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증시 레벨업 돌파구 없나? MSCI선진지수 편입 '필수 조건'
최근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는 패시브펀드가 금융 패권을 꿰찼다. 패시브펀드는 상장지수펀드(ETF)나 인덱스펀드를 떠올리면 된다. 액티브펀드는 펀드매니저가 종목을 적극적으로(Active) 고른다. 패시브펀드는 특정 지수를 구성하는 종목을 거의 그대로 복제해 지수 등락률만큼을 좇는다는 의미에서 수동적(Passive)이다.
패시브 개념이 자본 시장에 등장한 것은 오래전이다. 시초는 1952년 해리 마코위츠 박사의 포트폴리오 이론이다. 지금은 분산 투자나 포트폴리오라는 용어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한두 개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이 대세였다. 이어 1960년대 유진 파마 시카고대 교수가 “시장의 모든 정보는 주가에 반영돼 있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로 주목받았다. 이를 눈여겨본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출신 존 보글이 1974년 뱅가드를 설립하고 인덱스펀드를 만들면서 패시브 투자가 처음 등장했다. 수십 년간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패시브펀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금융 패권을 장악했다.
문제는 패시브펀드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과 별개로 증시 수급에 주가가 좌우되는 현상이 잦아졌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각국에서는 자국 증시의 변동성을 완화하려 패시브펀드 유동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한다. 패시브펀드가 추종하는 대표적인 지수는 MSCI, S&P, FTSE 등 3가지다. 특히 영향력이 큰 지수는 일찌감치 지수 사업을 시작한 MSCI다. MSCI는 1986년 모건스탠리에서 분사한 상장 기업. 중국 공산당이 MSCI 측에 자국 증시 비중을 늘려달라며 압력을 가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올 정도다.
MSCI선진국지수 편입은 우리 증시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FTSE와 S&P글로벌지수는 이미 한국을 선진국지수에 포함했는데 MSCI에서는 신흥국지수에 묶여 있다. 특히 FTSE와 S&P보다 MSCI를 추종하는 자금 규모가 압도적인 것에 비춰 국내 증시의 고질적인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라도 MSCI선진국지수 편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미 증시 디커플링, 왜?
▷신흥국지수 발 묶인 탓
MSCI선진국지수 편입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로 미국과 국내 증시 간 상관관계를 꼽을 수 있다. 상관관계는 두 변수 간 상관계수로 표현되는데, -1에서 1 사이 값을 취한다. 0이면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1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높다. 상관계수가 0.5 이상 값이면 상관관계가 높다고 본다.
흥미로운 점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미 증시 간 상관관계의 변화 양상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한국, 중국 증시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금융위기 이전 미국과 0.42의 상관계수를 보였으나 금융위기 이후 0.32로 낮아졌다. 반면, 금융위기 이전 중국과 한국 증시 수익률 간 상관관계는 0.07에 불과했으나 금융위기 이후 0.23으로 4배가량 증가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미 증시 수익률 간 상관관계의 변곡점이 나타난 시기가 미국 금융위기를 전후한 때라는 점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금융위기를 전후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세계 금융 시장에서 패시브펀드로 8150억달러가 유입됐는데, 이는 액티브펀드 유입액(1150억달러)의 7배다.
행간을 좀 더 들여다보면 이렇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패시브펀드 급성장 과정에서 국내 증시는 MSCI신흥국지수에 머물렀다. 비록 2009년 FTSE에 선진국지수로 편입됐으나 그 비중이 1%대로 미미하고 추종 자금 규모가 크지 않다. 반면 MSCI신흥국지수에 중국과 함께 포함된 국내 증시는 기계적으로 주식을 매매하는 패시브펀드의 영향력 아래 고스란히 노출됐다. 특히 MSCI신흥국지수에서 중국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중국 편입 비중이 변할 때마다 한국 증시 변동성도 커진다. 결국 패시브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신흥국 시장으로 묶여 있는 한국은 중국과 동조화 경향이 짙어진 반면, 선진국 시장인 미국과 탈동조화 현상이 심화했다는 진단이다.
