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美 중심 세계질서 무너질 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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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코노미스트지는 '미래 미국의 힘'을 주제로 기고문을 실었다.
영국출신의 사학자 퍼거슨(N. Ferguson)은 '미국 제국의 종말이 평화롭지 않은 이유'의 제목으로 9·11테러 직후 시작,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치르고 서둘러 떠난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이 상징하는 미국의 쇠락을 100년 전 전간기(戰間期) 영국에 빗댔다.
당시 영국이 그랬듯, 진보나 보수 모두 미국이 세계질서의 책임을 가진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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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앵커가 다급히 외쳤다. 시차로 잠이 오지 않아 한 밤중에 켠 TV는 마치 영화를 보여주는 듯했다. 3년 뒤, 9·11 직전 방문했던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을 통해 그라운드 제로 현장을 찾았다. 돌이켜보면 이 비극적인 사태는 그 뒤 벌어질 21세기 세상의 전조였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지는 ‘미래 미국의 힘’을 주제로 기고문을 실었다. 영국출신의 사학자 퍼거슨(N. Ferguson)은 ‘미국 제국의 종말이 평화롭지 않은 이유’의 제목으로 9·11테러 직후 시작,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치르고 서둘러 떠난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이 상징하는 미국의 쇠락을 100년 전 전간기(戰間期) 영국에 빗댔다. 당시 영국이 그랬듯, 진보나 보수 모두 미국이 세계질서의 책임을 가진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퍼거슨은 패권국의 지위에서 후퇴하는 것은 결코 평화로운 과정이 아니며 세계가 지역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때 네오콘의 정신적 지주였던 후쿠야마(F. Fukuyama)는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곧 미국시대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전적으로 내치(內治)에 달린 문제로 봤다. 내부문제가 대외정책의 변화를 낳았고, 그 결과 미국주도의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사회는 낙태에서 문화적 정체성에 이르는 거의 모든 사안에 합의를 찾기 어려운 양극화 시대를 맞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미국민이 단결할 기회가 됐어야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마스크 착용·백신 접종이 정치 이슈화하면서 오히려 더 분열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0년간 미국이 구축한 국제규범에 따른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내팽개친 현직 대통령을 이기고 당선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사회가 당면한 구조적인 문제, 즉 양극화를 극복하지 않는 한 미국은 쉽게 돌아올 수 없다.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이 흔들리며 이미 곳곳에서 지정학적 위험은 고조됐다. 특히 중국의 부상과 그에 따른 미·중간 갈등으로 높아진 동아시아 지역의 위험은 이 지역의 번영에 부정적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하자 중국의 핵심이익이 주변국과 충돌하면서 투자가 위축되고 늘어나는 방위비로 성장을 위한 자원은 줄어들고 있다. 더욱이 핵심산업의 글로벌밸류체인(GVC)이 재편되며 공급측면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물가상승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요절한 알레시나(A. Alesina)가 공저한 '국가의 크기'(2003)는 유엔(UN) 회원국을 기준으로 국가의 수가 당초 51개국에서 4배 가까이 늘어난 현상을 국가크기의 적정성으로 설명했다. 한 나라의 크기는 규모의 경제와 이질성에 따른 편익과 비용의 균형에서 결정된다. 나라가 클수록 시장도 크고 국방과 같은 공공재의 생산에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으나 문화·종교·언어·지역 간 격차는 공공정책의 우선순위를 놓고 구성원 간 갈등이 심화된다. 종전 후 미국주도의 국제규범에 따른 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국제무역은 확대됐고 많은 나라들이 생겨났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네 마리 용은 기회를 번영으로 이끌어냈다.
이들의 가설에 따르면 21세기 미·중이 겨루는 리바이어던 시대에 국가의 수는 줄어야 마땅하다. 또다른 시각에서 이 가설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높아지는 지정학적 위험에 대응해 해외시장을 확보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만큼 대국의 시장에 기댈 필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한때 미국이 주도했다가 내버린 21세기에 걸맞은 높은 수준의 다자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살려낸 일본은, 정말 얄미울 정도로 영리했다.
김경수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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