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승 투수 유희관 "2013년 5월 4일이 기억납니다"
(엑스포츠뉴스 고척, 김현세 기자) "내가 두산 베어스에서 선발을 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나도 그랬다. 게다가 100승을 할 줄은 더 몰랐다."
유희관은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 팀 간 시즌 15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해 투구 수 101구로 6이닝을 책임지는 6피안타 4탈삼진 무4사구 무실점 투구로 시즌 3승(5패)째를 거뒀다. 이날 승리로 개인 통산 100승을 완성했다. KBO 역대 32번째 100승 투수가 된 유희관은 장호연(109승)과 장원준(129승)에 이어 구단 역대 3번째 100승 투수 반열에 올랐다. 베어스 프랜차이즈에서 좌투수로는 최초다.
지난 5월 9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개인 통산 99번째 승리를 거둔 유희관은 이후 6경기 만에 아홉수를 벗어났다. 앞선 5경기 동안 유희관은 평균자책점 8.87 이닝당출루허용률(WHIP) 2.23에 그쳤다. 지난 1일 잠실 KIA전에서는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불펜에서 1점 차를 지키지 못해 선발승에 실패했고, 12일 잠실 LG 트윈스와 더블헤더 1경기에서는 7득점을 지원받고도 4⅔이닝 5실점으로 승리 투수 요건에 아웃 카운트 1개를 남긴 상황에서 바뀌기도 했다.
지난 2013년 5월 4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둔 유희관은 대체 선발로 시작해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을 거둔 선발 투수로 거듭났다. 첫 승을 거둔 이후로 3,060일 만에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한 그가 대기록을 달성하기까지 던진 23,148개로 수많은 공을 던지며 금자탑을 쌓았다. 꾸준했던 그였지만 올 시즌에는 100승을 달성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99승 이후로 5전6기 만에 대기록을 완성했다.
-100승을 달성했다.
▲돌이켜 보면 1이라는 숫자가 100이 될 때까지 많이 힘들었다. 매 경기 쉬운 경기는 없었다. 느린 공을 갖고 많은 편견과 싸우며 여기까지 왔고, 이겨내려 노력했다. 어떻게 99승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승하는 게 어려웠다. 의미 있는 100승이다.
-100승까지 13년이 걸렸다.
▲내가 입단했을 때부터 두산에서 선발을 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100승을 할 거라는 건 더 몰랐다. 두산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다. 좋은 동료들, 감독님과 코치님들께서 나를 위해 노력해 주셨다. 특히 내 공을 받아 주며 리드해 준 (박)세혁이와 (양)의지, (최)용제, (장)승현이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지난 5번의 등판과 오늘은 뭐가 달랐나.
▲오늘 마음이 편했다. 100이라는 숫자를 의식 안 할 수 없었다. 잘 던지려 하다 보니 급했다. LG전에서도 5회만 넘기면 됐는데 조바심이 들었다. 야수들이 밥상을 차려 줬는데도 떠 먹지 못했다. 오늘만큼은 100이란 숫자를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던지려 했다. 결과가 나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선수가 도와 줬다.
-꾸준한 관리가 뒷받침됐기에 100승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부모님께 가장 감사하다. 부상 없이 뛸 수 있던 것도 좋았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잠실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쓰니까, 두산에서 뛰니까 10승한다'고. 못하면 내가 욕먹는다는 생각으로 뛰었다. 그라운드에서 보여 주려 했다. 돌이켜 보면 악착 같이 했다. 남이 보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승리에 대한 욕심이 컸다. 1이닝이라도 더 던지려 했다. 팀을 위해 던진다고 하지만 이기적으로도 보일 수 있었다. 성적이 안 났다면 나도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었다. 야구 인생에서 절박함이나 악착 같이 하려 했던 승부욕은 내게 독이 될 때도 많았지만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질 수 있는 냉정하고 험난한 프로 세계에서 버틸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100승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승리는?
▲첫 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이라는 숫자가 있었기에 100이 있다. 아직도 기억난다. 2013년 5월 4일 LG전이.
-큰 경기를 많이 경험했음에도 100승을 앞두고는 부담이 더 커 보였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었다. 많은 선발 경기에 나갔고 10승을 했다. 하지만 경험 많은 베테랑이라도 야구를 잘해야 자신감이 생긴다. 마운드에서 조바심이 들고 못 던지면 안 된다. 올 시즌 처음으로 '2군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그런 시즌이었다. 그동안 느린 공으로도 자신 있게 던졌는데 올해는 주눅들기도 했다. 가장 큰 원동력은 자신감이다. 내 공을 믿고 동료를 믿고 던졌다. 그게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남은 커리어에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앞으로 몇 승을 더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꿈을 키워나가는 건 내게 동기부여가 된다. 너무 과분한 기록을 세웠는데,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장호연 선배님의 109승이다. 야구를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열심히 해서 두산 최다승 109승 목표를 갖고 준비하겠다.
-'느림의 미학'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좋다. 나를 대변할 수 있는 나의 수식어다. 어떻게 보면 강한 공만이 살아남는 프로 세계에서 느린 공으로도 살아남은 것에 자부심도 생긴다. 프로야구를 희망하는 느린 공 투수들에게 조금이나마 롤모델이 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돼 자부심을 느낀다.
사진=두산 베어스
김현세 기자 kkachi@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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