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SLBM 쏜날, 북 탄도미사일 도발

강태화 2021. 9. 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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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독자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15일 도산안창호함(3000t급·아래 사진)에 탑재돼 발사되고 있다. 이날 실험은 국방과학연구소(ADD) 종합시험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등 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한국은 세계 7번째 SLBM 운용국이 됐다. [사진 국방부]

북한이 순항미사일을 발사한 지 3일 만인 1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쐈다.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는 지난 3월 25일 이후 174일 만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직후이자, 문 대통령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참관하기 3시간여 전 이뤄졌다. 왕이 부장은 한국이 미국 견제에 동참해줄 것을 강하게 요청했다.

북한은 정부가 지난 11, 12일 북한의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사실상 큰 전략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듯한 입장을 밝힌 이후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은 순항미사일 관련 사업을 ‘전략무기 개발’로 규정하며 사실상 전술핵 능력을 대놓고 과시했는데도, 정부는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결의나 남북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며 북한의 무력 도발과 핵 위협을 축소 평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도산안창호함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후 12시34분과 39분 평안남도 양덕 일대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시험발사했다. 합참은 “이번 발사체의 비행 거리는 약 800㎞, 고도는 60여㎞로 탐지됐다”고 밝혔다. 낙하 장소는 특정되지 않았다. 북한 미사일은 당초 발표와 달리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떨어졌다고 요미우리신문 등이 방위성 간부를 인용해 보도했다. 군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은 신형인 KN-23이나 KN-24로 추정된다.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은 방공망을 무력화하기 위해 변칙적인 비행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북한판 에이태큼스’로 불리는 KN-24는 고체 연료를 사용해 기습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전술 지대지미사일이다.

북한이 올해 미사일을 쏜 것은 이번이 5번째다. 북한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22일과 3월 21일 순항미사일을 발사했고, 3월 25일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쐈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미국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한다”며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이웃 국가와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계속 북한과 외교적 접근을 할 것이며 북한이 대화에 참여하길 촉구한다”며 “한국과 일본의 방위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도 “우리나라(일본)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언어도단(言語道斷·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SLBM, 도발 억지력” 김여정 “남북관계 파괴될 것”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시험장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참관했다. 왼쪽은 박종승 국방과학연구소장. [사진 청와대]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방과학연구소(ADD) 충남 태안 안흥종합시험장에서 한국이 독자 개발한 SLBM 잠수함 발사 실험에 성공한 것과 관련해 “우리의 미사일 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며 “오늘 여러 종류의 미사일 전력 발사 실험의 성공을 통해 우리는 언제든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도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맞서 압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미사일 전력을 지속적으로 증강해 나가는 등 강력한 방위력을 갖추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연 뒤 “정세 안정이 긴요한 시기에 이뤄진 북한의 연속된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수준의 입장을 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이날 문 대통령의 SLBM 시험발사 참관에 대해 “대통령까지 헐뜯기에 가세하면 남북관계가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며 “매사 언동을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이슈를 둘러싼 중요한 외교 회동 직후에 벌어졌다. 이날 오전 서울에선 왕이 부장이 문 대통령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잇따라 만났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 접견 이후 외교부에서 가진 오찬 직전 양국 외교장관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소식을 공유했다. 중국의 외교 수장이 방한 중인 가운데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 장관은 지난 14일 외교·통일·안보 분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는) 남북 합의 위반이 아니다”며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북한은 정 장관의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보란 듯이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탄도미사일을 쐈다. 특히 북한의 최대 우방국인 중국의 외교 수장이 공식 외교 일정 중에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것은 거침없는 대남 도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굳건하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 정 장관은 김 위원장이 핵무기 개발 의지를 수차례 강조한 것에 대해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대내적 메시지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실제론 한·미 양국을 포함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이행할 의지가 있는데, 다만 대내 결속을 위해 본심과 다르게 핵 개발을 계속하는 것처럼 메시지를 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한 발언이었다.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한 나머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외면하거나 의미를 축소하는 듯한 태도에 북한이 무력 도발로 응수하면서 안일한 인식을 보여온 정부도 한반도 긴장 고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 입장에선 미·중 전략 경쟁 와중에 자신들의 몸값을 올리는 국면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며 “가장 주목받기 좋은 시점을 노려 자신들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한·미를 압박하려는 행보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상진·강태화·정진우·박현주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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