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연쇄살인범 31인' 속 유영철, 거짓 살인동기

김종성 2021. 9. 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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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 KBS2 <표리부동>

[김종성 기자]

 KBS2 <표리부동> '세계가 주목한 연쇄살인마'편.
ⓒ KBS2
 
2009년 미국 유명 잡지가 세계의 연쇄살인범 31인을 선정했다. 그중에는 24년간 215명을 살해한 영국 최악의 연쇄살인범 해럴드 시프먼, 공식적으로 24명의 여성을 살해한 미국 트런 도장공 게리 리즈웨이, 소년을 비롯해 남성 17명을 강간 후 시신까지 먹은 '밀워키의 식인종' 제프기 다머 등이 포함돼 있다. 놀랍게도 13번째로 소개된 연쇄살인범은 한국인이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15일 방송된 KBS2 <표리부동> '세계가 주목한 연쇄살인마'편은 2004년 3월로 돌아가 한 실종 사건을 조명했다. 당시 출장 마사지사로 일하던 여성이 사라졌다. 그 무렵 서울 유흥가에는 유흥업소 여성들이 일을 나가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사라진다는 괴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다행히 경찰은 며칠 후 추적을 피하던 용의자를 경찰서로 임의동행했다. 

용의자는 경찰에 왜 자신을 경찰서로 데려왔냐고 항의했으나, 그의 소지품(여성용 시계, 휴대전화 2개)은 의심을 사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실종된 여성들이 모두 전화번호 뒷자리 '5843'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용의자가 소지한 휴대전화의 번호와 일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찰은 단순 강도 정도로 생각했다. 용의자가 절도 등 전과 14범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의자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내가 다 특진시켜 줄게. 내가 사람 27명을 죽였어'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에 경찰은 헛소리로 여겼다. 그때 용의자가 발작을 일으켰다. 평소 뇌전증을 앓고 있다는 말에 담당 형사는 잠시 수갑을 풀어줬고, 그 틈을 타서 용의자는 경찰서를 탈출했다. 경찰은 비상이 걸렸다. 대대적인 수색에 나선 결과 11시간 만에 검거에 성공했다. 

- 2003년 9월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노부부가 둔기에 맞아 피살
- 10월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일가족 3명이 둔기에 맞아 피살
- 10월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60대 노인이 둔기에 맞아 피살
- 11월 종로구 혜화동 80대 노인과 가사도우미가 피살

그 용의자가 바로 최단 기간(10개월)에 최다 살인(20명)을 저지른 연쇄살인범 유영철이었다. 유영철의 검거로 이전까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던 부유층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가 밝혀졌다.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는 한국의 범죄자는 유영철 전후로 나뉜다며, 유영철 사건을 통해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한국에 소개됐다고 설명했다. 유영철은 살인 그 자체가 목적인 살인범이었다. 

살인 자체가 목적인 살인범 유영철
 
 KBS2 <표리부동> '세계가 주목한 연쇄살인마'편.
ⓒ KBS2
 
유영철의 살인 명분은 빈부격차와 사회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는 국가가 처벌을 못 하니 자신이 나서서 처단한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유영철의 진술을 살펴보면 살인의 동기는 따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 11년 차였던 유영철은 결혼 생활 내내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아내는 옥바라지를 하며 가정을 지켜오다 유영철이 성범죄로 수감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어린 시절 이혼 가정에서 불우하게 자랐던 유영철은 충격을 크게 받았다. 교도소에서 괴로워하던 그는 모든 불행의 시작이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전과자가 되고 아내가 떠나간 이유를 가난과 차별하는 사회 탓으로 돌린 것이다. 표창원 프로파일러는 범죄를 사회 탓으로 돌리는 건 범죄자들의 행동패턴이자 합리화라고 선을 그었다. 그때부터 유영철은 살인을 준비했다. 

물론 유영철의 살인 행적을 살펴보면 그가 내세운 명분이라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 수 있다. 그가 살해한 대상은 그저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혜화동 살인 사건의 경우에 유영철은 생후 2개월밖에 안 된 갓난아기를 이불더미 속에 숨겨둬 생명이 위중한 상태로 만들기도 했다. 출동한 형사가 신속히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갓난아기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유층 살인 사건의 피해자 8명 외에) 나머지 12명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유영철은 혜화동 사건을 끝으로 살인을 멈추고 냉각기에 들어갔다. 범행 현장에서 족적이 발견되고 뒷모습이 CCTV에 찍혀 경찰에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축된 것이다. 118일 동안의 냉각기 동안 유영철은 여자친구를 만나게 됐다. 재혼을 염두에 둘 정도로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19일째 되는 날, 유영철은 출장 마사지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시작해 무려 11명을 살해했다. 이유는 전화방 도우미로 일했던 여자친구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였다. 유영철은 물질 만능주의 여성들을 응징하겠다는 자신만의 명분을 만들어 무차별 살인을 시작했다. 표창원은 유영철이 자신을 버린 아내와 애인에 대한 분풀이로 살인 범행을 저질렀다고 평가했다. 

유영철은 살인 후 반젤리스의 '낙원의 정복'을 들으며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했다. 그렇다면 시신 훼손의 이유는 무엇일까. 표창원은 차가 없었던 유영철에게 완전 범죄를 위해 꼭 필요한 절차였을 것이라 분석했다. 이수정은 출장 마시지 여성만을 실해한 이유는 일탈적 성욕 때문이고, 시신 훼손도 성적인 쾌락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성도착의 연장선으로 봐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 것이다. 
 
 KBS2 <표리부동> '세계가 주목한 연쇄살인마'편.
ⓒ KBS2
 
유영철이 저지른 살인의 원인은 무엇일까. 표창원은 유영철의 경우 극도로 낮은 자존감 때문에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분노가 축적된 것이라 결론내렸다. 또, 본인 삶의 책임을 외부에서 찾았다.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 살인의 명분을 만든 것이라고 봤다. 이수정은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라 삐뚤어진 성격과 잘못된 사고방식 안에 살인의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끔찍한 살인 행각을 이어가던 유영철은 2004년 4월 서울시 중구 황학동에서 금품 갈취를 목적으로 40대 노점상 주인을 살해했다. 가짜 경찰 신분증으로 협박을 해도 통하지 않자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살해 명분을 찾아볼 수 없는 연쇄살인범의 비겁한 자기합리화를 발견할 수 있다. 유영철은 그저 열등감에 찌들었던 연쇄살인범에 불과했다. 

유영철은 아직 수감 중이다. 여전히 피해 유가족들은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유영철의 이름을 기억하면서도 그에게 무참히 희생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는 너무 무관심했던 게 아닐까. 이수정은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이라고 일갈했다. 제도적인 정비와 함께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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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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