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목마름 있는 자들에게 생명수를.. 소망·기쁨의 메시지 선포

백상현 2021. 9. 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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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조용기 목사의 삶과 목회 <중> 구원과 희망의 메신저
조용기 목사가 1983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교회성장연구원(CGI) 부흥성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서울 대조동에서 서대문으로, 여의도로 옮기면서 폭발적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여의도로 옮긴 후 연평균 40% 이상 성장했는데, 매년 1만명 이상의 성도들이 몰려들었다.

주변에선 비결을 4가지로 꼽았다. “첫째, 교회 목회방침이 성령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인정한다. 둘째, 성령의 은사를 통해 교인의 필요를 채운다. 셋째, 조 목사의 리더십이 탁월하고 평신도 지도자들이 적극 참여한다. 넷째, 소망 기쁨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순복음의 메시지가 있다.”

실제로 조 목사는 65년 목회 평생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에 목숨 걸었다. “저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저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구원과 희망을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어디서 오느냐.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이 오지요. 성령이 지금 나타나셔서 역사하시는 현재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희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는 늘 설교를 생각했다. 얼마나 설교에 신경을 썼는지 가족들과 휴가를 갔다가 설교준비를 위해 급하게 돌아온 적도 있었다. “가장 큰 부담은 설교준비였습니다.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노트에 적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교회 오기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설교입니다. 설교는 목사의 천직이고, 죽더라도 설교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설교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컸는지 한번은 위내시경 검사를 하는데, 반(半)수면 상태에서도 계속 설교했다고 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9년 10만 성도를 넘어섰으며, 81년 20만, 88년 40만, 89년 50만, 96년 70만 성도를 돌파했다. 하지만 조 목사는 외적 과시보다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종이었다.

“저는 교회의 부흥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에 강단에 설 때마다 죽음을 눈앞에 두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강단 위에 올라서면 심한 현기증 때문에 어지러워서 다른 사람을 쳐다볼 수가 없었고 천지가 빙빙 도는 그런 고통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내 심장은 뛰기 시작하였고 땀이 비 오듯 하였으며 전신이 떨렸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아버지, 이번 설교만 마치고 죽도록 해주십시오. 이 설교를 마치지 못하고 죽으면 하나님 영광 가리웁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교회가 급성장한 비결엔 뜨거운 기도도 있다. 1973년 새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먼저 건립할 정도로 기도를 중시했다.

그의 복음 전도 사역은 스케일부터 달랐다. 외국인 방한이 드물던 73년 9월 전세계 90개국 5000여명을 초청해 제10차 세계오순절대회를 개최했다. 55년 전 극동방송 설교로 방송선교를 시작했다. 78년에는 교회 예배실황을 위성으로 생중계까지 했다. 금요 철야 예배를 미국과 캐나다에 생중계했는데, TV 보급도 제대로 안 되던 당시 상황에선 꿈같은 일이었다. 80~82년 MBC TV 방송으로 매 주일 오후 10시부터 30분간 설교방송을 내보냈다.

조 목사는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등 가는 곳마다 사상 최대의 집회라는 기록을 갈아치웠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첫날에 이삼백명 모였다가 이튿날에는 당장 몇천대로, 사흘째에는 만대로 올라섰어요. 제일 사람들이 안 모이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같은 데서도 5000명, 6000명, 1만명씩 모였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모인 줄 아십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학문과 지식은 많지만, 영적인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생명의 갈급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 목사가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만큼이나 기독교 선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될 것’(미국 LA타임스)이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탁월했던 복음전도자였던 이유가 있다. 변화하는 시대를 내다보며,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인간의 제도와 지식을 다 초월해서 구원이 필요해요. 그리고 희망이 필요해요. 그러니 제가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들고 나가니까 세계 어느 곳에서나 성령의 이적이 일어난 거죠.”

조 목사는 국민일보를 창간하고 엘림복지타운, 한세대를 건립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으로,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 등으로 명예와 물질, 교세를 얼마든지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라는 코람데오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 여의도순복음교회와 70만 성도들을 봅니다. 하지만 나는 고통 속에서 죽음에 직면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때문에 지위도 탐하지 않았고 명예도 탐하지 않았고 돈도 탐하지 않았으며 교회가 커지는 것도 자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교회의 담임목회자이십니다. 저는 단지 성령님의 사역을 돕는 부교역자에 불과합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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