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주한대사 "호주의 핵잠 계약파기는 전략적 주권 포기" 비난
프랑스와 호주 간의 잠수함 건조사업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가 17일 "프랑스는 미국과 함께 핵잠수함 기술을 가진 나라"라며 "호주의 이번 선택은 기술적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닌 정치적 결정으로, 프랑스는 (세 국가에) 굉장히 실망했다"고 말했다.
르포르 대사는 이날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프랑스 대사 관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사태와 관련된 프랑스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는 모두 발언에서 이번 사건을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규정하면서 "호주가 전략적인 주권을 포기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프랑스와의 이번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호주는 독자적인 자주적인 국방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렸고, 미국에 대한 의존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영국·호주 간 신안보협력체제 '오커스(AUKUS)'가 발족하면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상 중국 견제를 위한 포석으로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호주는 2016년 프랑스와 맺었던 약 900억 호주 달러(77조원, 560억 유로 상당) 규모의 잠수함 기술 이전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르포르 대사는 호주 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영국이) 외교적 문제에 있어 미국에 의존적인 국가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면서 "(이에 비해) 프랑스의 외교 정책은 동맹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중 사이에서 프랑스의 입장이 모호하기 때문에 동맹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프랑스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프랑스만의 자주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의 부상과 연결된 전략적 도전에 대한 대응도 포함돼 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주재대사가 자국과 제3국과의 문제로 한국 언론에 간담회를 자청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프랑스가 이번 사안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앞서 장 이브르 드리앙 프랑스 외교부 장관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호주가)등에 칼을 꽂았다”면서 미 정부를 향해서도 “일방적이고 잔인하며 예측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박재적 한국외대 교수는 이에 대해 "프랑스가 최근 몇 년 간 호주, 인도와 안보 동맹 협의체를 만드는 등 호주와의 관계에 상당히 공을 들여왔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프랑스는 호주에 대해 비난 수위를 높이면서도 미국과는 직접적 대립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날 르포프 대사도 "프랑스는 미국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며 신뢰의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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