미국이 한국 증시와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 또 있다. 미국에서는 역대급 IPO가 잇따르면서도 수급 부담이 덜하다. 미 자산운용사 르네상스캐피털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 8일까지 미국 IPO 규모는 964억달러(약 112조원)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IPO다. 그럼에도 미국 주요 지수의 신고가 행진은 그칠 줄 모른다.
이 역시 패시브발 유동성 유입과 무관치 않다. 무엇보다 패시브펀드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는 구조다. 주요 국가 연기금이 MSCI를 비롯한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서다. 2014년 MSCI를 추종하는 세계 펀드 자금은 3조5000억달러였는데, 지난해 말 14조5000억달러(약 1경6453조1500억원)까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가운데 MSCI선진국지수를 추종하는 자금이 신흥국지수보다 2배 이상 많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 추정이다. 미국 증시로 유동성 유입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정리하면, 기술 혁신에 기반한 미국 경제의 선순환 구조, 기축통화국 등의 요소에 더해 마르지 않는 패시브 자금 유입이 증시 유동성 파이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것이다.
▶MSCI 선진국 편입 잇단 불발
▷역외 외환 시장 개설 압박
사정이 이렇지만 우리 증시는 지난 6월 MSCI선진국지수 편입에 또 실패했다. 정확히는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관찰대상국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선진국지수 편입은 절차상 아무리 빨라도 2024년 이후에나 가능해졌다. 한국 증시는 2014년 관찰대상국에서 탈락한 뒤 7년째 신흥국지수에 머물렀다.
MSCI는 한국의 선진국지수 편입 불가 이유로 역외 외환(현물) 시장 부재, 영문 자료 부족, 외국인 투자자 등록의무 등을 줄곧 지적해왔다. 올해는 공매도 규제를 추가했다. 이와 관련 MSCI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지수에 편입되지 않은 종목에 대한 공매도 재개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장 인프라’ 항목 내 공매도 점수를 ‘문제없음’에서 ‘일부 문제, 개선 가능’으로 평가했다. 사실상 이전보다 평가가 나빠졌다. MSCI는 기업이 배당금을 배당락일 이후 결정해 배당수익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 가운데 MSCI가 줄곧 문제 삼아온 항목은 역외 외환 시장 부재다. 이는 쉽게 말해, 뉴욕·런던 같은 글로벌 외환 시장에서 원화를 24시간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MSCI 측은 선진국지수에 편입한 23개국 모두 역외 외환 시장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과거 외환위기 트라우마로 환율 시장 개방에 극도로 신중하다. MSCI 요구대로 역외 외환 시장을 개설하면 환율 급변동 시 정부 개입이 매우 힘들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환율 변동에 취약하다. 정부는 선진국지수 편입과 외환 시장 개입, 둘을 놓고 득실을 따져야 하는데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전략적으로 우선순위를 두는 분위기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MSCI선진국지수 편입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들끓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외환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역외 외환 시장 개설에 민감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유관 기관이 MSCI와 논의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이참에 우리 증시를 질적으로 레벨업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동성 낮추고 수급 악재 해소
▷자금 조달 원활로 ‘제값 받기’ 가능
MSCI선진국지수 편입으로 예상되는 효과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자본 시장 변동성을 낮추고 안정성을 높인다. 지수를 추종해 움직이는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 신흥국 투자는 위험 자본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투자에 해당한다. 이에 신흥국 증시는 글로벌 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이 나타나며 시장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반면 선진국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는 장기 투자 자금으로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실제로 과거 데이터를 살펴보면 MSCI신흥국지수 변동성이 선진국지수보다 평균 60%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신흥국 시장의 자금 유출과 변동성은 극대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김동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위기의 근원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었음에도 당시 신흥국 시장의 변동성이 더 크게 나타났다. MSCI 선진국 승격은 주식 시장 변동성 완화와 금융 안정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과거 선진국 시장으로 승격된 이스라엘과 그리스를 보면 편입 이후 시장 변동성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증시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 해소다. 