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좋은 사람이에요" '슬의생2' 민하의 이야기

양선영 2021. 9. 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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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1화 하늘을 달리다

[양선영 기자]

퍽! 밤거리에서 머리를 가격 당한 간담췌외과 교수 익준(조정석 분)이 응급실로 이송된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는 익준을 보며 신경외과 교수 송화(전미도 분)의 마음도 깨진다. 정신이 혼미한 익준을 보며 표현하지 못했던 송화의 마음이 봇물처럼 터진다. 익준의 손을 잡고 눈을 감은 익준을 부르는 송화의 목소리에 떨림이 가득하다. 자신의 목소리에 익준이 반응하자, 송화의 긴장감이 순간 안도감으로 바뀐다. 

삶에는 그런 '순간'이 있다. 익준의 뒤통수처럼 터져서는 안될 것이 터지는 순간, 그리고 익준에 대한 송화의 마음처럼, 꽃망울이 터지듯 아름답게 '터지는' 순간.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1화는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터져 버리는 삶의 순간을 다양하게 그려낸다. 괴로운 순간들은 그저 지나가는 삶의 한 부분이라는, 그런 순간들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소소한 위로를 곁들이면서 말이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1화 한 장면
ⓒ tvN
 
석민의 변화

터져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수막종으로 수술을 앞둔 안상모 환자에게 뇌혈관 동맥류가 발견된다. 뇌동맥류는 '뇌 안의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언제든 불시에 파열되면 사망 위험이나 심한 장애를 갖게 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안상모 환자의 경우 문제되는 부분이 '눈으로 가는 혈관에 있는 동맥류'이기 때문에 자칫 수술이 잘못되면 시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송화로부터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안상모 환자는 실명되느니 아예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가족들이 설득하지만, 환자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신경외과 펠로우 용석민(문태유 분)은 환자를 찾아 자세하고 쉬운 설명을 곁들이며 설득한다. 동맥류가 터지면 실명에서 그치지 않고 사망할 수도 있는 반면 수술은 성공할 수도 있으며, 의료진은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것이다.

환자에겐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일 수도 있다. 실명이란 단어가 유발하는 심리적인 부담감과 절망감의 깊이를 겪지 않은 사람이 말하기는 쉽지 않다. 석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고 살기보다는 최악의 경우 실명이 예상되지만, 결과를 속단할 수 없는 수술을 하기를 권한다. 이상이 생긴 동맥류는 불시에 파열되지만, 수술은 성공할 수도 있다. 석민의 설득에 안상모 환자는 수술을 결심한다.

안상모 환자가 수술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또 왔을 것이라는 석민의 대답을 전해 들은 송화는 그를 '진행형 인간'이라며 칭찬한다. 결과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며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폭발음이 들리더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실패 역시 아픈 교훈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석민은 결과보다 여러 가능성을 내포한 과정에 중점을 둔다. '제 가족이라면'이라는 말로 환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존재를 일깨우기도 한다. 석민은 후배 전공의 선빈(하윤경 분)과 치홍(김준한 분)을 괴롭히던 까다로운 치프였지만 환자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의사로 성장하는 중이다. 위험 부담을 안으면서도 환자가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또 설득하려 한다. 돈을 잘 벌기 위해 의술을 향상시키려 율제병원에 돌아온 석민이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1화 한 장면
ⓒ tvN
 
폭발하는 사람들

터지면 안 되는 것은 뇌동맥류뿐만이 아니다. 알 수 없는 뇌동맥류의 원인과 파열은 그 어디서도 책임 소재를 찾을 수 없지만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폭발도 있다. 시즌 1의 석민은 그러한 폭발을 하는 사람이었다. 뜻을 따르지 않는 환자에게 저를 위한 치료를 강요하며 화를 내던 의사였다. 율제병원에도 과거의 석민처럼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감정에 상처를 내는 사람이 있다.

