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오 '더 체어'엔 비발디..드라마 속 의미심장한 클래식

김호정 2021. 9. 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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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몰아보는 시리즈 속 '클래식 코드'
드라마 내용과 음악의 필연적 연결
지난달 공개된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맨 왼쪽)의 넷플릭스 '더 체어'. [AP 연합뉴스]


16일 방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시즌 2 마지막회는 미뉴에트로 시작한다. 다섯 현악기가 함께 하는 5중주 작품. 이탈리아의 작곡가 루이지 보케리니가 1771년 만든 곡이다.

음악은 극중 석형(배우 김대명)이 듣기 시작해 익준(조정석)과 곡명 맞히기 내기를 한다. 둘은 이렇게 대화한다.“제목이 뭔데?” “안녕하십니까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보케리니의 미뉴에트는 수능 영어듣기평가의 안내 음악으로 많은 이에게 익숙하다. 왈츠와 같은 3박 춤곡이지만, 미뉴에트는 귀족과 왕족의 춤으로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했다. 춤의 스텝은 왈츠보다 복잡하고 음악은 더욱 정제돼있다. 누구나 알지만 무엇보다 귀족적인 음악, 보케리니 미뉴에트는 석형의 ‘우아한 취미’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상징이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2'. 극중 석형(오른쪽)은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tvN]


추석 연휴에 몰아볼 드라마에 이처럼 ‘클래식 코드’가 숨어있다. 우연하게 쓰이지 않고, 이유있게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이다.

음악과 극의 내용이 딱 떨어지게 연결되기도 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의 오프닝에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레퀴엠, 즉 장례 미사 음악이 쓰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진노의 날(Dies Irae)’ 합창 부분을 편곡해 사용했다. 망자들이 신의 심판을 받는 장면. 이승을 떠난 불안과 절규를 담고 있는 ‘진노의 날’은 다른 작곡가들의 레퀴엠에서도 가장 비극적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본인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한 마지막 작품인만큼 ‘인간의 욕망’과 ‘죽음’을 다룬 이 드라마에 필연적인 음악이었다.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의 최근작인 넷플릭스‘더 체어’는 에피소드 총 6편 중 세 편에 클래식 음악을 넣었다. 풍자적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시리즈 첫 편의 맨 처음이 안토니오 비발디의 합창곡 ‘글로리아’(작품번호 589)다. 이 음악의 첫 곡인 영광송(Gloria in excelsis Deo), 높은 곳의 주께 영광 돌리는 부분을 썼다. 화면에는 미국 동부의 오래된 대학 건물이 거대하게 자리한다. 한국계 여성인 지윤(산드라 오)이 학과장으로 처음 출근하는 날이다. 웅장한 음악은 보수적인 대학을 암시한다.

이밖에도 4화에서 감원 위기에 놓은 노교수의 수업 장면에 바흐 두대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사용하면서 17세기 바로크 음악을 노장파와 결합했다. 하지만 마지막화에서 클래식 음악은 지윤과 함께 흐른다. 쇼팽의 녹턴(야상곡) 6번이 흐를 때, 학과장 경력이 위기에 빠진 지윤은 수군대는 학생 사이를 걸어간다. 대표적 소장파였던 그도 예전 세대가 되어가는 변화를 암시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화제작이었던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소프라노들이 주인공인 만큼 클래식 음악이 많이 쓰였고 이 또한 암시적이었다. 특히 시즌1에서 천서진(김소연)이 아버지를 죽이고 피아노로 연주하는 프란츠 리스트 ‘마제파(Mazeppa)’는 의미심장했다. 빅토르 위고 원작의 ‘마제파’는 금지된 사랑 끝에 끔찍한 형벌을 받는 청년의 이야기다. 불륜과 복수가 주요 코드인 드라마의 내용과 겹친다. 이밖에도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중 ‘방금 들린 음성’도 겉으로 부드럽지만 만만치 않은 여성을 그린다는 점에서 천서진, 오윤희(유진)가 부르는 의미가 부각됐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김소연이 피아노를 치는 장면. [사진 SBS]


우연치 않은 클래식 음악은 추석에 몰아볼 수 있는 콘텐트 곳곳에 숨어있다. 넷플릭스 ‘브리저튼’에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작품이 자주 나온다. 특히 여주인공 다프네가 7화에서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은 당대의 음악 중 가장 불안하고 비규범적인 음악이라는 점에서 주인공의 심경을 묘사했다. JTBC 드라마‘부부의 세계’ 중 고예림(박선영)이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의 3악장이 나왔다. 장엄하되 불안한, 베토벤 특유의 느린 악장이다. 음악 그 자체가 스토리인 작품들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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