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초대형 핵탄두 폭주기관차'..바이든 향해 '우라늄 시위'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우라늄 농축과 직결될 수 있는 정황도 포착됐다.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실험처럼 곧바로 제재로 이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가장 높은 수위의 핵 도발을 준비하며 선을 넘나드는 것으로 보인다.
땅 고르고, 구멍 뚫고…확장 공사 정황
16일(현지시간) 미국의 제임스 마틴 비확산센터와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가 최근 영변 핵시설의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우라늄 농축 공장으로 추정되는 시설 바로 옆의 야지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보였다.
8월 3일까지만 해도 나무가 여러 그루 심겨 있었는데, 9월 1일 촬영한 사진에는 나무가 사라졌고 굴착기로 보이는 물체가 포착됐다. 땅을 평평하게 고른 것으로 보인다.
9월 14일 사진을 보면 해당 부지에 큰 구멍 6개가 뚫려 있다. 또 우라늄 농축 공장 추정 시설과 사이에 있던 벽은 없어져서 오갈 수 있게 돼 있고, 고른 땅 바깥쪽에 새로운 외벽을 설치했다.
제임스 마틴 비확산센터의 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 국장은 보고서를 통해 “확장된 공간은 약 1000㎡(약 302평) 넓이로, 원심분리기 1000개를 더 들여놓을 만한 공간”이라며 “1000개의 새로운 원심분리기가 추가되면 공장의 고농축 우라늄(HEU) 생산 능력이 25%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미 CNN 방송은 소식통 두 명을 인용해 미국 당국자들 역시 영변 우라늄 농축 시설의 상황과 이런 정황이 무기급 우라늄 생산 증대 계획의 신호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방부, 국가정보국(ODNI), 중앙정보국(CIA)은 이에 대한 공식 논평을 거부했다고도 CNN은 전했다.
김정은, 1월 “초대형 핵탄두 생산 지속”
최근 북한의 연이은 핵ㆍ미사일 활동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8차 노동당 대회 때 제시한 ‘전략적 과업’들을 이행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핵무기의 원료인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재개한다면 이는 당시 김 위원장이 지시한 ‘초대형 핵탄두’와 무관치 않은 것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당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초대형 핵탄두 생산을 지속적으로밀고나가라”고 지시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언급한 초대형 핵탄두 생산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핵물질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최근 플루토늄 추출로 이어질 수 있는 영변 핵시설 재가동 정황이나 우라늄 농축 시설 확장 정황 등은 이와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핵 능력 고도화를 위해 자체적인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셈인데, 동시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반응을 가늠해보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핵물질을 늘리면 북한의 실질적인 핵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을 상대할 때 협상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에 포착된 영변의 정황이 초대형 핵탄두 생산 등을 위한 우라늄 농축 재개 준비가 맞는다면, 북한으로선 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핵실험 등 미국이 새로운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는 고강도 도발을 빼놓고는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선택지를 사실상 다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플루토늄-순항-탄도-우라늄 긴장 고조
여기에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핵 문제가 점차 후순위로 밀리는 분위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영변 핵시설 재개에 더해 11~12일 장거리순항미사일을시험 발사했고, 15일에는 열차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창의적 방법까지 선보였다.
하지만 미국 측 반응은 영 뜨뜻미지근한 게 사실이다.
영변 핵시설 재가동 정황을 담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에 대해선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화와 외교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하고,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선 “규탄한다”고 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외에 별다른 추가 조치를 취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아프간 사태 등 수습에 여념이 없는 미국은 북한으로 인해 또 다른 위기가 발생하기를 원치 않고, 일단 정세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상황 관리만 하겠다는 생각이 명확하다”며 “최근 미국이 공식 발언과 입장에서 놀라울 정도로 관여와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내는 것도 이를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美 ‘인도 지원’으로 상황 관리 주력
실제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북한의 순항미사일 도발 직후 열린 지난 14일 한ㆍ미ㆍ일 북핵 대표 연쇄 협의에서 “비핵화 진전과 상관없이 인도적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북한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고강도 도발에 나서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메시지의 일환인데, 이는 한편으로는 북한이 비핵화 관련 조치를 하지 않는 이상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지원의 ‘마지노선’은 인도주의 협력까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대화용 인센티브’로 그 이상을 줄 수는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북한은 인도적 지원은 ‘비본질적’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 결국 인도적 지원을 넘어 제재 완화 등을 얻기 위한 ‘관심끌기용 도발’의 강도를 점차 높여갈 가능성이 존재한다.
김홍균 전 본부장은 “김정은이 당 대회에서 주문한 과업들을 이행하기 위한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을 것이고, 상황을 보며 하나씩 선보일 것”이라며 “미국이 상황 관리용 인도적 지원에 다급하다고 느낄수록 북한은 오히려 더 관심 없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자신들의 계획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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