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V토크] 스무살 거미손 장지원, 우승 찍고 태극마크까지
"커피 한 잔 사기로 했습니다."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만난 프로배구 우리카드 리베로 장지원(20)의 표정은 밝았다. 지난달 열린 컵대회에서 팀의 우승에 기여하면서 '라이징스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지원은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름이 불리면 나가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몰랐다"고 웃었다. 그는 "아직 상금을 받지 않았다"며 동료들에게 한 턱 내기로 했다며 웃었다.
상 이름처럼 그는 떠오르는 별이다. 프로 데뷔 2년 만에 우뚝 솟았다. 첫 해엔 소속팀 선배인 국가대표 이상욱의 백업이었지만, 지난 시즌엔 장지원의 선발 출전이 늘어났다. 이번 컵대회에선 전경기 선발 출전했다. 장지원은 "스파이크를 받아냈을 때, 그 볼이 연결돼 우리 팀 공격수가 득점하면 정말 짜릿하다"고 했다.
장지원의 또다른 강점은 '토스'다. 최근 리베로들에게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는 토스 능력이다. 세터가 공을 올리기 힘들 때 대신 공격수에게 공을 패스하는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컵대회에서도 먼 거리에서 기가 막힌 백토스를 올려 류윤식의 득점을 이끌어내 박수를 받았다.
장지원은 "아무래도 감독님이 세터 출신이다 보니 많은 지도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토스가 강점이었는데 오히려 자신감도 떨어지고, 스트레스도 받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훈련 때 더 신경을 쓰면서 공격수와 호흡을 맞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장지원은 네트가 아닌 안테나(인·아웃을 판단하는 기준)를 넘겨야하는 줄 알 정도로 배구를 몰랐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축구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본 친구 부모님이 배구를 권했고, 프로선수의 길까지 걷게 됐다. 그는 "처음엔 레프트였는데, 중학교 때 키가 1m54㎝였다. 강수영 감독님께서 리베로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고 했다.
반응속도도 좋고, 유연성과 순발력 모두 뛰어난 그에게 리베로는 안성맞춤이었다. 2019년 익산 남성고 졸업예정자였던 그는 대학 대신 프로행을 택했고,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볼이 오는 길을 정말 잘 본다. 팀에 보탬이 될 선수"라던 신 감독의 예언은 적중했다. 장지원은 "감독님이 뽑아주시고, 기회도 많이 주셨다"며 쑥스러워했다.
장지원은 다른 리베로들의 동영상을 즐겨본다. 가장 눈여겨 보는 선수는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는 제니아 그레베니코프(31·프랑스). 그레베니코프는 멋진 수비로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하지만 롤모델은 일본 리베로 오가와 도모히로(25)다. 장지원은 "아무래도 같은 동양인이라 오가와의 플레이를 보면서 좋은 점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장지원이 신인이었던 2019~20시즌 우리카드는 정규시즌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포스트시즌이 열리지 않았다. 지난 시즌엔 챔피언결정전에 올랐으나 2승 1패로 앞서다 4·5차전을 모두 내줘 준우승했다. 우승이 유력했지만 4차전을 앞두고 외국인선수 알렉스가 복통을 일으킨 게 결정적이었다.
장지원은 "솔직히 운이 좋아 입단 2년만에 챔프전도 갔다. 평생 한 번도 못 가는 선배들도 있는데 운이 좋다.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아쉬움은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솔직히 경기 끝나고 눈물이 살짝 나려고 하더라. 4차전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컸다. 그래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내년 가을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배구 대표팀은 이제 세대교체를 준비하고 있다. 젊고, 패기 있는 장지원 역시 대표팀 승선 후보다. 장지원은 "우리 팀 선수들 모두가 지난 시즌보다 강해진 걸 컵대회에서 확실히 느꼈다. 이번엔 제일 높은 데까지 올라가는 게 목표다. 내가 잘 하면 대표팀에 갈 기회도 열릴거라 생각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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