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갓난아기처럼 소란스러운 하나님

2021. 9. 1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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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이 로마의 식민지였던 먼 옛날,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의 울음소리가 어두운 밤의 고요함을 찢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생일이 다가오면 많은 현대인은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잘도 자는 착한 아기 모습을 머리에 그린다. 사실 어머니 태에서 막 나온 갓난아기는 평화롭게 잠만 자지는 않는다. 신생아는 수시로 보채고 우는 존재다.

아기 예수가 울음을 터트리며 태어난 곳은 위험한 세계였다. 복음서에 기록된 탄생 전후의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로마 제국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고자 인구조사를 한다며 생업의 무게에 눌린 사람들에게 고향까지 먼 길을 가라고 명령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헤롯 대왕은 한 아이를 잡고자 유아 대학살을 저질렀다. 만삭의 임신부에게 쉴 공간마저 허락되지 않아 신생아를 구유에 눕혀야 했을 정도로 팍팍했던 인심은 크리스마스 촌극에 등장하던 여관주인 한 사람만의 도덕적 실패는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비인간적이고 불안정한 세계로 여느 다른 아기와 다를 바 없이 태어나셨다. 따라서 ‘고요하고 거룩한 밤’의 목가적 평화로움에 탐닉하다가 우리는 실제 아기가 내뱉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다. 폭력을 일삼는 정치, 거짓에 물든 종교, 타인의 필요에 무감각해진 양심을 성가시게 하려고 태어났던 특별한 아기가 온몸으로 보여준 보챔도 함께 잊어버릴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구원자의 탄생을 기념할 때조차 욕망에 따른 선택적 기억이 만든 종교적 판타지는 작동한다. 크리스마스를 놓고 이렇게까지 예민할 필요가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100년 전 스위스 자펜빌에서 목회하던 칼 바르트는 이것보다 더 까탈스러웠다. 아니 이러한 ‘까칠함’이야말로 신앙과 신학의 출발점이라고 봤다. 그가 볼 때 우리 삶을 구성하는 정치 종교 문화 교육 예술 등은 욕망의 산물이기도 하기에, 인간은 알게 모르게 이들을 활용해 하나님마저 자기식대로 길들이려 한다. 이런 맥락에서는 기독교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지고서 참 하나님을 찾기는커녕 자기가 믿고 싶은 신을 만들어낼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때문에 바르트는 당시 학계 분위기와는 달리 신학 이론을 파고들거나, 문화 속에 드러난 계시를 발견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바울이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바르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1세기 바울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 여기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우리의 개인적 삶뿐만 아니라 문명 전체를 심판한다. 이러한 철저한 부정 위에서만 우리는 세상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자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혁명적인 로마서 읽기를 글로 남겨 출간했고, 이 책이 바로 20세기 가장 중요한 신학책으로 꼽히는 바르트의 ‘로마서’다.

이번 달로 ‘로마서’ 2판이 탈고된 지 정확하게 100년이 된다. 한 세기 전 작품이지만 이 책에서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메시지를 발견한다. 혼란과 위기를 앞두고 교회가 어떻게 살아남을까 혹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회에 이바지할까 묻기 전에,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성취지향적인 완고한 자아가 비워질 때, 하나님의 계시가 각종 분열과 폐단을 만들어내는 개인적 환상과 집단적 기만을 찢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하나님의 미래가 이전 일상에 없던 새로운 빛을 비추고 있음도 보게 될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위기를 돌파할 힘으로 바르트는 이 단순한 사실에 희망을 걸었다.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이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코로나의 장기화로 인한 고통과 피로감에 빠진 오늘날에도 필요해 보인다.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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