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영화..여전히 스타 감독은 필요하다

2021. 9. 14. 12: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타’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일 수 있는 영화감독. 전 국민이 다 알고, 해외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국인 감독은 사실 몇 없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정도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까? 스타 감독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렴풋이 맥을 짚어 보는, 팬데믹과 마주한 영화 산업의 변화에 대한 얘기다.

▶위기를 맞은 극장과 영화 산업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극장가는 된서리를 맞았다. 2020년 초입부터 현재까지 그랬으니, 극장의 암흑기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영화들은 개봉 일정을 한없이 미루고, 때로는 넷플릭스 같은 OTT로 판권을 넘기며 스크린이 아닌 스트리밍으로 개봉을 대체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말들이 나돌았다. 극장이라는 공간의 종말을 섣불리 예측하기도 했고, OTT를 극장의 대체재로 받아들이자는 의견들도 있었다. 시대가 상황을 변화시켰고, 그 상황이 다시 시대의 흐름을 뒤흔든 것이다. 이런 극장의 위기는 곧 한국 영화로 찾아왔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도 관객과 만나지 못하는 작품들이 즐비해졌고, 이는 다시 제작 편수 감소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렇게 팬데믹은 영화 산업 자체를 붕괴시키는 어떤 기폭제가 되는 듯했다.

4월 즈음 봉준호 감독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칸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그리고 6월 즈음 자신의 신작들에 대한 공식 인터뷰를 필자와 하기로 약속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 봉 감독이 한 말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올 연말 전에는 작게는 몇 백만, 크게는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한 편 나와 줘야 할 것 같아요. 아니 나와야만 해요.” 그래야만 다시 극장에 관객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것이고, 영화 산업에도 활기가 돌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다. 그 바람이 완전히 엇나가지는 않았다.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가 최근 개봉했고, 개봉 1달여 만에 300만 관객 수를 달성했다. 이 믿지 못할 불황 속 흥행 소식의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팬데믹의 지속이 사람들에게 가져온 일종의 피로감과 다시금 자신의 삶을 누리려는 욕망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스타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영화 산업 자체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류승완은 한국 영화에서 손꼽히는 영화감독이고, 또 그가 작품을 잘 만들었기에 이런 희망의 빛줄기를 극장가에 선사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여전히 유명 감독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기대를 품게 만든다. 또 그들의 작품이 어떤 형식으로든 선보일 때 우리의 기대감은 관람 혹은 시청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일각에서는 스타 감독들로 편중되어 흘러가는 자본 투여에 불만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는 산업 자체를 유지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스타 감독들은 누가 있을까? 곧장 떠오르는 건 세 명이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이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인지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의 영상 제작 산업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기저에서 에너지를 뿜으며 가동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스타 감독 3인은 이런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니 어떤 작품들로 우리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을까?

▶스펙트럼을 넓혀 가는 스타 감독들

봉준호 감독(사진 CJ ENM)
누가 뭐래도 초미의 관심사는 봉준호 감독이 아닐까 싶다.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물론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한 여러 개 부문을 수상했을 때, 봉준호라는 이름 석 자는 충무로 감독이 아닌 전 세계에서 탐내는 스타 감독이 되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매거진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혼선이 있던 자신의 차기작을 깔끔하게 정리했었다. 일단 그의 ‘기생충’ 이후 신작은 미국 영화다. 한국 영화가 아닌 것이 너무 아쉽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 그리고 차차기작은 한국 영화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다. 그의 차기작은 현재 출간되지도 않은 미국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6월 초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만 해도 시나리오를 열심히 쓰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9월1일 개막한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탈고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최근 그의 심사위원장 수행을 축하하는 텍스트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계획대로 시나리오를 완성했는지 궁금함을 표했다. 1주일 전에 다 끝내고 지금은 이탈리아 리도섬에 있다고 했다. 그의 차기작은 미출간 소설 원작의 영화화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아무 것도 알려진 게 없다. 인터뷰 당시에도 “곤경에 처한 인간 이야기죠. 그 인간이 좀 지질하기도 하고 연민이 가기도 해요. 그런데 유니크한 상황에 처해요”라고만 이야기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아무튼 이 작품은 내년께 촬영을 시작하고 2023년 정도에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사진 CJ ENM)
봉준호 감독은 최근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영화인들이 코로나19로 작년과 올해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가 영화감독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이에게 준 고통, 그것을 하나의 시험대로 삼자”며 “영화인으로서 영화의 역사가 이렇게 쉽게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19는 지나갈 것이고, 영화는 계속될 것이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덧붙였다. 맞다. 최근 ‘모가디슈’의 흥행과 더불어 극장가에도 조금씩 희망이 움트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동시에 영화라는 미디어를 근간으로 OTT 오리지널 영화와 오리지널 시리즈 등으로 그 스펙트럼은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산업은 이제 영화를 포함한 많은 포맷, 플랫폼 등을 한데 끌어안으며 몸집을 더 불리고 있다.

