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Mania | 새남터성당, 거룩한 순교 현장에 세워진 성당

2021. 9. 1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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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일 한국 천주교 전주교구는 ‘한국 가톨릭 최초 순교자인 윤지충, 권상연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보도했다. 발견된 유해는 신유박해 때인 1801년에 사망한 윤지충의 동생 윤지헌을 포함,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세 순교 복자인 것. 윤지충, 권상연은 신해박해인 1791년에 배교를 강요받았으나 순교를 선택한 인물로, 한국 천주교사의 첫 순교자인 셈이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 철교 북단 인근에는 기와를 얹고 첨탑이 뾰족한 3층 한옥이 있다. 강변북로나 지하철을 타고 한강 철교를 지나며 한번쯤 본 건물이다. 바로 이곳이 새남터순교기념성당이다. 1950년 새남터가 순교 기념지가 되고 1956년에 가톨릭 순교 성지 기념비를 조성하고, 1981년 한강성당에서 새남터성당이 분리되면서 1987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현재의 기념 성당을 건립하고 봉헌했다. 그리고 2006년 새남터 기념관 전시실도 열었다. 여기에 모셔진 11명의 순교자들은 1984년 방한한 요한 바오로 교황으로부터 성인으로 서품되었다.

새남터는 억새와 나무가 많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를 음역해 ‘사남기沙南基’라고도 불렀다. 조선 초기부터 이곳은 군사들의 연무장이자 중죄인을 처형하는 장소였다.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에 반기를 든 사육신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곳 역시 새남터다. 새남터가 천주교 순교 성지가 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천주교 4대 박해 때 희생된 분들이 모두 이곳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10명의 외국인 사제와 11명의 목자들이다.

1795년 천주교 북경 교구는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조선에 파견한다. 주 신부는 최인길 집에 여장을 풀고 선교에 들어갔지만 밀고에 의해 쫓기는 몸이 된다. 그 과정에서 주 신부를 따르거나 거처를 제공했던 이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다. 꾸준한 선교로 신도는 증가했지만 탄압 역시 가혹했다. 교우들이 계속 희생되자 주 신부는 자신이 조선을 떠나면 박해가 멈출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북경행을 결심하지만 신도들 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의금부로 들어간다. 그리고 새남터에서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이때가 1801년으로, 신유박해다. 1831년 조선교구가 북경교구로부터 독립한다. 그리고 1836년 프랑스인 모방, 샤스탕 신부와 조선교구 2대 교구장인 앵베르 주교가 조선에 들어온다. 당시 신도는 9000여 명. 이들은 최양업, 최방제와 후에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는 김대건 등 세 명의 소년을 선발, 마카오로 유학을 보낸다. 하지만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프랑스 신부 모두 새남터에서 죽임을 당한다. 이들의 시신은 용감한 교인들이 거두어 후에 삼성산에 매장했다.

1845년 김대건은 중국 상하이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조선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고 그 해 10월 조선으로 돌아온다. 선교 활동을 하던 그 역시 사제가 된 지 1년 만인 1846년 9월16일 새남터에서 처형되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천주교 순교사인 『기해일기』를 남긴 현석문도 같이 죽임을 당한다. 이후 순교의 역사는 이어졌다. 병인박해 때는 새남터에서 베르뇌 주교, 브르투니에르, 볼리외, 도리, 푸르티에, 프티니콜라 신부와 우세영, 정의배 신도가 순교했다.

새남터 순교 성지에 들어서면 한복을 입은 김대건 신부 동상과 예수님을 안고 있는 한복의 성모상, 주문모 신부의 흉상이 있다. ‘삶은 순교입니다 순교는 사랑입니다’와 ‘이곳은 새남터 형장입니다’라는 글도 눈에 들어온다. 기념관에서는 한국천주교회 창설과 4대 박해사, 103위 순교 성인화, 천주교회의 시복과 시성의 역사, 교우촌, 장터, 순교지 모형과 형구와 형틀, 상복을 입은 선교사, 순교자 14인 동판화와 4대 박해에 관한 기록을 살펴 볼 수 있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새남터성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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