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人들]단 열흘의 반짝임을 위한 일 년의 기다림.. 반딧불이 사육사 김선진

장진영 2021. 9. 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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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이유는 짝짓기를 위해서다. 수컷은 두 줄, 암컷은 한 줄의 빛줄기를 깜박이며 서로를 찾아 날아든다. 그들에게는 단 열흘간의 구애 기간이 주어진다.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물속과 흙에서 일 년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반딧불이의 또 다른 이름은 ‘개똥벌레’. 산업화 이전에는 길가의 개똥만큼 흔하기도 했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성향 탓에 개똥으로 많이 날아들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현재 야생에서 반딧불이 성충의 생존율은 1~2%에 불과하다. 반딧불이 서식지 일대가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이유다.

김선진 사육사가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인근에 위치한 반딧불이 사육장에 자리했다. 김 사육사가 길러낸 애반딧불이 성충이 그린 빛의 궤적과 그의 모습을 합성했다. 장진영 기자


“반딧불이의 비행을 혼자서만 보기는 아까워요. 반딧불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를 둥둥 떠다니며 빛나는 별을 바라보는 기분이에요. 많은 수의 반딧불이가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분들도 잠깐이나마 저와 같은 황홀한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자연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계절은 아니지만, 화려한 비행을 꿈꾸는 반딧불이를 키우고 있는 김선진 사육사(38)를 찾았다. 김 사육사는 에버랜드 사파리에서 반딧불이를 인공사육하고 있다. 곤충도 사육이 될까?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투명한 그릇에 담긴 애반딧불이가 밝은 빛을 내고 있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연상하게 한다. [사진 에버랜드]

Q : 현재 맡은 업무는
A : 특수동물학과를 졸업하고 곤충 사육사로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비를 시작으로 현재는 연간 70~80만 마리의 애반딧불이(국내 토종 반딧불이는 애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 3종이 있으며 이중 애반딧불이의 출현 시기가 가장 빠르고 크기는 제일 작다)를 키우고 있습니다.

부화한 애반딧불이 알. 약 0.2m의 크기다. 장진영 기자
애반딧불이 성충은 약 1cm의 크기다. [사진 에버랜드]
개체수 확인을 위해 부화되는 알을 카운팅해 기록한다. 장진영 기자

Q : 반짝이는 반딧불이가 되는 과정은
A : 애반딧불이는 6월에 짝짓기해서 물가에 알을 낳는데 한 달 후에 애벌레가 부화합니다. 그 애벌레는 물속에서 다슬기나 물달팽이류를 먹으면서 겨울을 나고 이후 땅 위로 올라와 총 4번의 탈피 과정을 거쳐 성충이 됩니다. 이후 짝짓기를 위한 약 열흘간의 비행을 시작합니다.

Q : 반딧불이를 사육하는 이유는
A : 어르신들 말씀에 예전에는 시골에 반딧불이가 너무 많아서 피해서 다닐 정도로 개체 수가 많았다고 합니다. 반딧불이는 야행성이라 인공조명의 존재만으로도 생존에 위협적이에요. 이곳의 존재 이유는 일정한 환경에서 많은 반딧불이를 길러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데 있습니다(현재 자연 방사를 위한 서식지를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생존율을 높이는 작업에 집중 하는데요, 성충으로 자라나는 비율이 약 30%에 달합니다.

김 사육사가 수로에 먹이(다슬기)를 넣고 있다. 이곳에서 연간 소비되는 다슬기의 양은 약 1톤에 달한다. 장진영 기자
수로에 있는 애반딧불이의 애벌레. 다슬기를 주 먹이로 삼는다. 장진영 기자

Q : 작업장 환경이 서늘하고 습하다
A : 반딧불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야생과 같은 온도와 습도 유지가 중요합니다. 이전에는 산에 가서 흙을 채취해오기도 했는데, 서식지를 그대로 옮겨오는 것보다 일정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번식에 더 효과적입니다. 흙 배합 등의 작업으로 생태 환경을 일정하게 만들어주었더니 이전보다 부화율이 10~20% 정도 증가했습니다.
반딧불이 사육은 애벌레 단계에서 손실률이 가장 높다. 곁에서 작업을 지켜보는 내내 그는 수로에 있는 애벌레들에게 유난히 정성을 쏟는 모습이었다. “이번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섬세하게 길러낼 계획입니다. 부화 단계에서 바로 수로에 방사하지 않고 수반으로 옮겨 더 건강해질 때까지 직접 먹이도 주려고요”

김 사육사가 수반에 담긴 애반딧불이 알을 관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황홀한 비행을 하는 애반딧불이 빛의 궤적. [사진 에버랜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반딧불이’는 그 이름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청춘의 빛”이라고 은유한다. 김 사육사도 잡을 수 없는 ‘잠깐의 황홀함’으로 반딧불이를 지켜봐 주기를 부탁했다. “오랜 시간 머물수록 서식지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조심스레, 잠깐 보고 온다는 생각으로 반딧불이를 바라봐 주셨으면 합니다”. 반딧불이는 무주에서 자주 관찰된다. 설천면 일대 서식지는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제주 곶자왈도 운문산반딧불이의 집단 서식지로 꼽힌다.

장진영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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