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진짜 속내
[장혜령 기자]
▲ 영화 <기적> 포스터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무뚝뚝한 기관사 아버지(이성민), 엄마 같은 누나 보경(이수경)과 시골 마을에 사는 준경(박정민)은 몇 년째 청와대로 편지를 보내는 소년이다. 마을은 도로가 없다. 기차가 다니는 승부역까지 가려면 터널 3개를 지나가야만 한다. 자동차와 사람이 다리는 길이 없어 기찻길만 존재하는 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 영화 <기적>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한 해 두 해 대답 없는 편지를 보내던 준경은 훌쩍 자라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바쁜 아버지 얼굴 볼 새도 없이 왕복 다섯 시간 걸리는 통학길을 묵묵히 오간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오늘도 편지 보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같은 반 친구 라희(임윤아)는 준경의 비범한 재능을 발견하고, 그 사연에 힘을 보태주며 급속도로 친해진다. 결국, 마을에 간이역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는 준경의 꿈도 포기할만한 큰 집착이 되어 미래를 삼켜 버린다. 대체 마을 간이역을 만드는 게 일생일대의 꿈이 될 일인가. 영화는 0%의 확률을 100%로 끌어 올리는 판타지에 주목한다.
영화 <기적>은 'Miracle'의 뜻과 철로를 달리는 기차의 '경적소리'라는 두 가지를 포함한다. '그게 되겠냐!'싶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기적은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어주기 충분하다.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온 국민의 캐치플레이 '꿈은 이루어진다'를 옮겨 놓은 것만 같다. 말도 안 되는 일, 감히 쳐다볼 수도 넘볼 수도 없는 일을 여럿이 힘을 모아 이루는 게 바로 '기적'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영화 속 중요한 소재인 '기차'는 마을 사람들의 발이자,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수단이 되어준다. 준경은 어릴 적 잃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가 하늘의 별이 되어다고 생각할 만큼 스스로를 고립시켜 왔다. 하지만 유난했던 호기심은 천문학을 좋아하는 괴짜 소년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내 탓이라고 여겼던 가슴속 응어리를 힘차게 달려 나가는 기차에 싣고 멀리 떠나보내 수 있게 된다.
▲ 영화 <기적>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
누구나 후회 없는 삶을 꿈꾸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없다. 엄마 없는 남매를 키우고 기관사로서 소명을 다해야만 했던 그 시절 아버지는 유난히 말을 아끼셨다. 혹여나 자식이 잘 못 될까 노심초사했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금세 휘발돼 사라져 버릴까 입가에 맴도는 말을 그대로 삼키셨다. 자식의 입학, 졸업식에는 항상 일 핑계로 참석하지 않으셨고, 남사스럽다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아버지는 살면서 두 가지를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내가 자식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아 두려웠다고 말이다. 그래서 준경의 아버지가 기관사인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편, 연기 구멍 없는 배우들의 호연이 좋다. 박정민을 중심으로 전반부는 친구, 중반부는 누나, 후반부는 아버지와의 서사 분리가 모이는 결말부의 매끄러운 하모니가 돋보인다. 80년 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시대 배경과 다양한 소품, OST가 반영돼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향수를 자극한다. 교복 자율화 시대를 반영한 개성 넘치는 패션은 볼거리를 충족시킨다. 그 밖에 경상북도 봉화 특유의 사투리가 돋보이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공간이 사랑스럽게 재현되었다. 잊고 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기적은 어쩌면 가까이에 있음을 알려주는 소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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