신흥국 증시는 선진국과 비교해 만성적인 저평가에 시달리고 있다. MSCI 신흥국 증시의 PER(주가수익비율)은 약 14배로 선진국 증시의 약 20배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다. PER이 낮다는 것은 동일한 이익을 내는 기업에 대해 더 낮은 가치가 책정된다는 의미로, 쉽게 말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통상 신흥국 증시는 선진국 대비 평균 40% 가까이 저평가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증시의 단점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항상 언급된다. MSCI선진국지수에 편입된다면 국내 기업의 ‘제값 받기’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MSCI신흥국지수에 계속 남아 있게 된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수급 악재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다. 신흥국 시장에서 중국의 지속적인 비중 확대 전망 때문이다. 현재 MSCI신흥국지수 내 한국은 ‘끓는 물속의 개구리’ 신세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2018년 중국 A주(본토 주식)가 MSCI신흥국지수에 편입된 이후 중국 증시는 신흥국 내 비중을 계속 늘려가고 있어서다. 또 이와는 별도로 아람코 사례처럼 신흥국지수 내 지속적인 타 국가 편입, 주식 공개로 인해 한국 증시 비중 축소 압박이 가중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투자 자금은 패시브 투자 형태가 갈수록 강화되는 분위기다. 미국 주식형 펀드는 패시브 투자 비중이 이미 절반 수준까지 커졌다. 지수 편입에 따른 수급 변화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즉 MSCI신흥국지수 잔류 시에 나타날 수 있는 비중 축소 악재는 고스란히 시장 매도로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대한 외부 인식과 증시의 불균형 해소 차원이다. 한국은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이미 확고한 선진국 지위에 올라 있다. 반면 유독 MSCI의 주식 시장 분류에 있어서만 선진 시장에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다. MSCI선진국지수에 편입되지 못하는 것은 낙인 효과로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MSCI선진국지수에 편입되는 것은 국내 증시가 국가의 격에 맞는 제자리를 찾는 과정인 셈이다.
▶선진국지수 편입 전략은
▷연기금 압박과 정부의 정책 지원 필요
MSCI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MSCI는 비영리기구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 사기업이다. 주요 고객인 자금 운용기관의 의견 제시가 MSCI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MSCI 서비스를 이용 중인 국내 대형 연기금이나 투자기관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지속적인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
투자기관이 지수제공업체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사례로 2013년 뱅가드그룹이 6개 펀드의 벤치마크(추종 대상)를 MSCI에서 FTSE로 바꾼 것을 들 수 있다. 세계 최대 인덱스펀드 운용사 뱅가드그룹이 저렴한 수수료를 위해 MSCI에서 FTSE로 갈아타면서 MSCI는 주가가 30% 가까이 폭락한 반면 FTSE는 글로벌 2위 지수 사업자로 단숨에 위상이 격상됐다.
블랙록자산운용 등 해외 대형 투자기관을 활용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국내 증권업계에서 우회적으로 한국이 선진 시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슈를 지속적으로 언급해 여론을 만드는 작업이 동반되면 더욱 효과적일 테다.
무엇보다 정부 노력이 중요하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는 역외 외환 시장 부재가 선진국지수 편입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MSCI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역외 외환시장은 없지만 원화는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통화로 외국인이 국내 증시 투자를 위한 자금을 환전하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다.
최근 전경련이 MSCI 측에 “한국의 역외 외환 시장 허용은 거시경제, 통화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으로 특히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 경험이 있는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의견 제시가 이뤄져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원화 국제화를 통한 정공법적인 접근 등 선진 시장 승격을 위한 종합적인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공매도에 대한 과도한 규제도 주의해야 한다. 공매도는 부작용도 있지만, 증시 과열을 막는 순기능도 적지 않다. 공매도 제도의 과도한 금지는 한국 증시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더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MSCI가 강조하는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6호 (2021.09.15~2021.09.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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