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천장 뜯은 날, 집사가 모텔 사장에게 '빌었던' 사연 [혜민의 참깨와 함께]
조혜민 정의당 전 대변인이 반려묘 '참깨'와의 좌충우돌 동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당인, 1인 가구 여성 청년, 그리고 반려묘 참깨의 집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조혜민 기자]
여덟 살 무렵,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갔다. 지하 단칸방을 떠나 11층 아파트로 갔다. 햇볕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내 방이 따로 있는 공간이었다. 누가봐도 더 좋은 집인데 사실 내게 그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은 설레는 일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무섭고, 오빠랑 싸우면 방문을 잠그고 있을 수 있는 공간은 낯설었다.
그래서인지 이사 전엔 아파트에 살았던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던 기억이 또렷하다. '우리 집엔 엘리베이터 없어서 참 다행이야'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파트가 우리 집이 된 후, 나는 엘리베이터와 친해져야 했고, 한동안 나는 엘리베이터를 혼자 탈 때마다 그 안을 빙빙 돌며 대화를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야, 안녕. 오늘 나는 현상이랑 싸웠어"라면서 말이다.
서른 두살인 지금,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여전히 그 11층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여러 고시원과 친구네를 전전하며 살다가 2년 전, 지금의 창문있는 원룸에 '잠시' 정착했다.
가끔 내가 우리 가족을 찾아가는 날이면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곤 했었다. 그때마다 가는 영화관이 예전에 살던 지하단칸방이 있었던 동네였는데 그 길목을 차로 지나갈 때마다 아빠와 엄마는 지하단칸방 때 살았던 이야기를 꺼내며 미안해하셨다. '그때, 여유가 있었더라면 더 좋은 집에 살았을 텐데'와 같은 대화들이었다.
당시 그 대화에 나는 어떻게 끼어들었는지 혹은 어떤 표정으로 반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그 감정을 알 것만 같다고 굳게 믿었다.
결혼을 한 친구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야"라고 말을 할 때에는 '정말 그럴까'하고 고개를 꺄우뚱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감정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반려묘 참깨 때문이다.
▲ 박스 안에 들어간 참깨 |
ⓒ 조혜민 |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신축 건물로 8평 정도의 원룸이다. 중소기업청년전세자금대출을 통해 '운 좋게' 들어온 집이었기에 집의 상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사실 너무나 만족해하며 선택할 정도로 좋은 집이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고시원들에 비하면 창문도 있고, 화장실도 별도로 있고, 햇볕도 있는 '평범하고 완벽한 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 천장 벽지에 조금씩 노란색 물이 들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유독 그 노란색이 커졌고 어느 날은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세면대, 변기 위에 물방울이 맺혔다. 내 연락을 받은 집 주인이 급히 전문수리공과 함께 집에 오셨다. 천장 등 이곳저곳을 확인했지만 원인은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흐른 후 어느덧 천장의 1/4이 노란색 물 자국으로 얼룩졌다.
한순간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다니
"우선 천장을 뜯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집 위층, 그리고 옥상까지 가봤지만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 수리공의 말이었다. 더 이상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비가 새는 곳으로 추정되는 천장의 일부분을 뜯었다. 결과는 허탈했다. 막상 뜯어보니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틀 정도 공사를 해야겠는데요." 순간 멍해졌다. 집 상태를 잘 알기에 그 조언 앞에 '그럼 참깨와 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와 같은 말은 전혀 할 수 없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수리하시는 분이 추가 물품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가게에 다녀오는 한 시간 동안, 참깨와 내가 지낼 곳을 찾아야 했다. 동시에, 낯선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 고양이 참깨를 안심시키기 위한 물품들을 챙겨야 했다.
사실 화장실 천장에 물이 뚝뚝 떨어질 무렵, 잠시 집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참깨랑 지낼 숙소를 알아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고양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숙소는 정말 많지 않고, 그나마 있더라도 가격이 너무나도 비싸다는 걸.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숙소가 많이 생겼다지만 고양이는 이곳저곳을 높이 뛰어다니기에 가구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숙박업소에서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양이 대환영'을 걸어둔 숙소는 잡지에서 이름만 들어본 워커힐(...)과 같은 최고급 호텔이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적절한 곳은 우리 집에서 차로 한두 시간 거리였다.