신경외과 교수 민기준(서진원 분)은 수술 도중 실수를 한 신경외과 전공의 성영(이찬형 분)을 호되게 질책한다. 기준은 성영의 부모까지 들먹거리며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기준처럼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을 평가하거나 비난할 때 감정 조절에 실패해 쉽게 흥분하고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살다보면 분노를 표출해야 할 순간이 있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에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은 주변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송화에게 지적을 당하면 밤을 새워 공부하게 된다는 신경외과 전공의들의 수다는 업무적인 실수나 잘못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알기 마련이며 그 누구보다 괴롭다. 경험자의 조언이나 지적은 단순한 감정풀이가 아니라 상대가 다시 실수하거나 잘못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산부인과 전공의 추민하(안은진 분)는 마음을 상하게 하는 다른 이의 언행에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준다. 민하는 성실하고 똑똑한 전공의 1년차 서윤희가 종종 말끝을 짧게 하며 반말을 섞어 쓰는 것이 자꾸 거슬린다. 고민하던 민하는 윤희의 말버릇을 지적하며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민하의 솔직한 조언에 윤희는 사과를 하며 자신의 말버릇을 점검한다. 

상대방의 무례하거나 경솔한 언행에 감정을 상하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이 참고 그냥 넘기곤 한다. 그렇게 참고 넘기는 일이 반복되면, 이제까지의 인내를 보상받으려는 듯 폭발적으로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화가 필요할 때도 있다지만, 대부분의 화는 필요를 따지기도 전에 대책없이 분출되는 경우가 많다. 절제되지 못한 화는 상대를 상처주고 결국 터트린 사람도 부끄럽게 만든다. 

상대방의 태도에 감정이 상한다면 조심스럽게 자신의 불편과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쌓아두고 한번에 분노를 표출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아무리 말해도 상대가 변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자신이 최악이 되는 경우는 피할 수 있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1화 한 장면
ⓒ tvN
 
어려운 순간,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터지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도 있다. 유도분만을 하던 정시은 산모의 태아 심박수에 이상이 생긴다. 산도에 태아의 머리가 낀 급박한 상황에서 태아의 심박수는 회복되지 않는다. 자칫 태아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석형은 산모에게 지속적인 심호흡을 당부하며 좀더 힘을 낼 것을 독려한다. 죽을 듯한 고통 속에서 산모의 낮은 비명이 터지며 아기가 세상에 나온다.

그러나, 분만실에 아기의 울음 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는다. 탯줄을 3번이나 목에 감고 나온 아기를 받은 산부인과 교수 석형(양대명 분)과 민하는 급히 탯줄을 풀고 간호사에게 아기의 수습을 맡긴다. 잠시 후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분만실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자신의 이상없음을 세상에 알리는 작지만 강하게 터진 울음소리였다.

무사히 터진 아기의 울음 소리와 함께 산부인과 전공의 1년차 김은미의 말문도 터진다. 은미는 정시은 산모의 출산 과정을 지켜보며 깊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부지런하고 꼼꼼하지만 평소 말수가 적고 사람들을 피해 민하의 걱정을 사던 은미는 자신의 일에도 그다지 의욕이 없어 보였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 힘을 내는 산모와 죽을 뻔한 위기 속에서 살아남는 아기를 보며 크게 감동한 은미는 자신의 일에 이전과 다른 태도를 갖게 된다. 아기의 울음이 숨죽었던 은미까지 깨운 것이다. 

생명의 경이에 감동한 은미와 달리 외과 전공의 2년차 김건(이종원 분)은 죽음이 데려온 절망감에 휩싸여 병원에 나타나지 않는다. 건이 병원에 나타나지 않자 흉부외과 교수 준완(정경호 분)은 교수의 괴롭힘이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건은 중환자실의 선춘식 환자가 죽음에 이르자 가족들에게 사망 선고를 한 후, 도움을 청하는 일만 할 수 있었던 자신에게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병원에 나오지 않았다. 

건이 다시 병원에 나오자, 소아외과 교수 정원(안정원 분)은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다"며 건은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위로한다. 정원은 전공의 시절 이런저런 과정을 겪으며 경험도 실력도 쌓일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원은 건의 행동에 대한 비난이나 질책 대신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해준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1화 한 장면
ⓒ tvN
 
의사라면,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건처럼 무능한 자신을 탓하며 깊은 무력감을 빠질 수 있다. 그 무력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마음의 등에 작은 불씨를 붙이는 것은 함께하는 동료들일 것이다. 정원의 위로가 진심이고 힘이 되는 것은 정원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기 황지우(이정원 분)는 건의 빈자리를 묵묵히 채우며 그의 귀환을 기다린다. 

