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기술발전과 자본주의, 그 갈등과 조화

2021. 9. 16.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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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부 장관)


사회현상을 보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갈등론과 조화론이다. 현실은 항상 갈등의 연속이다. 갈등론자들은 이 갈등의 현실을 원래 그런 것으로 수용하고 갈등의 해소를 추구한다. 조화란 일시적으로 갈등이 해소된 상태일 뿐이니 사회 공동체는 갈등 해소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개입해야 한다. 반면에 조화론자들은 현실을 조화가 깨어진 예외적 현상으로 본다. 갈등과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은 장기적으로 원래의 조화로운 상태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의도적 개입은 오히려 새 갈등을 낳고 조화로 회귀하는 과정을 더디게 할 뿐이다.

갈등론은 진보주의와, 조화론은 보수주의와 닮은 듯 다르다. 갈등론은 결과주의로, 조화론은 원인주의로 연결된다. 한 부부가 이혼을 한다고 치자. 위자료 문제, 재산분할 문제, 생활비 문제 등의 금전 문제가 발생한다. 조화론자들은 이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부터 따진다. 원인주의다. 조화로운 결혼생활을 파탄 낸 귀책 배우자는 이혼소송을 제기할 자격조차 없다. 갈등론자들은 다르게 본다. 갈등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해 온 그동안의 갈등 해소 노력을 치하하지는 못할망정 한 번 갈등 해소에 실패했다고 벌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결과주의다. 금전적 배분의 문제는 상벌의 문제가 아니다. 헤어지기 전의 생활수준을 이혼 후에도 비슷하게 유지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기술발전을 둘러싼 갈등의 역사는 자본주의 발전사 그 자체다. 자본주의 초기에 일어났던 기계파괴운동(Luddite Movement)이 효시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자체 동력원을 가진 기계가 등장하면서 생산력이 급격히 발전했다. 반면에 공장노동자들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노동자들은 기계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원인 제공자인 기계를 파괴하는 극단적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다행히 이 운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단결하기 시작했고 자본가들도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현대적 노사 관계가 싹트면서 갈등은 해소됐다. 갈등 해소는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과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로 이어졌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산업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신·구 산업 간 갈등을 야기한다. 갈등의 원인 제공자를 찾아 벌주기에 나서는 것은 기계파괴운동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갈등을 인정시키고 그 해소 방법을 찾는 데 당사자와 사회 공동체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기술발전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갈등 구조가 중층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그러하다. 온라인 플랫폼 산업을 둘러싸고 말이 많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친근해진 배달앱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플랫폼 사업자, 가맹 음식점, 라이더, 소비자 간에 갈등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들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보완적 협력 관계이지 경쟁 관계가 아니다. 협력자 간 힘의 우열이 워낙 분명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예속적 착취 관계로 변모한다는 게 문제다. 앱 기반의 택시 콜 사업자가 단순한 중개사업을 넘어 가맹 본사로 진화하면서 발생하는 갈등도 비슷한 사례다. 신산업을 갈등의 원인 제공자로 봐 벌주고 질식시켜서는 안 된다. 문제를 제기하는 구산업을 갈등 조장자로 비난하는 것 역시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갈등 유형별로 적절한 해소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우월적 지위와 그 남용에 대응할 수 있는 법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 그러나 법이 만능은 아니다. 자율적인 조정과 중재의 제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발적인 상생 협력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건강한 협력 관계를 복원시키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깨닫게 해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가 오프라인까지 진출하면서 야기되는 갈등도 있다. 상품의 유통을 중개하던 플랫폼 사업자가 본격적인 유통업자로 변신하는 경우, 앱 기반의 대리기사 콜 사업자가 기존의 전화콜 시장에까지 진출하는 경우 등이 좋은 예이다. 보완적 협력 관계가 경쟁 관계로 변하면서 시장 점유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들은 기존의 소상공인 보호 정책의 틀 안에서 상당부분 갈등 해소를 시도할 수 있다. 이때도 문제 해결의 기본은 상생 협력을 유도하는 조정과 중재의 활성화여야 한다. 성숙한 공존의 문화가 결여된 천박한 자본주의로는 결국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의 확산이 궁극적 해결책이다.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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