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경영 '끝판왕' 카카오, '구성의 오류' 자초하다
카카오가 사업 확장 과정에서 잇단 구설에 휘말렸다. 최대 8800원에 달하는 호출 요금제로 여론 뭇매를 맞고 철회한 카카오모빌리티가 단적인 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를 빌미로 플랫폼 기업의 독점 문제를 공개 저격하자 카카오 주가는 폭락했다. 각자도생하는 수많은 계열사가 상장과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그룹 전체적으로 혼란을 자초했다는 진단이다.
▶확장 과정서 연일 잡음
▷독점 논란에 갈등 고조
카카오그룹 계열사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45개에서 지난 8월 기준 128개로 늘었다.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은행·모빌리티·온라인 쇼핑 등 굵직한 분야는 물론 미용실·영어교육·퀵 배달 등 동네상권까지 모두 카카오 속으로 들어왔다.
무리하게 확장하다 보니 곳곳에서 잡음이 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무리한 수수료·요금 정책으로 소비자와 택시 기사 양쪽에게 지탄받았다. 8월에는 ‘스마트 호출’ 요금을 최대 5000원까지 올리려 했다가 여론 질타를 받았다. 결국 최대 요금을 2000원으로 줄였다. 9월 들어서는 수수료에 반발한 택시 기사들이 카카오 본사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카카오는 최대 20%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미용실 예약, 영어교육, 대리운전, 스크린골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카카오 브랜드 프리미엄을 앞세우는 과정에서 기존 산업과의 마찰, 갈등의 목소리가 연일 커지고 있다.
급기야 정치권까지 움직여 카카오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 9월 7일 열린 ‘118개 계열사를 거느린 공룡 카카오의 문어발 확장 - 플랫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골목상권 생태계 보호 대책 토론회’는 사실상 카카오 성토의 장이 됐다. ‘탐욕과 구태의 상징’ ‘문어발 확장’ ‘좌시하지 않겠다’ 등 수위 높은 발언이 쏟아졌다. 강도 높은 국정감사와 관련 입법 추진까지 예고했다. 규제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지난 6월 16만원이 넘었던 주가는 9월 9일 12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집권화 기능 아예 실종
▷지나친 자율성, 분권화 목적 상실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 tion)에 빠진 듯하다.”
최근 좌충우돌하는 카카오를 바라본 재계 관계자의 촌평이다.
구성의 오류는 경제학 거장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언급한 개념이다. 개별 경제 주체가 합리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집합적인 경제 시스템 관점에서 비합리적 결과를 야기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카카오 계열사의 수익 극대화가 얼핏 개별적으로는 이익이지만 그룹 차원에서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카카오모빌리티 호출 요금 논란이 정치권의 플랫폼 규제 논의의 빌미가 된 것이 단적인 예다. 계열사의 단기적 이익을 좇은 의사 결정이 그룹 전체 규제로 이어진 셈이 됐다.
카카오가 이렇게 좌충우돌하는 원인이 뭘까. 전문가들은 카카오가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했음에도 지나치게 분산된 조직 구조를 고수하고 있는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학계에서 조직 구조를 구분하는 개념적 정의로 ‘집권화(Centralization)’와 ‘분권화(Decentralization)’ 등을 꼽는다. 전자는 수직적, 중앙집권적인 구조다. 대부분 국내 대기업집단이 여기에 속한다. 후자는 수평적, 분권형 구조다.
이 가운데 카카오는 후자 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가령, 카카오는 신사업을 추진할 때 조직 내 별도 조직으로 ‘CIC(Company in Company)’를 두고 권한을 거의 다 맡긴다. 권한 분산에 기반한 별도 조직 형태로 신사업을 추진하는 것 자체는 전략적으로 효율적인 방향인 것은 맞다.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을 경우 분권 경영을 통해 자율성을 확보한 뒤 각자 영역에서 사업 기회 포착 등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카오는 조직의 집권화 기능은 아예 실종됐고 분권화 정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분석이다. 물론 단절적인 기술 변화가 빈번한 IT업계에서는 수직적, 중앙집권적인 조직 형태보다 분권화에 기반한 자율 경영을 상대적으로 선호한다. 하지만 분권화가 ‘전가의 보도’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지나친 분권화는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령, 통제력 상실에 따른 전사적인 자원 활용의 비효율, 분권화된 조직의 미흡한 경영 역량에 따른 효율성 상실, 부분 최적화와 부분 이기주의 등이 학계에서 꼽는 지나친 분권화의 폐해다.
한 수도권 경영대학 교수는 “모든 조직은 구성 원리상 원심력과 구심력(집권화)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균형이 깨질 경우 지나친 자율성이 분권화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분권화와 집권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길항관계를 갖고 균형을 이뤄야 하며 기능적 분권화와 전략적 집권화를 통해 최적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카카오그룹 안팎에서는 이와 유사한 우려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카카오 출신 IT업계 관계자는 “카카오는 분권화 정도가 너무 높다 보니 조직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와 비전 전파나 의사 결정이 힘든 구조”라고 털어놨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끊이질 않았다. 가령, 카카오는 공식적으로 최고재무책임자(CFO) 직함이 없다. 대신, 최고투자전략책임자(CIO) 직함을 단 배재현 부사장이 그 역할을 맡았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가 IPO 추진 과정에서 서로 신경전을 벌인 것이나, 카카오뱅크처럼 다수의 기관투자자 참여로 주주 구성이 복잡해져 ‘블록딜 공포’가 번진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계열사 주요 임원들이 김범수 의장보다 외부 주주를 더 신경 쓴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전문가들은 카카오가 내수 시장에 특화한 플랫폼 기업 그룹이라는 점에서 분권화와 집권화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국내 특유의 집단적인 대기업 경영 체제는 계열 기업의 독립성을 인정하기보다 그룹 전체 이익을 우선순위에 두고 경영 활동을 벌여왔다. 지금까지 정부와 학계에서는 이 같은 집단적인 경영 활동이 개별 기업 자율성을 침해할 것이라 보고 주로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판해왔는데, 달리 보면 계열사 간 이해 충돌 조정이나 계열사의 그릇된 의사 결정을 제어하는 순기능이 존재한다. 집권화의 순기능마저 부정하는 것은 전략적 오판이라는 것이 전문가 시선이다.
ESG 경영 등 비시장 전략에 관한 그룹 전체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카오 같은 탈추격형 기술 기반 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극심한 갈등에 노출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 때문에 하이테크 기업일수록 기술 혹은 서비스 개발 과정에서부터 관련 제도와 규범 등에 관한 전략적 고려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한 서울 소재 경영대학 교수는 “최근 있던 논란을 살펴보면 결국 자회사들이 실적을 높이려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탈이 난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려면 철저히 협업 관점에서 카카오가 경고를 해야 한다. 무리수를 두는 기업에 ‘카카오 이미지를 망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반진욱 기자 half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6호 (2021.09.15~2021.09.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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