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막 오른 유엔총회. 지구촌 백신 양극화, 내전, 인권 문제 풀 수 있을까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상황 방치하면 '변이 코로나' 속출
아프간 인권, 미얀마 정변도 난제
한국도 가치외교에 적극 나서야
다자외교 무대인 제76차 유엔총회가 9월 14일 개막(토론은 21일부터)해 30일까지 이어진다. 유엔헌장은 제1장 제1조에 국제평화와 안전, 평등권과 자결, 경제‧사회‧문화‧인도적 성격의 국제문제 해결과 차별 배제, 그리고 인권과 기본적 자유 존중 등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올해 유엔총회는 굵직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뭐니뭐니해도 다자외교를 통해 지역별‧계층 간 백신 불평등을 완화하는 게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인류의 생존과 건강, 그리고 복지·권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눈앞의 현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엔을 바탕으로 한 다자외교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가 없다. 한 나라가 아무리 강하고 철저해도 홀로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길 수는 없다. 코로나19를 물리치려면 다자외교를 통한 힘 모으기가 필수적이다.
인구 20% 차지 가난한 52개국, 백신 3.3%만 접종
백신 불평등은 이미 심각한 글로벌 과제다. 불룸버그 통신 백신 트래커에 따르면 13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57억6000만 회의 백신의 접종됐으며, 최근 속도를 보면 하루 3360만 회분꼴로 접종되고 있다. 문제는 전 세계 인구의 20.5%를 차지하는 가장 가난한 52개 국가와 지역이 글로벌 백신의 3.3%를 접종했다는 사실이다.
국가별 백신접종률 89%에서 0.57%까지 큰 격차
영국의 글로벌 사회문제 통계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타(OWID)를 보면 이런 백신 불평등과 부익부 빈익빈의 상황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13일 기준 백신 접종자 비율은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89.39%(완료 78.30%, 1차 11.09%)이고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포르투갈은 87%(완료 80.78%, 1차 6.02%)에 이른다. 반면 아프리카의 국가는 1차 접종자와 완료자를 합쳐도 탄자니아 0.57%, 나이지리아 1.9%, 케냐 4.1%에 불과하다. 오랜 분쟁에 시달렸던 아프가니스탄은 1.93%, 시리아 1.10%, 예멘 1.01%, 그리고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로 소요 사태를 맞은 미얀마는 8.15% 수준이다.
백신 가뭄 속 부스터 샷 한창…4차 접종도 나와
지구촌 한쪽에선 백신 가뭄을 겪고 있는데도 일부 나라들은 접종 완료자들에게 부스터 샷(추가 접종)을 놓고 있다. 부스터 샷은 정치 지도자가 유권자들에게 코로나 퇴치에 성과를 내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정치적 애드벌룬’이 되고 있다.
BBC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선 접종 완료 5개월이 지난 40세 이상의 모든 사람에게 3차 접종을 제공하며, 4차 접종도 한다. 미국은 화이자‧모더나 백신 접종 8개월이 지나면 누구에게나 부스터 샷을 제공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지난 9월 부스터 샷을 도입했다. 한국도 지난 7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국회에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G20 보건장관들, '로마 협정'으로 백신 분배 힘쓰기로
세계보건기구(WHO)가 도도한 탁류에 맞서지만 역부족이다. WHO는 글로벌 백신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신 공급이 충분한 나라들에 가난한 나라의 접종이 어느 수준에 이를 때까지 부스터 샷 접종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과학적‧의학적‧보건적인 문제와 함께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를 따르는 부자 나라는 아직 없다. 부스터 샷은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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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변·체제변화·내란…인권·인도주의 위기도 문제
유엔의 또 다른 과제가 분쟁을 겪거나 급변 사태를 맞은 미얀마‧아프가니스탄‧예멘‧시리아 등에 대한 다자외교 차원의 해법 모색이다. 미얀마에선 민주 선거로 들어선 민간정부가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로 무너지고 인도주의 위기 속에서 내전 위기로 치닫고 있다. 현지에서 지난 3월 결성된 정치범지원협회(AAPP) 등에 따르면 지난 9월 5일까지 1046명의 시위대와 47명의 경찰, 7명의 군인이 숨졌다. 4848명이 구금 상태다.
미얀마 민주세력, 유엔총회 앞두고 군부에 전쟁 선언
민주 세력이 지난 4월 16일 결성한 국민통합정부(NUG)는 지난 7일 군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한마디로 시리아나 예멘처럼 내란이 확산할 위기다.
