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위조의 세계와 감식안
중국의 서화 위조 역사는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종이를 물들여 옛것처럼 보이게” 만들거나 (虞龢, 『論書表』), “(위작을) 맑은 물에 적셨다 말렸다를 하루에 20번씩 3개월간 반복한 후, 먹이 깊이 스며들게 하려고 백급(白芨) 뿌리로 풀을 쑤어 종이에 바르는”(吳修, 『論畵絶句』) 등 원작을 위조하고 모사하는 방법은 기상천외했다.
모사는 또한 작품 보존을 위한 확실한 방편이기도 했다. 636년 왕희지(321~379)의 ‘난정서(蘭亭序)’ 진본을 손에 넣은 당나라 태종은 풍승소 등 황실 서예가에게 모사본 10개를 제작토록 했고, 모사본은 다른 모사본을 낳아 13세기 황실 소장 ‘난정서’는 117개에 달했다. 왕희지 서체는 이렇게 후대에 전해져 창작의 토대가 됐다.
성균관대박물관의 기획전 ‘감식안, 모방과 창조의 경계’는 위조의 방법이자 동시에 창작의 토대이기도 한 ‘모방’의 의미를 우리나라의 근대기 서화·도자 80여 점을 통해 되짚어본다.
전시는 모방의 학습적 측면을 ①모(摹·원작 위에 얇은 종이를 겹쳐 놓고 베끼기) ②임(臨·원작을 옆에 두고 모사하기) ③방(倣·원작을 보지 않고 그 풍격 위에 작가의 개성을 더하기)의 단계로 구분한다.
추사체 연습교재였을 ‘완당서첩’은, 필획의 윤곽만을 가는 선으로 본뜬 후 그 안을 먹으로 채워나가는, ‘모’의 일종인 ‘쌍구전묵(雙鉤塡墨)’법을 보여준다. 명나라 서예가 동기창의 ‘행서첩’이 그를 흠모한 조선 문인들에게 ‘임’의 교본을 제공했다면, 중국 청자 모방으로 시작해 새로운 미감을 창안한 고려 ‘청자상감 운화문찻잔’은 성공적 ‘방’의 예라 하겠다.
모방 기법은 작품 위조에도 악용됐다. 하지만 예리한 감식안을 피해 갈 수 없었으니, 추사 김정희는 “위작자들은 함부로 외형만을 쫓아 곱고 화려하게만 그려낸다”고 비판하며 실증주의적 엄격함으로 서화의 진위를 가려냈다.
고증학에 바탕을 둔 추사의 감식법은 위창 오세창(1864~1953)으로 이어졌다. 오세창은 일제강점기에 흩어진 역대 인사 1136명의 필적을 모은 『근묵(槿墨)』을 간행하고, 최초의 서화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도 편찬했다.
고군분투 서화를 수집한 오세창을 만해 한용운은 ‘매일신보’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금전을 희생하여 명필·명화만도 아닌, 때 끼고 좀먹은 조선의 필적을 모음은 누구를 위함인가라 물으니, ‘그 나라의 옛 물건은 그 국민의 정신적 생명의 양식’이라 답하더라.”
축적된 시각 경험을 토대로 운필에 내재한 운율과 조화를 예민하게 감지했던 오세창의 감식안은, 작품 가격으로 명필·명화가 정해지는 오늘날 미술품 수장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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