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연의 시시각각] 소상공인 무너지는 '모범 국가'

최상연 2021. 9. 1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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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최승재 의원 의원 등이 16일 '자영업자들에 대한 정부의 비현실적 손실 보상 규탄 및 대안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방역 수칙 4단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한편 이날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가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하기로 한 합동분향소는 경찰에 막혀 무산됐다. 임현동 기자

독자 감소와 시청자 이탈로 고민이 큰 건 미국 주류 언론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미디어 환경 변화가 큰 배경이지만 ‘끝장난 트럼프 효과’가 내리막길을 거들었다고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뻔뻔한 거짓말은 샘솟는 뉴스거리였다. 반(反)트럼프 쪽을 끊임없이 자극했는데 퇴장과 함께 안줏거리도 사라졌다. 그런 트럼프가 다시 돌아왔다. '대선은 조작됐다'고 지지층과 혐오층을 동시에 자극하는 중이다. 적자 언론사엔 어쩌면 미소가 번져갈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을 다짐했지만 실제론 편 가르기와 ‘코드 인사’로 나라를 두 동강 낸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다른 건 문 대통령은 뉴스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국 전 장관 사태 와중엔 대통령 전용기 기자회견을 마련하고도 ‘사전에 약속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국내 문제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질문 기자에게 오히려 무안을 줬다. 기자회견 자체가 연례행사인데 ‘기자회견만이 국민 소통은 아니다’며 현장 방문을 거론했다. ‘현장 방문이 소통이면 김정은은 소통왕’이란 비판을 낳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설화에 시달리는 걸 지켜보았기 때문이란 말이 있다. 잦은 회견은 분란만 일으킬 뿐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자기 주장을 잘 말하지 않는 쪽이 원래 스타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침묵으로 시빗거리를 없애는 게 여론의 직접 비판을 차단하는 하나의 선택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주요 국정마다 여당 따로, 장관 따로 부딪치는 아무 말 대잔치에 듣는 국민은 매번 어지럼증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번엔 재난지원금이다.
5차 재난지원금은 그 자체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먹구구의 결정판이다. 당초 80%라더니 특별한 설명 없이 88%까지 올라갔다. 그러다 ‘90% 정도면 좋겠다’와 ‘아니다’가 맞서 온 나라가 아직도 치고받는다. 명확한 기준은 아무도 모른다. 거리두기 강화의 최대 피해자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저소득 서민이다. 다른 선진국들이 코로나 백신 구매 경쟁에 나설 때 먼 산만 바라보다가 '바이러스가 밤에만, 그것도 사적 모임만 공격한다'는 식의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를 마구잡이로 쏟아낸 탓이다.


납득 어려운 주먹구구 재난 지원금


과학적 방역 기준 마련하지 않고


국민 고통만 강요하며 셀프 칭찬

피해 계층에 지원을 집중하는 게 기준일 거다. 그런데 아니다. 추경 예산에 배정된 소상공인 손실보상액은 국민 1인당 지원금 25만원보다도 적다. 우왕좌왕은 시리즈다. 한쪽에선 소비 진작을 얘기하던데 밖에 나가지 말라면서 외식하고 여행 가라고 돈 뿌린 게 2차 추경이다. 왜 이렇게 엇박자냐면 정권이 표 계산만 하기 때문이다. 여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현금 살포의 위력을 경험했다. 대선은 반년이나 남았으니 내년 설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한 번 더 들고나올 가능성이 작지 않다. 세계잉여금이 생기면 나랏빚을 먼저 갚으라는 법은 일단 법전에 재우고.
'살려 달라'는 사장님들은 정부가 국민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것 외에 뭘 제대로 했느냐고 묻고 있다.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가 20명을 넘는다고도 한다. 서민 대통령이면 당연히 이런 절규에 답해야 한다. 그 많은 돈을 쏟아붓고도 서민 생계가 막연하고 막막한 까닭을 설명해야 한다. 결국 왜 88%, 90%여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역사는 문재인 정부를 일본을 넘어선 정부로 기록할 것’이란 원내대표의 셀프 칭찬에 여당은 국회에서 16차례나 박수를 보냈다. 그런 훌륭한 나라를 치킨집 사장님들은 왜 등지나.
문 대통령은 ‘가장 안전한, 세계 모범 국가’라고 내세웠다. 먹고사는 문제로 목숨 끊는 일이 없는 나라가 안전한 나라다. 그게 잘하는 정치다. 훌륭한 정치란 백성을 편히 쉬게 하는 것이다. 60년을 하루같이 매일 진실 된 마음으로, 실제에 도움이 되도록 애썼다는 강희제가 ‘그래도 감히 잘 다스렸다고는 못하겠다’며 남긴 말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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