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의 카톡 친구, 진짜 '내 사람'은 누구일까
'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글쓰기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 주제는 '40대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이나영 기자]
▲ 나도 누군가에게 '내 사람'으로 남기를 바란다. |
ⓒ ?Unsplash |
카카오톡의 친구 목록을 열어본다. 친구 목록에는 736명이 있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정말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살짝 놀란다. 하지만 이 중에서 내가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오늘만 해도 업무적이고 공적인 대화가 아닌 이야기를 주고받은 친구는 4~5명 안팎이다. 1주일 동안 나의 채팅창을 찾아보면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10개가 채 되지 않는다. 아마 친구목록에 있다 해도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은 사람의 숫자는 상당수일 것이다.
내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세 묶음 정도로 분류한다면 '친한 친구', '그냥 친구', '지인'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친한 친구'란 일상을 자주 나누고,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상황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이다. '그냥 친구'는 가끔 안부를 묻고, 약속을 잡아 만나며 관계를 이어가는 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인'이란 그 외의 범위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겠지. 사회적이고 공적인 관계로 서로의 연락처를 공유하고 있는 사이라고나 할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인'은 확장되고 '친한 친구'의 범위는 축소되어간다. 어렸을 때에는 사람을 만나 친구를 만드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쉬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새로운 이에게 나를 보여주고 관계를 맺는 경험이 점점 줄어든다. 일을 하면서, 생활을 통해서 안면을 트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모두 나의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관계를 넓히고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필요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구축한 관계와 사회망 안에서 조금 안전하고 편안한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은 중요하다. 어릴적 친구들처럼 운동장에서 땀흘리며 뛰어놀며 기쁨을 나누는 것만으로 친해지는 관계란 어른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연에는 마음을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관계로 맺어지는 '지인'의 영역에서는 '적절한 친절과 배려'가 관계를 성장시킬 수 있다. 가끔 안부를 묻고 연락을 주고 받는 '그냥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관심과 소통'으로 맺어진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진짜 친구'와의 사이에서는 '진심을 다 하는 것'이 관계를 깊어지게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인간관계를 정말 잘 꾸려나가기 위해 무리하게 애쓰거나 내 에너지를 소모할만큼 노력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라는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면 느껴지는 '마음의 결'이 있는데, 그것이 내 마음과 잘 어우러지는 사람이 있고 나와 다른 공기, 다른 결을 가진 사람도 있다.
어릴 때는 사람을 보면 그가 가진 장단점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알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장단점이 있는 게 아니라, 모두 다른 마음의 색과 결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며 내 마음에 잘 스며드는 사람이면 좋은 인연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겐 거리가 필요하다
대학교 시절, 4년 내내 꼭 붙어 다니고 서로의 모든 비밀을 공유했던 친구와 20대 후반, 인연이 끊어지고 남이 되어버리고 만 경험이 있다. 친구가 인생의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말리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만들고 만 상황이었다. 나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기도 했던, 정말 가까운 절친이었기에 친구와의 절교는 보기 싫은 흉터가 깊게 남아버린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 경험 뒤에 남는 건 친구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이 아니었다. 함께했던 시간, 주고받은 마음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좋았던 추억들이 모두 다 잿더미처럼 변해버리는 씁쓸한 현실이 오래 후회로만 남았다. 그렇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내가 받아들이게 된 서글픈 진리는, '어쩔 수 없는 관계에 너무 애쓰고 상처받지 말자'라는 것이었다. 어긋난 마음의 방향이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것은 애쓴다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신분석전문의 김혜남은 책 <당신과 나 사이>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 애쓰기보다는 '거리 두기'를 강조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 애쓰기보다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서 말하는 '거리'란 상대방과 나 사이에 '존중'을 넣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지 않고 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 친구와의 경험도 결국, 우리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가까웠기에 그만큼 주고받은 상처가 커져버린 일이었다. 친밀한 관계라 해서 서로의 생각과 삶에 간섭해도 되는 권리를 갖는 건 아니었을텐데, 어리고 미숙했던 관계에서의 실수로 아프지만 커다란 인생공부를 경험한 것 같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내가 믿고 사랑하는 '내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우리가 오랫동안 좋은 관계로 서로를 이해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서로에게 대단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아주었고,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이해했으며 늘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믿고, 지켜주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이라는 말을 남겼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서로를 데이거나 아프게 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내가 나의 '진짜 친구', '내 사람'을 만들고 지켜내는 방법은 아니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사회적인 관계가 확장되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연락을 주고 받지만, 사실 그 복잡한 관계와 만남 속에서 묘한 외로움과 공허함을 경험하는 날들이 늘어간다. 대화를 하고, SNS의 세상에서 일상을 공유하고 모임에서 얼굴을 보며 웃으면서도 마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모되는 기분에 치일 때가 있다. 휴대전화 속의 연락처는 늘어가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고독이 커다란 크기로 내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 감정을 겪으며 소진되느니 차라리 외로움이 조금 더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외로움에 익숙해지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마음을 나누고,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친한 친구', '내 사람'을 찾는다.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라는 책 제목도 있지 않은가.
그런 순간 기대하고 찾게 되는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는 내 마음을 다 보여주는 친한 사이, '내 사람'의 영역은 아주아주 극소수, 몇 명에 국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내 삶을 채우기에는 그 몇 명이면 충분하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의미 있는 좋은 사람은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거나, 그럴듯한 조언을 많이 건네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난 뒤에, '아, 너한테 이야기하길 잘한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이 세상에 있는 수백 명 다 필요 없어. 나한텐 네가 있잖아'라는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 사람, 그런 대상이 바로 '내 사람', 나의 '진짜 친구'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어떤 순간들'을 모아두는 습관이 있다. 친구가 나를 위로하며 건네주었던 말 한마디, 나를 궁금해하던 상대의 질문 하나, 우리가 동시에 커다랗게 웃던 순간, 함께 걷다가 마주쳤던 한 줄기 바람 같은 것,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우리 사이에 놓여 있던 식은 커피잔 같은 것들... 그런 기억들을 모아두는 마음의 상자는 내 삶을 견디는 힘이 되어준다.
사람과의 관계에 진심을 다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내 사람'을 내 삶에 잘 심어두고 싶다고 생각하며 나를 돌아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을까. 함께 따뜻한 밥 한끼를 먹고 싶은 편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나 역시 상대에게 말을 많이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온 마음을 다해 귀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내 사람'에게 좀 더 진심인 사람, 조금 더 다정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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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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