전공의 1년차 시절, 겁이 났던 당직을 함께 보낸 동기 치홍을 회상하는 선빈의 이야기도 함께하는 누군가를 일깨운다. 홀로 익숙지 않은 일을 감당해야 하거나 열정이 사라져 잠시 꺼지는 순간, 누구나 진한 고독감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혼자인 것 같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돌아보면 누군가 곁을 지키고 있다. 선빈의 말처럼 둘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치홍의 말처럼 1.2는 될 수 있다. 터짐과 꺼짐을 반복하는 힘겨운 삶 속에서 누군가의 0.2가 되고 누군가에게 0.2만큼 기대는 것은 참 따뜻한 일이다. 

그러나, 민하의 동기 산부인과 명은원(김혜인 분)의 잠수는 건의 잠수와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이 맞이하게 될 불편한 상황을 피해 도망치듯 사라진다. 은원이 나타나지 않자 민하는 환자의 보호자들이 터트리는 불평과 불만을 들으며 대신 사과한다. 그리고 환자의 현재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민하의 사과와 설명에 보호자들은 잠잠해진다.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 있다. 은원은 자신이 힘들지 않기 위해 다른 이를 힘들게 하는 불편한 사람이다. 어쩌면 거칠게 화를 내는 사람보다 더 많은 상처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은원은 자신이 상처받은 척 교묘하게 꾸민 말로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든다. 이런 은원에게 과연 0.2가 되어줄 누군가가 곁에 남을 수 있을까. 

불편한 사람, 그리고 좋은 사람

석형은 민하에게 자신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을 바라볼 수 있냐고 묻는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 괜찮다는 민하의 대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과도하게 화를 내고, 반말을 하고, 말을 하지 않고, 잠수를 타는 것처럼 불편을 주는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일까. 그 누구도 정답을 줄 수 없겠지만, 좋은 사람이 결코 완벽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1화 한 장면
ⓒ tvN
 
좋은 사람이 꼭 화를 잘 내지 않고, 예의를 잘 지키며, 친화성이 좋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무책임하게 회피하지 않는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좋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일면을 포함하겠지만, 좋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반대의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드라마는 불편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준과 은원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드러내지만, 누구든 석민이 변화하듯 변화하고, 건처럼 예기치 않은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심심찮게 사용된다.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상처 받은 우리는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가혹하게 이 말을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모든 이를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듯, 누구를 어떻다고 단정짓는 것은 섣부르고 위험한 일이다. 때론 불편한 사람이 되고 때론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 대부분일 것이다.

이것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이미 좋은 사람으로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한번쯤 생각해 보아도 좋은 문제일 듯하다. 

슬의들의 로맨스가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폭죽처럼 낭만적으로 터진다. 송화는 응급실에 실려온 익준을 보며 익준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20여 년 전, 차가운 익준의 태도에 차마 밝힐 수 없었던 마음이었다. 소개팅한다는 말로 부러 송화를 밀어낸 익준이었다. 준비했던 생일 선물조차 미처 전해주지 못하고 돌아섰던 송화였다. 송화는 다친 익준을 보며 고백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익준에게 고백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친구라는 이유로 어긋났던 이들은 이제껏 억눌렀던 감정을 마음껏 발산한다. 마음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송화에게 익준은 뜨거운 키스로 답한다. 그들의 키스는 이제 더이상 친구가 아닌 연인임을,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11화 한 장면
ⓒ tvN
 
이들과 달리 석형과 민하의 관계는 좀더 담백한 전환을 맞이한다. 솔직하고 꾸준하게 마음을 고백하는 직진녀 민하에게 석형이 드디어 마음을 연다. 영화를 보며 함께 주말을 보낸 석형에게 민하는 데이트가 맞는 것이냐고 묻는다. 의아한 얼굴로 관계를 확인하는 민하에게 석형은 담담한 목소리로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민하를 향한 석형의 고백에는 뜨거운 격정도 휘몰아치는 열정도 없다. 오랜 시간 자신을 바라본 민하에게 석형은 서서히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었다. 다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상처가 많았던 석형이기에 민하에 대한 마음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세상의 모든 고백이 불꽃놀이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석형의 고백은 편안하고 잔잔하며 소박하다. 자극적이지 않은 그의 목소리와 미소는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 같지 않아도 아름다운 사랑의 또다른 모습을 잘 보여준다. 따뜻한 포옹이 있는 낭만적인 가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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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양선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고 '평범한 그녀'(http://m.post.naver.com/sungyuji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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