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철 시대'의 순조로운 시작 알린 SK

이준목 입력 2021. 9. 1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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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철 감독, 첫 공식 대회를 우승으로 장식

[이준목 기자]

ⓒ 장호진
 
전희철 감독이 '초보 감독'의 우려를 딛고 첫 공식 대회를 우승으로 장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예고했다. 전 감독이 이끄는 SK는 18일 경북 상주체육관에서 열린 '2021 MG새마을금고 KBL 컵대회 결승전'에서 원주 DB에게 90-82로 승리했다.

SK는 총 14개의 가로채기와 11번의 속공을 성공하며 16개의 실책을 기록한 DB를 조직력에서 압도했다. SK는 1쿼터에만 18-25로 뒤졌으나 최준용이 10득점을 폭발시킨데 힘입어 주도권을 가져온 2쿼터 이후로는 단 한번도 리드를 내주지 않고 낙승을 거뒀다. 자밀 워니가 20득점 12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의 맹활약을 펼쳤고, 최준용 16득점, 리온 윌리엄스 14득점 6리바운드로 활약했다, 팀의 기둥 김선형은 11득점 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기자단 투표에서 대회 MVP에까지 선정됐다.

전희철 감독은 지난 4월 문경은 전 감독에 이어 SK의 사령탑에 오른 데 이어 첫 공식전부터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전 감독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경복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전주 KCC-서울 SK 등에서 선수생활을 보낸 전 감독은 1990-2000년대 '에어본'이라는 별명으로 농구대잔치 시대를 풍미한 특급 파워포워드였다. 2001-02시즌에는 오리온의 창단 첫 통합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국가대표에서도 오랫동안 활약하며 1997년 ABC대회(현 FIBA아시아컵)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잇달아 물리치고 팀을 28년만의 우승으로 이끄는데 기여하며 대회 MVP까지 선정됐다. 이 대회는 지금까지도 한국이 아시아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마지막 대회로 남아있다. 2002년에는 부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중국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건 것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선수생활 말년 SK로 이적하며 첫 인연을 맺었던 전희철은 은퇴 후에도 2군 감독으로 지도자 경력을 쌓으며 꾸준히 SK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11년 문경은 감독이 취임하자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코칭스태프로 함께 호흡을 맞춰왔고, 2017-18시즌에는 마침내 18년만의 챔프전 우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애런 헤인즈를 비롯하여 김민수-최부경-최준용-안영준까지 3.5번~4.5번에 가까운 어정쩡한 트위너형 선수들을 팀 시스템에 녹아들여 SK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포워드 농구'를 구축한 것은 코치 전희철의 공로도 적지않았다는 평가다.

문경은과 전희철 두 사람은 농구대잔치 세대'의 주역으로 동시대를 풍미한 스타 출신이지만 현역 시절에는 각각 고려대-연세대를 대표하는 간판 스타로서 경쟁팀의 라이벌 관계에 더 가까웠다. 보통 학연과 인맥으로 이어져있는 경우가 많은 농구계에서 경쟁팀 출신의 인물들이 코칭스태프로 짝을 이뤄 한 팀에서 10년이나 별다른 문제 없이 장수한 사례는 이례적으로 꼽혔다. 심지어 문경은 감독은 물러나는 상황에서도 전희철 감독의 부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격려해는 모양새로 감독교체의 모범사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희철 감독은 '준비된 지도자'로도 꼽힌다. 전 감독은 SK에서 은퇴한 이후 10여년간 전력분석원-운영팀장-2군 감독-수석코치까지 한 팀에서 다양한 역할을 거치며 마침내 감독의 자리까지 올랐다. 현장에서 프런트까지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팀사정과 문화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는게 강점이다.

73년생으로 한국나이 49세인 전 감독은 현재 프로농구 10개구단 감독 중 나이로는 가장 막내다. 하지만 현재 KBL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대부분 40대 초반에 첫 지휘봉을 잡았던 것이나, 코치시절을 포함한 오랜 지도자 경력을 감안할때 오히려 전희철 감독 데뷔는 대단히 늦은 편에 가깝다. 현역 은퇴 이후 공백기 없이 꾸준히 프로농구 현장에서 활동을 이어왔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다른 베테랑 감독들과 비교해도 경험 면에서 크게 밀릴게 없다.

첫 감독 데뷔전이었던 컵대회에서 이미 전희철 감독은 초보 감독답지않은 안정된 경기운영과 빠른 상황판단으로 자신의 역량을 증명했다. SK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외국선수가 빠진 KCC를 96-73으로 대파했고, 외국선수가 모두 출전한 LG전부터 준결승 KT전-DB와의 결승전까지 3경기 연속 초반 열세를 뒤집고 역전승을 이뤄냈다는 것은 인상적인 장면이다.

문경은 감독 시절과 비교하여 선수구성이나 전술적 틀은 비슷했지만, 전희철 감독의 차이점은 빨라진 템포였다. 문경은 감독이 외국인 선수나 김선형 위주의 확률 높은 공격을 선호했다면, 전희철 감독은 특정선수에게 의존하지않고 모션오펜스와 2대2 플레이로 파생되는 공격을 강조했다. 또한 대회 내내 경기흐름이 약간 흔들린다싶으면 바로 작전타임을 걸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실제로 전 감독의 작전타임 이후 SK의 경기력이 살아나는 장면이 많았다. 오랜 코치 경력을 통하여 다져진 냉철한 판단력과 경기흐름을 짚는 타이밍 등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SK는 지난 시즌 우승후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부상자 속출과 사건사고로 전력유지에 어려움을 겪으며 추락한바 있다. 하지만 이번 컵대회를 통하여 베스트멤버들이 모두 정상 가동되었을 때는 어느 팀도 두렵지않은 전력임을 확인했다. 특히 문제아였던 최준용이 돌아오면서 공수에서 집중력이 높아진 모습을 보여준 것이 팀의 상승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희철 감독도 MVP 김선형이나 워니보다도 최준용을 팀의 수훈갑으로 꼽으며 칭찬한 이유다.

현재 프로농구에서는 전희철 감독과 동시대에 선수로서 활약했던 '농구대잔치 스타 출신 감독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문경은과 이상민(삼성), 이상범(DB), 조상현(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배출한 연세대, 허재(전 KCC)-김영만(전 DB)-김승기(KGC) 등을 배출한 중앙대 출신들에 비하여, 고려대 출신 감독들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이상하리만큼 지지부진했다. 이충희 전 DB 감독을 비롯하여 전희철 감독보다 후배인 현주엽(전 창원 LG)-신기성(전 여자농구 안산 신한은행) 등도 만저 프로 감독으로 나서서 모두 이렇다할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전 감독과 동기인 김병철 코치는 고양 오리온에서 여전히 코치로 머물고 있다.

전희철 감독은 이번 대회를 통하여 90년대 안암골 호랑이 출신중 가장 먼저 '감독으로 프로무대 첫 우승'이라는 의미있는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순조로운 첫 출발을 끊은 전 감독이 내친김에 다가오는 새 정규시즌에서도 선전하며 고려대 출신 감독 징크스를 완전히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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