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서혜경 데뷔 50주년 "피아노는 내 자신"

장지영 2021. 9.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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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라흐마니노프 스페셜 콘서트' 출연.. "로맨틱 피아니스트 계보 잇고 싶어"
피아니스트 서혜경이 1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데뷔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서혜경재단

최근 이탈리아 페루초 부소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김도현이 1·2위를 차지하는 낭보가 전해졌다. 알프레드 브렌델, 마르타 아르게리치, 개릭 올슨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배출하며 권위 있는 콩쿠르로 자리매김한 부소니 콩쿠르는 1997년 1위 없는 2위 이윤수와 2015년 1위 문지영 등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인 입상자를 다수 배출했다.

부소니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본선 수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는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1세대 피아니스트 서혜경이다. 클래식계에서 동양인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1980년 스무 살이던 서혜경의 수상은 센세이셔널했다.

“제가 부소니에서 수상할 때는 동양인들이 무시당하는 일이 많았어요. 동양인에게 우승을 주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많은 후배가 콩쿠르에서 수상한 뒤 세계 무대에 나가고 있어서 뿌듯합니다.”

서혜경이 1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데뷔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회고했다. 그는 “아직 더 배울 게 많은데 데뷔한 지 벌써 50년이 됐다니 감회가 새롭다”며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와는 다른 음악적 깊이가 생기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5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11살이던 1971년 명동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 국립교향악단(현 KBS교향악단)과 협연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예원학교 2학년 때인 1973년 일본으로 유학 가서 다나카 기요코를 사사한 그는 이듬해 미국 메네스 음대 예비학교에 입학해 리투아니아 출신 나디아 라이젠버그에게 배웠다. 이어 줄리아드 음대에서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인 사샤 고르드스키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 학위까지 마쳤다. 스승들의 영향으로 그는 ‘노래하듯 연주하는’ 로맨틱 스타일 피아니스트의 계보를 잇고 있다.

“피아노는 건반악기라 성악가가 노래하듯 음들을 부드럽게 이어가며 연주하기가 어려워요. 로맨틱 연주 스타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나만의 연주를 오랫동안 선보이고 싶습니다.”

서혜경은 오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러 상호 문화교류의 해 사업 가운데 하나로 열리는 ‘라흐마니노프 스페셜 콘서트’ 무대에 선다. ‘러시아 피아니즘’의 거장 엘리소 비르살라제의 제자 윤아인과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를 차지한 러시아 신예 다니엘 하리토노프가 함께 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3번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이 연주될 예정이며, 서혜경은 3번을 연주한다. 여자경이 지휘하는 유토피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함께 한다.

“제가 라흐마니노프와 인연이 깊어요. 2006년 유방암이 발견돼 치료를 받느라 1년 반 넘게 피아노를 치지 못해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 및 파가니니 주제 광시곡을 연주하며 무대에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여성 피아니스트로는 처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5곡)을 녹음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에게 있어 에베레스트산처럼 정복하고 싶은 대상이에요.”

러시아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외에도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은 서혜경의 단골 레퍼토리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 축전 기간 중 처음 내한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친 바 있다. 냉전 이후 진행된 러시아와의 첫 문화 예술 교류였던 이 공연에서 서혜경은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해 호평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한국을 찾은 모스크바 필하모닉은 서혜경을 다시 초청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했다. 그는 “러시아와 오랫동안 교류를 해온 덕분에 한러 상호 교류의 해를 맞아 여러 곳에서 초청을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모두 취소되고 다음 달 블라디보스토크에서만 연주하게 돼 아쉽다”고 밝혔다.

2014년 경희대 교수직에서 물러난 뒤 뉴욕에 거주하는 그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공연이 모두 취소됐지만 연습을 쉬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월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 프렐류드, 회화적 에튀드’ 앨범을 발매한 데 이어 오는 23일 멘델스존의 론도 카프리치오 14번, 파데레프스키의 미뉴엣 14-1번,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등이 담긴 앨범 ‘My Favorite Works’를 발매한다.

“피아노는 내게 산소와 같아요. 피아노가 없는 인생은 상상이 안 가요. 피아노가 내 자신이죠. 건강만 허락해 준다면 앞으로 50년은 더 연주하고 싶어요.”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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