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대통령 후보의 자질
“정상(頂上)에 오른 사람은 정상(正常)이 아니다.” 치열한 과정을 통해 지도자가 된 사람에겐 보통 사람과 다른 비범한 면이 있음을 강조한 말일 게다. 그러나 정상이 아닌 자가 정상이 됨으로써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21세기 들어 정치지도자가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고 문제를 악화시키는 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자유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거나, 코로나 감염병을 비웃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한 자도 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됐을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답은 간단하다. 국민이 원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이지만 나의 이익을 챙겨주는 데는 비범할 것 같은 사람을 뽑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기대와 달리 더 큰 손실과 갈등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할까. 정상이 비범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다. 정상적인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에 터를 세우고 공익을 우선하면서 균형 잡힌 사고와 정확한 판단력으로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자다. 그런데 이런 자질은 ‘튀어야 뜨고 털어야 이기는’ 혼탁한 선거 과정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들이 다음의 정보를 먼저 공개해 주길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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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후보의 자질을 평가할 때
정상이 비범보다 더 중요한 기준
생각의 힘과 공감의 역량 갖추고
선의면 다 된다는 단순함 버려야
」
첫째는 대학에서 수강한 과목의 목록이다. 얼마나 생각하는 힘을 길렀는지 알기 위해서다.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치열한 사유와 논증으로 그 답을 찾아가는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다. 특히 다음 대통령은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선장과 같다. 미·중 패권 경쟁, 북한 문제, 코로나 이후의 경제, 정치와 사회의 갈등이 어떻게 전개, 조합될지에 따라 미증유의 격랑이 몰려올 수도 있다. 이 거대한 불확실성 가운데 한국이 가야 할 좌표를 생각의 힘을 기르지 못한 자가 어떻게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까. 주변의 조언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나라를 짊어지고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은 결국 대통령 자신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여러 명을 접해 보니 도대체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는 후보자 가운데 철학과 역사 과목을 열심히 들었던 자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볼 것이다. ‘운동의 시대’는 가고 ‘생각의 시대’가 와야 한다.
둘째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의 목록이다. 이는 사고의 폭과 깊이를 아는 데 유용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을 보였다는 책은 지도자가 고민해야 할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생의 책으로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꼽았다. 놀라우리만큼 두 정부의 행태가 대통령이 읽은 책의 내용과 유사하다. 한쪽은 통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다른 쪽은 21세기 대한민국이 아직도 식민지 상태에서 고통받는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그러니 청와대 수석은 죽창가를 외쳤고, 대법원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내렸다는 판결을 수용하지 않았겠나. 대통령의 사고 지평은 미래로 나아가고 세계로 넓어져야 한다. 그래야 정치·외교·안보·경제·기술이 얽히고설킨 세계에서 나라를 지켜내고 발전시킬 수 있다.
셋째, 스스로 장을 보기도 하는지, 어디에서 식사하는지 알고 싶다. 다음 대통령은 시민과 격의 없이 소통하고, 서민을 이해하고, 약자를 보듬는 따뜻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재래시장이나 마트에서 식료품을 구매한 후, 환경을 생각해 미리 준비한 천 주머니에 담아 집으로 향하는 후보자를 보고 싶다.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호텔 식사를 일삼은 자가 분열된 사회를 통합시킬 수 있을까. 차기 정부도 사회 양극화 해소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지 않을 수 없다. 분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현대 문명의 근본 제도가 디커플링 하는 대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통합은 정책을 넘어 국민의 마음을 얻는 문제다. 누가 이런 공감의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넷째, 구조라는 개념을 이해하는지 알고 싶다. 사회과학은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음을 가르친다. 선한 목적을 가진 정책이 구조라는 블랙박스에 들어가면 어디로 튈지 알기 어려운 럭비공이 되어 나온다. 이번 정부의 정책이 실패를 거듭한 이유도 경제학이 가르치는 구조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자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었다. 갑자기 큰 폭으로 올린 최저임금은 취업인구의 25%에 달하는 자영업자를 충격에 빠뜨렸다. 적폐, 즉 사람의 문제로 접근해 실패한 부동산 정책도 결국 경제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복잡한 경제문제를 일거에, 그것도 적폐만 제거하면 된다는 대통령 후보가 있다면 그는 구조를 모르는 위험한 자다. 그를 가장 먼저 제외하는 것이 나라를 안전하게 만드는 길이다.
이상의 네 기준 중 셋 이상을 충족하지 못하면 과락이다. 과락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대한민국은 낙오한다. 명징한 기준을 가지고 대통령 후보의 자질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좋은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이번 선거의 무게는 매우 무겁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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