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 사장님은 배달도 어렵다..늘어나는 영세사업자 폐업

김지훈,강준구,조민아 2021. 9. 1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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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을 나와서 단칸방으로 옮겼어요. 금방 다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집에 다시 들어가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서울 강남구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이영은(62·여)씨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장사가 안되자 가게 옥상의 단칸방으로 살림을 옮겼다. 살던 집은 전세로 내주었는데, 이젠 돌려줄 전세금이 바닥났다. 이씨는 “다시 들어가려면 빼줄 전세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바깥살이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자영업자 삶의 기반을 하나둘씩 무너뜨리고 있다. 버티다 못한 자영업자들은 결국 폐업 수순을 밟게 되는데, ‘사업부진’을 폐업 사유로 드는 매장이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영세사업자가 대부분인 간이사업자의 사업부진 폐업이 늘고 있어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영업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폭락한 매출이다. 이씨의 경우 연 매출 1억9000만원을 기록하던 과거와 달리 지난해에는 겨우 8000만원을 넘겼다. 이씨는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체감상 외환·금융위기 때 매출이 30% 정도 줄었다면, 팬데믹 국면에선 50%까지 매출이 급감했다”고 전했다.

김밥집은 그래도 대형 매장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서울 양재동에서 홍어 전문점을 운영하는 정민정(63·여)씨도 앞날이 캄캄하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100만원씩 나오던 매출이 근래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지난 7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처음 도입됐을 때는 종일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아 멍하니 기다렸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정씨는 “3년간 허드렛일을 하며 한푼 두푼 모은 쌈짓돈 1000만원에 빚을 보태 2008년 홍어 가게를 시작했는데, 빚을 다 갚을 때쯤 다시 빚을 수천만원씩 내게 돼 허탈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절반의 매출도 ‘내 것’은 아니다. 이씨, 정씨는 월세로만 각각 240만원, 200만원을 내고 있다.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 공과금도 50만원을 넘는다. 이씨는 “하루하루 일하느라 몸은 부서져가는데,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그대로 쳇바퀴를 도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배달을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가 든 노(老)사장님들에게는 근래 대폭 확산한 ‘배달 문화’도 먼 얘기다. 앱을 다루기도 어렵고, 경영난으로 직원을 모두 내보낸 탓에 배달 관리를 할 사람도 없다. 이씨는 “나와 남편 둘이 가게의 모든 것을 다 돌보는데 휴대전화 볼 시간이 어딨겠나”고 했다. 정씨도 “재료 손질에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 와중에 휴대전화로 주문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6일 국세청의 폐업사유별 폐업자 현황에 따르면 이들처럼 사업부진을 이유로 폐업한 비율이 2016년 39.2%에서 지난해 43.1%로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간이사업자 사업부진 폐업 비율은 49.0%로 비교적 사업 규모가 큰 일반사업자(43.2%), 법인사업자(43.5%)보다 월등히 높았다. 두 명 중 한 명은 사업부진으로 폐업을 하는 셈이다.

간이사업자 가운데 사업부진 폐업비율은 대리·중개업이 57.2%로 가장 높았다. 이어 소매업(56.3%), 건설업(54.3%), 서비스업(53.4%), 음식업(52.8%) 순이었다. 특히 다른 업종보다 사업자 수가 월등히 많은 소매업, 음식업, 서비스업의 비율이 높은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2018년 음식업 영세사업자 창업률은 39.5%로 일반사업자(17.4%)의 배가 넘었다. 진입장벽이 낮아 자영업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이 많은 이들 업종이 연쇄 도산할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폐업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폐업 직전의 한계 상황까지 몰린 이들은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다.

김지훈 강준구 조민아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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