NUG의 두와 라시 라 부통령은 군부를 테러리스트로 부르면서 국민 봉기를 호소했다. NUG는 이미 지난 5월 5일 무장조직인 인민방위군(PDF)을 결성해 국경 지대의 소수민족 무장조직과 힘을 합쳐왔다. NUG의 전쟁 선포는 이번에 열리는 유엔총회에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자체 무력으로 군부를 뒤엎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미얀마 군부는 오랫동안 소수민족의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잘 조직되고 훈련됐다. 외부의 침략을 막는 기능보다 자국에서 벌어지는 게릴라전에 대한 대비에 무게를 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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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국제 승인 노리고 중·러 지원 가능성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과 이들을 암묵적으로 지원하는 중국·러시아 등은 이번 유엔총회에서 탈레반의 국제적 승인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과 외교 대결이 불가피하다. 특히 유엔헌장은 전문에는 "기본적인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있다. 남녀·소수민족·종파 차별을 일삼는 탈레반 정권을 승인할 경우 유엔 가치관에 심각한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국 인권 문제로 서방의 제재를 받는 중국·러시아 등이 이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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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인구 이동은 난민 행렬과 극우 준동 우려
게다가 탈레반의 인권침해나 여성 차별, 폭력, 종파와 민족 차별은 가치문제를 넘어 거대한 인구 이동을 부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경을 넘으면 이란이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갈 수 있다. 거대한 난민 행렬이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유럽의 수용 한계를 넘어 정치적인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시리아 난민이 쏟아져 들어올 때 유럽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난민 수용을 둘러싸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독일과 여력이 적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가 갈등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에선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비롯한 극우 정당이 세력을 넓혔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헝가리인은 성을 먼저, 이름을 뒤에 쓴다) 총리는 반이민은 물론 반유대주의 목소리까지 높여 주목을 받았다. 권위주의적인 통치도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교황, 극우세력 증가하는 가톨릭 국가 방문
84세로 지난 7월 수술까지 받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일 헝가리, 13~15일 슬로바키아를 각각 방문한 것도 이와 관련이 커 보인다. 헝가리는 국민의 54.3%가 기독교도이며 39.0%가 가톨릭이다. 슬로바키아는 국민의 75%가 기독교도이며 65.8%가 가톨릭이다.
AP·AFP 통신, 그리고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교황은 헝가리에서 오르반 총리를 만나고 세계성체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했다. 오르반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교황과 만나는 사진을 올리면서 "기독교적인 헝가리가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교황에게 당부했다"고 포스팅했다. 무슬림 이민자들 때문에 헝가리의 기독교적인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평소의 주장을 돌려 말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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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파시스트 신부가 대통령 했던 슬로바키아
교황은 13일엔 이웃 슬로바키아로 옮겨 수도 브라티슬라바의 리브네 광장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찾았다. 교황은 그 앞에서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졌다"고 말했다. 교황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슬로바키아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을 두고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모든 폭력과 반유대주의의 모든 형태를 규탄하기 위해 단결하자"고 말했다.
교황의 발언은 2차 대전 중 나치에 부역하며 슬로바키아(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나치 괴뢰국으로 분리) 총리와 대통령을 지냈던 '파시스트 사제' 요제프 티소(1887~1947년) 신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티소는 1939~45년 나치 괴뢰국가였던 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을 지내며 수많은 유대인을 독일과 폴란드의 절멸 수용소에 보내고, 반나치 봉기에 나선 주민들을 독일군을 동원해 유혈 진압했다. 2차대전이 끝나자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로 도망갔다가 미군에 잡혀 전후에 부활한 체코슬로바키아 당국으로 인도됐다. 그는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 혐의로 기소되고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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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민족주의로 부활한 파시즘
문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주의가 사라지고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라가 나뉘면서 나치 신부인 티소가 반공주의자에 슬로박 민족주의자로 새롭게 추앙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무슬림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국민 상당수가 가톨릭 신자인 슬로바키아에서 반이민·반이슬람·반유대 성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차대전 당시의 반유대주의·반로 슬로바키아 정부는 교황 방문 사흘 전에야 과거 티소 정권의 반유대주의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했다.
교황이 황급히 슬로바키아에 달려갈 며칠을 지낼 정도라면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간 난민들이 유럽에 들어오면 유럽 내부의 갈등과 반이민·반무슬림·반유대가 더욱 가열할 가능성이 크다.
예멘·시리아 내전 종식 가능할까
유엔에 다룰 과제는 지난 8월 새롭게 터진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주민들의 이주 문제뿐이 아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어져 49만~60만의 사망자와 670만 명의 난민, 660만 명의 국내 피란민이 나온 시리아 내전의 완전 종식도 과제다. 2015년부터 계속돼 유엔 조사 결과 23만3000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예멘 내전의 해결도 급선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유럽과 미국이 해결을 위해 별로 할 일이 없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유럽중심주의, 미국패권주의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대신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예멘의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에 정치적 승리를 안겨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시리아의 항구와 항공 기지를 차지하면서 수많은 무기를 시험한 러시아도 분쟁으로 이익을 챙겼다고 할 수 있다. 그 고리를 이번에 끊을 수 있을지가 문제다. 러시아와 중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가진 다섯 상임이사국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유엔의 한계다. 하지만 이런 특혜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옛 소련이 유엔에 합류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한국이 다자외교 중심이 되는 노력 필요
시급한 코로나19와 아프간 사태 등으로 이번 총회는 다자외교 무대인 유엔의 문제 해결과 협상중재 능력이 새삼 도마 위에 오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지금도 코로나19와 내전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숨지거나 핍박받고 있다. 유엔이나 책임 있는 나라가 본격적으로 나설 때다. 미국도 이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서 과감하게 손을 뗀다는 것을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보여줬다.
아울러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차원을 넘어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찾는 계기가 돼야 한다. 사실 한국이 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일은 적지 않다. 백신 양극화 해소는 물론 시리아와 예멘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그리고 미얀마와 아프간 인권 모니터링 등에서 한국은 할 일이 많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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