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사람 죽어야 내가 산다..목숨값 1억, 벼랑끝 '을들의 싸움'

김정연 2021. 9. 1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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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
빚더미에 내몰린 상태에서 돈을 구할 곳은 없고 막막한 당신에게, '게임에서 이기기만 하면 현금을 바로 준다'는 제안이 들어온다면? '오징어 게임'은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임장을 그렸다. 사진 넷플릭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서 계신 분들입니다.“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이런 선언으로 출발한다.


내 목숨에 1억, 떨어지면 죽는다… 그런데도 돌아갈 수밖에


첫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는 참가자 456명이 영문도 모른 채 투입된다. 탈락=죽음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달아나면서,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화면 안에서 총살당한다. 사진 넷플릭스

똑같은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장에 모인 456명의 ‘벼랑 끝 사람들’이 게임을 시작한다. 거대한 상금이 걸린 게임, 하지만 ‘탈락’이 ‘죽음’인 게임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총 6개의 게임을 거치면서 참가자 456명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명이 승자가 된다. 참가자 한 사람당 걸린 돈은 1억, 탈락자가 생길 때마다 그 돈은 상금으로 적립된다. 숙소 한 가운데 높이 걸린 상금통에 5만원권 다발이 현금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무자비한 게임에 지친 사람들이 게임을 그만두겠다고 아우성치다가도 홀린 채 그 돈을 바라보며 멈춰선다.


눈앞에 5만원권 다발이 후두둑


천장에 걸린 상금통을 바라보는 알리(아누팜 트리파티).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로, 공장에서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다 게임에 참여했다. 사진 넷플릭스

변변한 직장도 없이, 간혹 생기는 돈은 경마로 날려버리는 성기훈(이정재),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수재에 여의도 투자회사에 다니며 성공한 줄 알았지만 잘못된 투자로 빚더미에 앉은 조상우(박해수)를 비롯해 탈북 브로커에게 돈을 사기당한 강새벽(정호연), 조직 보스의 돈을 도박으로 날려먹은 장덕수(허성태) 등 참가자들은 모두 '현생'에서 도박, 사기, 투자 등으로 빚에 몰려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다. 이들에겐 게임장 밖도 ‘지옥’이다.

옆사람을 죽여야 내가 산다… 상금도 늘고


옆 사람이 죽어야 내가 살고, 상금이 늘어나는 경쟁의 공간에서 힘을 쓰는 세력들은 여자와 노인, 약자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기훈(이정재)는 새벽(정호연)에게 먼저 팀을 제안하고, 안전을 묻고, 이름을 물으며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호연의 마음을 열었다. 사진 넷플릭스

이들이 통과해야하는 게임은 처음엔 개인전이지만 중반부터는 팀 대결, 혹은 1:1 대결로 양상이 바뀐다. 총성과 피에 흔들리면 안되고, 내가 살려면 옆에 있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

팀원을 뽑으면서 ‘약해보이는’ 여자와 노인은 빼고 남자부터 뽑고, “약한 것들을 미리 솎아내는 것도 게임의 일부”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폭력을 행사하고, 늘 붙어다니던 동료를 속여 이긴 뒤 혼자 살아나오고, 자신의 앞길을 막는 사람을 망설임 없이 높은 곳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비정한 현대사회에 대한 직설적인 비유다.

참가자들은 도형을 우선 골라 줄을 선 뒤 두 번째 게임 '설탕뽑기'를 통보받는다.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간식으로 사먹던 달고나는 생존을 위해 바늘로 긁어야 하는 무서운 설탕 덩어리가 된다. 사진 넷플릭스


게임 중간중간 ‘계란 사이다’ 간식과 골목길 풍경 등 70~80년대 어린이들의 추억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그 위에서 잔혹한 게임이 펼쳐지면서 오싹한 대비가 만들어진다. 게임이 진행되는 운동장 테두리에는 파스텔톤의 벽을 높게 둘러쳐,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설계해 전 지구인이 지켜보는 영화 ‘트루먼 쇼’의 거대한 세트장을 연상시킨다.


'평등' 외치지만… 결국 '을들의 싸움'


마스크에 새겨진 동그라미는 일개미, 세모는 무기를 든 병정개미, 네모는 관리자급의 개미에 해당한다. 감독은 계급이 확실하게 나뉘고, 입력된 일을 착실히 하는 개미집단의 모습에서 분홍색 '가면인'들의 구조를 따왔다고 했다. '가면인'들은 상급자의 지시 없이는 말을 할 수 없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구조다. 사진 넷플릭스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지만 게임 관리자들은 ‘평등’을 강조한다. "바깥 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온 사람들이기에,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을 지켜보고 통제하는 분홍 옷의 ‘가면인들’ 사이에도 명확한 계급이 존재하고, 그 위에는 게임을 설계한 자들이 별도의 위계로 존재했다. 이들의 ‘평등’은 ‘고착된 계층 안에서의 평등’일 뿐이다. '오징어 게임'은 '을들의 싸움'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끼리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 라는 기훈의 절규는 절박한 '을'들에겐 들리지 않았다.


유일한 인간미 이정재, 섬뜩한 변신 박해수


조상우(박해수)는 게임에서 사람이 줄고 상금이 늘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본성을 드러내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사진 넷플릭스

체육복에 핏자국이 아무렇지 않게 묻어있고, 시청자도 점점 뜬금없이 사람이 죽는 피범벅의 화면에 익숙해지면서 인류애가 버석버석 마르려는 순간마다 한 방울 인간미를 더하는 건 이정재가 맡은 기훈이다. “원래 사람은 믿을만해서 믿는 게 아냐. 안그러면 기댈 데가 없으니까 믿는거지”라고 말하며 새벽의 마음을 열고, 번호로만 불리던 서로에게 이름을 묻는다.

이성적이던 상우가 후반부로 갈수록 승리에 집착하면서 변하는 모습은 돈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가장 섬뜩하게 보여준다. 극 후반에 드러나는 ‘오징어 게임’ 설계자의 정체도 입이 딱 벌어지는 반전이다.

마지막 순간 기훈이 행보를 바꾸면서, 여러 갈래로 확장이 가능하게 끝난 열린 결말은 시즌 2에 대한 가능성을 높였다.

공개 이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엇갈린다. “목숨 건 생존 경쟁의 현실과 다를 게 없다“며 공감하는 한편 ”지루하고 억지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황동혁 감독이 "2009년에 쓴 대본이고, '신이 말하는 대로'는 2011년 공개된 작품이라 뭘 보고 베꼈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제작발표회에서 밝혔지만 여전히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빚이 주요 동기로 나오지만 탈북자의 고충, 폭력 피해자 등 여러 사연을 담았다"며 "'누군가를 제거해야 내가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을 토대로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약자를 굴려서 자본화하는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은유를 날카롭게 드러냈다"고 평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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