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가 아니라 '불법촬영물'이다
[뉴스사천 하병주]
이 기획 보도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하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에 선정된 뉴스사천이 경상국립대 국어문화원의 도움으로 진행한다. 여러 사회복지기관의 협조로 그들의 누리집을 더 쉬운 표현으로 바꾸는 방안을 찾는다. - 기자 말
경남 사천YWCA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의 누리집엔 이 기관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드러나 있다. 기관의 내력을 참고하면 2008년부터 가정폭력에 관한 상담을 맡아 오다가 2020년부터 성폭력 상담 일까지 맡게 됐다. 두 가지 상담이 결합하면서 '통합'이란 이름도 붙게 됐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쉽지 않은 주제다. 통합상담소는 '여성 폭력 바로 알기'라는 누리집 게시판에서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등의 다양한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단순한 정보의 나열보다는 '질문과 답' 형식으로 체계를 갖추어 정보를 얻기가 쉽다.
그런데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지나치게 여성의 관점이 강조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물론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의 개념 소개에서는 중립적인 표현이 보이지만, 큰 틀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남성도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가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누리집에서 '남성도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강조해 밝혀 두었으면 어땠을까 한다.
이와 함께 좀 더 깊이 들여다볼 문제가 있다. 가정폭력·성폭력의 '예방'을 이야기할 때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의 문제다. 더 정확히는 잠재적 '가해자'가 주체인 예방인가, 잠재적 '피해자'가 주체인 예방인가를 나눠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 사천YWCA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누리집. |
ⓒ 뉴스사천 |
그러나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에는 아직도 '피해자 되지 않기'라는 관점에서만 예방 교육을 바라보는 이가 적지 않은 듯하다.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가해자 되지 않기' 교육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마치 교육 대상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양해서 부담을 줄 수 있고, 사회 통념상 너무 당연한 이치를 가르치는 일에 교육 제공자가 필요성을 덜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인식에서 벗어날 때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도 반복해 알려주고 교육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 그런 뜻에서 다음의 '성폭력 예방법'을 주목해 보자. '▲상대방의 동의 없이 촬영하지 않기 ▲동의 없는 사진·영상, 온라인에 올리지 않기 ▲사람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조롱하지 않기'. 뻔한 이야기라도 누군가에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예방'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일을 당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함의가 있는 만큼 '가해자 되지 않기' 교육에서는 '예방' 대신 '방지'가 더 적절해 보인다. '가정폭력·성폭력 방지 교육'처럼.
사천YWCA 통합상담소 누리집을 살피며 새삼 깨달은 사실은 보통의 시민이 인식하는 '가정폭력'과 법률에서 다루는 '가정폭력'에 괴리이다. 예를 들어 법률상으로는 '동거하지 않는 형제·자매 사이의 폭력'은 가정폭력이 될 수 없지만, 이혼한 전 배우자의 폭력은 가정폭력에 해당한다. 관련 내용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나온다.
이와 관련해 서은경 사천YWCA 통합상담소장은 "법의 목적이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 데 있다 보니 배우자, 심지어 전 배우자가 가하는 폭력까지 일반 폭력보다 더 완화해 처벌하는 일이 발생한다"며 씁쓸해했다.
끝으로 통합상담소 누리집에선 잘 쓰고 있지만, 관행처럼 잘못 쓰고 있는 용어 두 가지만 살핀다. 성범죄에 자주 등장하는 게 불법 촬영물이다. 불법 촬영물은 불법 촬영의 결과물이고, 불법 촬영 또한 분명한 범죄 행위다.
그런데도 한때는 이를 '몰래 카메라'로 불렀다. 이 말은 범죄라는 느낌을 덜 주므로 쓰기에 부적절하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불법 촬영이라 해야 알맞다. '인공지능 기술로 사진이나 영상을 합성해 새 영상을 만드는 일'을 뜻하는 '딥 페이크'라는 영어식 표현도 '음란물 합성 범죄'로 범죄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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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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