▲ 한 집사카페에 올라온 게시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집사들의 넋두리를 쉽게 확인 할 수 있었다. |
ⓒ 조혜민 |
그래서 무작정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있는 모텔들에 전화해 간곡히 부탁드리며 매달린 것이다. '급히 집 공사를 하게 되어 고양이와 지낼 방이 필요하다. 깨끗하게 이용하겠다. 어느 방이어도 좋다.' 핵심은 간결하게, 그러나 애절한 감정은 최대한 전해지게 말 그대로 매달렸다. 진심이 통했던 걸까. "그래요, 와봐요." 한 중년 여성이 주인인 모텔에서 망설임 끝에 허락해주셨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일이 풀리는구나! 하며 참깨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참깨 화장실, 모래, 장난감, 사료, 간식, 물티슈... 하나씩 챙기며 아기와 다니는 가족들은 너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급히 챙기다보니 뭘 챙기는 게 맞는지도 헷갈렸다.
이제 모텔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참깨를 데려가기 위해 이동장 문을 열고 참깨를 찾았다. 하지만 참깨는 앞서 천장을 뜯는 소리에 겁을 먹었고 침대 아래 짐들 사이 깊숙한 곳에 숨어있었다. 식은땀이 났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흔들어보고 간식을 앞에 놓아도 참깨는 절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참깨는 한 시간 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때 방바닥에 주저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참깨를 두고 갈 순 없는데. 공사하는 소리에 참깨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무서워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오가는 집에서 얼마나 불안해할지 상상만 하더라도 끔찍했다. 그리고 그런 참깨를 두고 다른 곳에서 내가 결코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 참깨가 처음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만난 날. 그날 같았다. |
ⓒ 조혜민 |
모텔에 온 참깨는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나를 계속 두려워했다. 참깨는 마치 처음 나를 만난 날처럼 두 눈을 크게 번쩍이며 가까이에 오지 않았고 이곳저곳을 살피며 불안해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참깨의 감정이 신경 쓰였지만, 동시에 그 모텔방을 구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다행스러웠다. 안전한 공간에 참깨와 머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참깨가 나갈 것을 우려해 모텔 창문조차 열어두지 못했지만, 그런 게 아쉽지 않았다.
몸을 움츠린 참깨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준비가 되어 있는 집사를 만났다면 참깨가 오늘의 고생을 덜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날 내 상황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했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미안함이 끝내 남았다. 참 소화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 모텔 창문 틈새에서 나를 보고 있는 참깨 |
ⓒ 조혜민 |
그 사이 집 공사로 인해 모텔로 급히 피신한 내 소식을 들은 아빠와 엄마는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로 이것저것 확인하며 괜찮은지 물어보는 그 말들을 들으며 내가 온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순 없겠지만 참깨를 두고 조마조마했던 내 마음과 닮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그 마음의 형태를 알아가는 거구나 싶기도 했다. 어두컴컴한 모텔방에서 반성도 하고, 참깨 걱정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오후, 집 공사가 마무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모텔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침구들과 가구들에 묻었을 참깨 털을 떼기 시작했고 혹시라도 모래들이 곳곳에 있을까 싶어 테이프로 청소를 했다.
▲ 고양이는 집사의 능력치를 끌어올렸습니다. |
ⓒ 조혜민 |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고 면허를 땄다. 급히 이동해야 할 순간이 올 때, 이사를 할 때, 참깨와 편히 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최적의 답이었다.
적어도 내가 운전할 줄 알아야 참깨의 물품들을 들고 좀 더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또, 동네 병원이 아닌 큰 병원에 급히 가야 할 때와 같은 위급 상황에 참깨의 보호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려면, 이런 또 다른 능력이 필요했다.
"당신은 집사가 되는 중입니다"
모텔에서 보낸 1박 2일은 내게 "집사가 되었습니다"라는 말이 결코 완결형일 수 없음을 확인하게 했다. 고양이를 집에 데려온 것만으로 집사가 될 수 없으며 그렇게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하는, 이른바 '집사됨'의 자세를 깨우친 것이다.
한편 '운이 좋게도' 집 근처 모텔을 갈 수 있던 이 날의 일을 마냥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집사가 '기댈' 공간들이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반려동물에는 강아지뿐만 아니라 고양이도 있고, 우리에게도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운에 기대지 않아도, 참깨와 '안전한 공간'에 머물 수 있게 되는 것. 너무 큰 욕심인 걸까? 동네 집사들과 함께 돌봄을 실현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야만 할까. 이렇게 또 집사의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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