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을 연 '문열이'였고 작은 촛불 아니었을까"

지유석 2021. 9. 1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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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한성공회 여성 사제 1호 민병옥 카타리나 신부

[지유석 기자]

 대한성공회 여성 사제 1호 민병옥 카타리나 신부.
ⓒ 대한성공회 여성 성직자회 제공
 
개신교 교파인 대한성공회가 올해로 여성 사제 서품 20주년을 맞았다. 

대한성공회는 2001년 부산교구 민병옥 카타리나 사제 서품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20년 동안 24명의 여성 사제를 배출했다. 2021년 9월 기준 서울, 대전, 부산 등 3개 교구에서 12명의 여성 사제가 사목 활동 중이다.

대한성공회는 여성 사제 서품 20주년을 기려 지난 4일 오후 서울 정동 주교좌성당에서 기념 '우리들의 사제' 감사 성찬례를 드렸다. 

1호 사제 민병옥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성공회 공동체 안에서 여성 사제 서품이 처음 논의된 시점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서울교구 여성부가 서울교구에 '여성성직위원회' 결성을 요구했고 이에 1991년 주교자문기구로 위원회가 설치됐다.

1994년 박미현 전도사가 부제성직 고시에 응시해 여성으로선 처음 합격 판정을 받았고 1997년엔 유명희 테레사 전도사가 부제성직고시 응시 8년 만에 합격 판정을 받았다. 1998년엔 여성성직 실현을 위한 1천 명 서명운동이 일었고, 마침내 2001년 첫 여성사제 서품이 이뤄진 것이다. 

민 신부가 신학과정을 마친 시점은 1977년. 사제 서품을 받기까지 24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이 길었던 탓일까? 민 신부는 서품 10년 만인 2011년 정년을 맞아 은퇴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여성 성직은 '유리 천장'이다. 국내 최대 보수 장로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교단은 13일 제106회기 교단 총회에서 여성 안수를 불허했다. 타 교단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성공회 여성 사제 서품 20주년을 맞아 여성 사제 1호인 민병옥 신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다. 민 신부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하지만 민 신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대면 인터뷰 대신 13일 화상 통화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완성했다. 

- 여성사제 서품 20주년을 맞는다. 어떤 심경인가? 
"후배들을 생각하면 나는 문을 연 '문열이'였고 작은 촛불이 아니었을까? 이 마음을 졸시 '작은 불씨'에 담았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마른 땅에서
풀잎 미소로 버티고서있는  
먼 길 가야하는 우리는
처음엔 작은 불씨였다.

또 지난 2011년 은퇴했는데, 떠나면서 이렇게 쓰기도 했다.
  
나를 변호하고 싶지만
이제 그럴 수도 없습니다
숙제를 잘못 풀었습니다
복잡함에서 어리석음을 제하면 단순함이 남고  
유능하려는 데서  아집을 제하면
자유함을 얻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르치고 
나는 하지 않으면서 강요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들을 보면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느끼고
내 할일을 깨닫는 것이 
그들이 내 선생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사역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 1977년 신학과정을 마친 뒤 사제서품까지 24년이 걸렸다. 중도포기를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 그리고 포기하지 않도록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포기하려다 붙들린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수도회 입회를 권고받고 이에 주교님께 요청드렸는데 적극 말리셨다. 주교님께선 기다리라 하셨지만 기다려도 변화는 없었다.

또 한 번은 외국에 나간 친구가 여러 비전을 제시하며 초청해 출국하려고 했다. 그러다 하루는 제대 앞에서 결단 기도하는데 제대 의자에 밧줄로 묶여있는 모습이 보여 놀라 포기했다. 하느님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본다. 

그리고 처음 신학공부하기 전 다른 직업을 갖고 싶어 기도하다가 받은 말씀이 생각났다. '레위사람들은 너희들과 어울려 한 몫 받지 못한다 야훼를 섬기는 사제직분이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는 여호수아서 18장 7절 말씀이다. 늘 말씀과 기도가 결론이 되어 주었다." 

유교적 시각, 한국 교회 한계 
 
 대한성공회는 2001년 부산교구 민병옥 카타리나 사제 서품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20년 동안 24명의 여성 사제를 배출했다. 2021년 9월 기준 서울, 대전, 부산 등 3개 교구에서 12명의 여성 사제가 사목 활동 중이다. 사진 왼쪽부터 다섯 번째는 이경호 의장주교.
ⓒ 지유석
 
- 성공회 교단 안에서 여성 사제가 갖는 위치 혹은 위상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대한성공회 교단도 대한민국 정서를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저 같은 경우 사목활동 10년 동안 개척교회 혹은 건물만 있는 빈 교회에 발령받았다. 가정을 가진 남성 사제를 이런 곳(?)에 보낼 수 있겠냐며 양해하라는 말도 들었다.

그래도 성공회 교회는 중용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개방적이고 진취적 성향이 있어 변화하는 중이다. 여성사제들을 향한 고의적인 편견이나 제한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도 존재한다."

-  일반 개신교 교단, 특히 보수 성향의 개신교 교단은 여성 목회자 안수를 금기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그리스도교가 유교적인 시각으로 교회를 바라본다. 이 점은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유다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시대와 율법에 맞지 않고 너무 혁신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공의로우신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노아 후손의 기록을 핑계 삼아 흑인 노예제를 정당화했던 그리스도교인들도 있었다.

(구약성서 창세기엔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잠들은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노아의 작은 아들이자 가나안의 조상인 함은 그 모습을 보고 형과 아우에게 알렸다. 노아는 술이 깨어 이를 알고선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형제들에게 천대받는 종이 되어라"고 저주했다. 이 구절은 백인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구절로 오랫동안 왜곡돼 왔다. - 기자말) 

교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은 이젠 근거도 없다. 공평·정의·평화의 하느님을 믿으면서 편견 차별 불공정을 주장할 수는 없다." 

- 현재 어떻게 지내시는지, 앞으로 여성 사제의 위상은 어느 정도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은퇴 후 십 년이 지났다. 은퇴 직후엔 성지순례나 여행을 다녔지만, 올해 구십 오세인 모친을 모시다 보니 시간 공간의 자유는 없어졌다. 하지만 역으로 힘을 얻기도 한다. 개인 기도시간도 많아졌다. 

여성사제의 위상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제' 앞에 붙일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사명과 열성에 따라, 어떠한 역할이든 감당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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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미주 한인매체 <뉴스M>에 동시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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