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 칫솔, 캔..해양 쓰레기가 박물관 진열장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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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나무로 된 고급 진열장이 있다.
환경재앙을 경고하기 위해 해양 쓰레기들을 수집해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작가들은 적지 않다.
작가는 해양 쓰레기를 고가의 수집품처럼 진열장 안에 넣은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런 연장선에 있는 작업으로, 박물관의 전형적인 수집, 분류, 진열방식으로 참조해서 한국에서 수집한 해양 쓰레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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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나무로 된 고급 진열장이 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모으고 분류한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가까이 가서 보곤 놀라게 된다. 1회용 라이터, 테니스 공, 음료수 캔, 닳아버린 칫솔, 깨진 병 조각, 병 뚜껑, 세제 용기…. 그렇다. 해양 쓰레기들이다.
환경재앙을 경고하기 위해 해양 쓰레기들을 수집해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작가들은 적지 않다. 미국 작가 마크 디온(60)의 한국 첫 개인전 ‘한국의 해양 생물과 다른 기이한 이야기’가 그런 전시와 차별화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작가는 해양 쓰레기를 고가의 수집품처럼 진열장 안에 넣은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해양 폐기물 캐비닛’이라고 명명된 이 설치 작품은 르네상스 이후 유럽 부유층이 식민지에서 수집한 진귀한 물건을 보관하던 ‘호기심의 방’을 상기시킨다. 호기심의 방은 미술관(박물관)의 기원이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30여 년 동안 박물관이 역사, 지식 및 자연세계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형성해온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해왔다. 작가는 자연세계를 향한 인간의 호기심과 열망을 가장 눈에 띄게 확인할 수 있는 장소야말로 박물관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런 연장선에 있는 작업으로, 박물관의 전형적인 수집, 분류, 진열방식으로 참조해서 한국에서 수집한 해양 쓰레기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첫 개인전을 하며 한국의 특성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찾은 것이다. 설치 작품은 버려져 떠돌아다닌 인간 문명의 ‘배설물’을 예술품처럼 취급함으로써 생각의 틈새를 만들어낸다. 진열장 안에 보석처럼 정갈하게 진열된 해양 쓰레기는 환경 보호에 대한 어떤 구호보다도 간절한 메시지를 던진다.
전시장에는 전반적으로 위트가 감돈다. 전시장 벽면에는 해양 생물 도감 같은 드로잉이 그려져 있는데, 독서하듯 따라 읽다 보면 슬며시 웃게 된다. 예컨대 갖가지 조류의 머리 부분을 그려놓고선 그 아래 새 이름을 적어 놓은 것도 있다. 그런데 새의 별칭처럼 김소월, 윤동주 등 한국의 작가 이름이 나열돼 있다. 자세히 보니 새는 14마리인데, 작가 이름은 15명이 아닌가. 당연히 작가 이름도 14명일 거라고 생각하는 관람객들의 허를 찌르는 것이다.
전시장에서 최근 만난 작가는 “저는 권위가 없다. 작가라는 존재를 무조건 신뢰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예술 앞에 서면 왠지 주눅이 드는 관람객들에게 예술의 권위에 대해 회의하고 의심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의 대표적인 표본인 공룡도 전시해놓았다. 공룡이 놓인 흰색 좌대 밑에는 쓰레기 도구를 담아둔 공간이 있다. 그런데 그 문을 닫지 않고 일부러 조금 열어두어 쓰레기 도구가 보이게끔 했다. 박물관의 권위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노동, 광을 내기 위한 도구들이 있음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전시는 서울 종로구 삼청로 7길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11월 7일까지 열린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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