49)

2010년 아이티 대지진 후. 양육하는 각 어린이의 상황을 기록한 문서를 관리하고 있던 컴패션은 각 가정의 피해 상황 파악을 빠르게 확인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체계적으로 구호물자를 배분하고 있는 현장에 한국컴패션 홍보대사 가수 션도 함께했다. [사진 허호]


지난 8월 14일 아이티에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각종 뉴스와 기사에서는 지진 피해의 참혹함과 아이티에 있었던 불행한 소식에 집중되어 있는 듯 했습니다. 비극 자체와 원조 요청에 집중하는 어조였습니다. 하지만 2010년과 2013년 두 번 아이티를 방문했을 때 제가 본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재건을 위한 뚜렷한 의지였습니다.

물론 2010년 지진 이후 바로 방문했을 당시 아이티의 무너진 거리에서 저도 재건의 활기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를 돌보고, 지키는 개개인을 만나고 그들이 품은 희망을 보았을 때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난 우리나라를 떠올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왜 이런 어려움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만난 그들은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0년 1월 12일 아이티 대지진이 있고 난 뒤 가수 션은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된 4월, 아이티로 날아갔다. 그가 후원하고 있던 아이가 피해를 입었기 때문. 지진 직후 생사를 알 수 없던 신티슈(당시 12세)는 목숨을 건진 상태였다.


2010년 당시 가수 션이 후원한 열두 살 소녀 신티슈는 지진의 피해가 컸던 포르토 프랭스에 살고 있었습니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던 순간에 마침 부모님과 마당에 나와 있는 바람에 목숨을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아이티 소식이었지만, 워낙 피해가 컸고 보도가 며칠 동안 계속돼 컴패션에도 후원자의 문의가 줄을 이었습니다. 그중에는 가수 션 씨도 있었는데, 지진 직후 마침 신티슈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습니다. 곧 무사하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션 후원자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지진이 있은 지 2개월 후 3월에 쓴 편지였는데, 후원자인 션 씨에게 썼다는 편지의 내용을 저도 들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쓴 편지가 제 마음에도 제법 담겼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지진에도 안전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요. 후원자님의 기도와 어린이센터에서 주신 손길에도 감사해요. 저의 집은 무너졌고, 학교와 어린이센터도 무사하지 못했어요. 다친 사람과 많은 아기가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슬펐어요. 지진이 후원자님의 나라에도 발생했나요? 후원자님께 하나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기도할게요.”

션 후원자가 컴패션을 통해 후원하는 아이티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션은 2013년 다시 방문한 아이티에서 신티슈와 또 만남을 가졌다. 2년 사이 신티슈는 훌쩍 키가 컸고, 션의 후원 아이들 사이에서 큰누나의 모습을 보였다.


지진 직후 신티슈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지진으로 자기보다 연약한 어린이가 죽어가는 모습에 가슴 아파했지만 먼저 자신이 무사히 살아남은 것과 받은 도움에 감사했습니다. 그 도움을 준 사람 중 한 사람인 후원자를 떠올렸고 경황없는 중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후원자님의 나라에도 지진이 발생했느냐고 묻는 이 질문과 후원자님을 축복하는 글에서 저는 읽을 수 있었습니다. 후원자를 향한 축복의 마음과 후원자의 나라에는 지진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요. 이 편지가 후원자인 션을 아이티로 날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2020년에 신티슈는 스물두 살이 되어 컴패션을 졸업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자기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진에서 신티슈는 당찬 아가씨의 모습이 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눈빛이 살아있는 젊은 청년이 있는 아이티의 미래도 살아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0년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를 방문한 가수 션.


무너진 폐허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아야 하겠습니까. 단순히 재난재해의 현장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을 업으로 삼은 한 사람으로서 되도록 담담한 어조이기를 바랍니다. 선동하거나 어떤 의도를 담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하지만 정말 소중한데 감춰져 있거나 마땅히 봐야 할 것인데 읽히지 않을 때, 그곳에만큼은 카메라를 갖고 가고자 합니다. 그곳에 국경을 초월한 사람들의 다양한 인상과 표정이,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성실함이, 어린아이의 사랑스러움이 담겨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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