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지구 편에 선 강금실의 변론

김남중 2021. 9. 1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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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지구를 위한 변론, 강금실 지음
김영사, 232쪽, 1만4800원
환경적으로 안전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세계의 경계를 알려주는 그래픽이다. 사회적으로는 물과 식량, 보건, 교육 등 도넛 안쪽에 표시된 12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며, 생태적으로는 기후변화, 해양 산성화, 오존층 파괴 등 도넛 바깥에 배치된 9가지 생태적 한계를 지켜야 한다. 김영사 제공


강금실(64) 변호사가 지구를 위한 변호인으로 나섰다. 판사 출신으로 첫 여성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강 변호사는 2008년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환경문제 공부를 시작한다. 2012년 대학원을 마치며 ‘생명의 정치’를 출간했고, 2015년 지식공동체 ‘지구와사람’을 창립했다. 이번에 발표한 ‘지구를 위한 변론’은 저자가 50대 이후 10년 넘게 매달려온 문명론과 생태주의 공부를 정리하는 책이자 ‘지구의 변호인’으로서 출발을 알리는 첫 변론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법과 정치의 세계에서 살아온 중년의 변호사가 어떻게 생태와 지구의 세계로 나아가게 됐는지, 지식과 사유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지구 중심의 세계관으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

기후위기로 대표되는 현재 인류의 위기를 해석하고 대응하기 위해선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는 데서 책은 출발한다. 인간 중심으로 구축된 개념과 사상, 이야기를 지구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근대문명 속에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인간을 우주와 지구, 생명의 서사 속에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10여년에 걸친 환경 공부를 바탕으로 지구 공동체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하는 ‘지구를 위한 변론’을 출간한 강금실 변호사. 김영사 제공


먼저 새로운 시간 개념이 필요하다. 이른바 ‘지질학적 시간’이다. 인간이 중심인 역사의 시간이 아니라 생물의 화석을 기준으로 지구의 시간을 기록한 지질시대로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45억년에 달하는 지질시대의 맥락에서 볼 때 인간은 가장 최근인 신생대에 태어나 홀로세에서 번영을 구가하는 하나의 생명 종으로 인식될 수 있다. 수십억 년에 걸쳐 축적된 석탄 등 자원과 빙하, 생물 종을 극히 짧은 시간에 멸절시켜도 괜찮을지 되묻게 된다.

“우리는 수십억 년의 시간 동안 만들어졌다. 그리고 1만2000년 가까운 홀로세 기간에 적정 기후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100년도 안 되는 눈 깜짝할 새에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우리가 새롭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주적 시간이다.”

우주적인 공간 개념도 필요하다. 우주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지구는 하나의 푸른 점에 불과하다. 이웃도 없고 이주할 곳도 없다. 우주적으로 생각하면 인류는 작은 외딴 섬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존재임이 분명해진다.

그러면 이 작은 섬을 지키는 것을 인류의 의무로 끌어안게 된다. 인류가 이 행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 대한 반성이나 인류가 지켜야 할 생존의 공간적 한계, 즉 ‘행성경계’에 대한 자각도 가능해진다. 한 번 선을 넘어가면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환경 변화를 유도할 만한 경계선이 행성경계다. 가장 중요한 경계선은 기후변화, 성층권 오존층의 파괴, 해양산성화다.

인간을 종(種·spieces)으로 보는 인식도 필요하다. 지질학적 시간과 우주적 공간에서 볼 때 인간은 하나의 종에 불과하다. 지구에 지금까지 다섯 차례 멸종이 있었고 여섯 번째가 인류의 멸종이 된다고 해도 이상한 게 아니다. 멸종에서 결정적 요인은 늘 기후였다는 점에서 현재의 기후위기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인간이 하나의 종이라는 각성은 다른 비인간 종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끌 수도 있다.

“인간이 스스로를 종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구의 한 지질시대에 태어나서 살다 가는 유한한 존재이며, 다른 생명체들과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저자는 지질학적 시간대, 우주적 공간 개념, 인간을 종으로 바라보는 생물학적 인식 등을 통해 지구와 인간의 관계,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과 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구성되는 관계의 핵심은 인간을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라 구성원이자 관리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인간의 공동체’가 아니라 ‘지구의 공동체’로 보는 것이다.


책의 뒷부분은 ‘지구법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강 변호사는 문명과 세계관의 전환을 촉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전공인 법을 ‘인간만을 위한 법’에서 ‘지구의 모든 존재들과 조화를 이루는 법’으로 고쳐 쓰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의 법 체계는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다룰 수 없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지구법학은 “모든 존재는 권리가 있다”는 믿음 아래 비인간 존재들의 존재할 권리, 서식할 권리, 지구의 진화에 참가할 권리 등을 옹호한다.

강 변호사는 국내 지구법학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종의 멸종을 인간에 의한 학살로 감각하는 ‘생태학살’이라는 개념, 동물은 물론이고 강 산 빙하 등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세계적 추세 등을 소개하면서 “법질서의 재구축을 강조하는 까닭은 법질서를 통해 세계관이 사회적 행동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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