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퇴직자의 위태로운 선택 '전업투자자'의 인류학
김수현 지음
민음사, 362쪽, 1만6000원
주식 거래를 전업으로 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있다. 국내 개인투자자 수는 지난해 900만명을 돌파했으며, 이 중 전업투자자는 약 180만명으로 추정된다. 개인전업투자자의 절대 다수는 남성, 연령은 주로 40대와 50대다. 이들이 모여서 주식 거래를 하는 임대 공유 사무실을 ‘매매방’이라 부른다.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주식투자를 하는가?’는 서울시내 한 매매방에 대한 현지조사 보고서다. 20대 필자가 인류학과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매매방에서 3개월을 지내며 거기서 만난 개인전업투자자들을 관찰하고 면담한 기록이다. 책은 매매방 입실자들을 통해 국내 개인전업투자자들의 인구 구성, 전업투자의 동기, 이들의 투자 패턴과 실적 등을 보여준다. 개인전업투자의 사회·경제적 배경도 살핀다.
매매방 입실자들은 중년 남성이 대부분이며 문과 계열 대졸자들이 많다. 조기 퇴직 후 전업투자로 들어오는 경로가 일반적이다. 이들 대다수는 전업투자로 돈을 벌지 못한다.
저자가 조사를 수행한 로알매매방 운영자에 따르면 지난 10여년간 200여명이 넘는 입실자가 이 매매방을 거쳐갔는데 초기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입실자는 단 두 명에 불과하다. 거의 다 원금조차 제대로 건지지 못한 채 매매방을 떠났다고 한다. 입실자는 보통 1억∼3억원의 퇴직금을 ‘시드머니’로 갖고 들어오는데, 매매방에서 버티는 기간은 통상 2∼3년이다. 운영자는 “전업투자를 해서 성공했다고 하는 분들은 손에 꼽아요. 10명도 안 되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전업투자로 돈을 버는 이는 극소수다. 그런데도 성공에 대한 믿음을 합리화하며 주식투자를 떠나지 못한다. 저자는 이런 비합리적 현상의 이면을 다각도에서 들여다본다.
개인투자나 전업투자가 실패할 확률이 높고 주변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을 무수히 보면서도 이를 계속하는 것은 ‘경제적 자유’라는 꿈을 이뤄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입실자는 “어쨌든 돈을 벌어봤잖아. 한 번이라도. 잃어봤지만 또다시 벌어봤잖아. 그러니까 계속 벌 수 있을 것 같은 거야”라며 “결국은 돈을 까먹고 있는 과정인데, 돈을 벌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다른 입실자는 “13년간 주식시장에서 전업투자자로 싸우며 얻은 결론은 주식은 개인과 작전세력 간의 심리 싸움이라는 것”이라며 작전세력을 자신이 역으로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다고 얘기한다.
개인전업투자자가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는 언어와 인식을 활용하면서 투자를 지속하는 이면에는 강한 중독성도 자리 잡고 있다. “투자가 가진 중독적인 측면의 본질은 재미”라고 한다.
전업투자를 개인적 문제로만 볼 건 아니다. 조기 퇴직 후 재취업의 길도 막힌 문과 계열 대졸자 중년 남성의 유일한 선택지라는 측면이 있다. 전업투자는 1998년 외환위기로 직장에서 구조조정 당한 사람들이 주식투자에 대거 참여하면서 생겨난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매매방은 치킨집과 유사한 공간”이다. “중년의 퇴직자가 회사를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여 그는 생계와 노후를 위해 ‘초기 투자 비용이 낮고, 접근성이 높아 진입 장벽이 낮으며, 과거에 좀 많이 해본’ 개인투자를 전업으로 삼으려고 결심한다.”
개인전업투자자들이 모이는 매매방은 중년 남성판 ‘자기만의 방’이기도 하다. 은퇴 이후 돈벌이를 통해 효용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가장들이 주위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공간이다. 가장의 체면을 차리기 위해 출퇴근할 수 있는 공간, 전업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식 해서 돈 벌었다는 얘기가 넘치고 개인투자자들을 ‘동학개미’라고 추켜세우는 ‘주식투자 권하는 사회’에서 이 책은 보기 드문 비판서로서 의미가 있다. 2020년을 기점으로 주식투자는 중년 남성들만이 아니라 2030 청년들의 일이 됐다. 주식투자는 청년들에게도 경제적 자유를 얻을 마지막 기회처럼 여겨진다.
“우량주 장기투자는 안전하다는 달콤한 언설은 저성장 시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고, 그렇다고 지금 당장 도전에 치를 비용도 없는 오늘날 안전지향형 청년들에게 가장 확실하게 경제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팔아 이들을 주식시장터로 유혹한다. 그러나 희망은 그저 바람일 뿐 약속어음이 아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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