그 대표 사례들이 최근 군대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D.P.’다.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은 영화 ‘차이나타운’, ‘뺑반’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영화감독이 시리즈를 연출한다는 건 그에 수반되는 많은 스태프들 역시 영화 산업 종사자일 가능성이 크다. ‘부산행’, ‘반도’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도 유아인, 박정민을 주연으로 내세워 ‘지옥’이라는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다. 굉장히 많은 영화감독들이 시리즈 연출에 합류하고 있다. 이는 극장을 유일무이한 관객과의 접점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인식론적 변화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동시에 이는 영화 산업의 주요한 일부로서의 극장과 공존할 수 있는 다른 접점의 형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유 체제의 변환이기도 하다. 팬데믹 초기만 하더라도 극장이 망하면 산업 자체가 붕괴되는 게 아닐까라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팬데믹 속에서 산업은 스스로 몸집을 불리고, 확장된 플랫폼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박찬욱 감독(사진 왓챠플레이)
이는 이 글의 주요 화두인 우리 시대의 스타 감독들의 차기작을 살펴봐도 여실히 증명된다. 봉준호 다음으로 궁금한 인물은 박찬욱이다. 봉준호 감독이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 이전까지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그러니까 전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 시대의 작가였다. 아니 현재까지도 그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공고히 구축한 작가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의 신작들은 언제나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는다. 그는 한국 영화 시스템 내에서 한 편을 이미 촬영 완료했고 현재 후반 작업 중이다. 박해일과 탕웨이가 주연으로 나선 ‘헤어질 결심’이 바로 그것. 스릴러와 멜로 장르가 혼합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보다 더 관심을 받고 있는 건 아마 박찬욱의 두 번째 시리즈 연출작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미 영국 BBC 제작의 6부작 스파이 물 ‘리틀 드러머 걸’을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는 ‘왕좌의 게임’ 등으로 유명한 미국 HBO와 함께 또 다른 스파이 물 ‘동조자’를 준비 중이다. ‘동조자’는 2016년 퓰리처 상과 에드거 상을 수상한 비엔 탓 응우엔의 소설 『동조자The Sympathize』를 원작으로 한다. 특히 주연으로 ‘아이언맨’으로 너무 잘 알려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캐스팅되어 더욱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박찬욱은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스스로를 ‘추리, 범죄 소설 마니아’로 칭한다. 그의 모든 영화들에서 이 문학 장르의 요소들이 곳곳에 배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시리즈 전작인 ‘리틀 드러머 걸’이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원작을 영화화했다는 점에 더 그렇다. 이는 ‘왜 박찬욱은 스파이 물을 자꾸 만드는 것일까’라는 독자들의 의문에 대한 화답이다.

미디어 플랫폼이 확장되면서 나타나는 특이점은 제작 국가 간의 경계마저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찬욱의 ‘동조자’만 봐도 그렇다. HBO 시리즈지만, 박찬욱 감독의 모호필름과 영화 ‘미나리’ 제작사로 잘 알려진 A24, 그리고 HBO가 공동 제작으로 참여한다. 이런 부분 역시 스타 감독들의 차기작을 알아보며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 산업의 맥을 짚어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영화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감독들, 한국 영화의 위기에 답하다

해외 OTT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넷플릭스’, 국내 방송사들의 연합 OTT ‘웨이브’, 그리고 CJ ENM과 JTBC가 손을 잡은 ‘티빙’ 등은 시장 점유율과 위상을 위해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진입한다. 바로 ‘애플TV플러스’가 그것. 해외에서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던 애플TV플러스의 한국 진출 1호작이 바로 김지운 감독의 시리즈 ‘Dr.브레인’이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역시 영화가 아니라 6부작 시리즈다. ‘Dr.브레인’은 큰 인기를 모았던 홍작가의 웹툰 원작으로, 시리즈의 주인공은 배우 이선균이 맡았다. 이 시리즈는 단순 의학물이기 보다는 SF 장르가 결합된 작품이기에 더 흥미롭다. 더욱이 김지운 감독은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등으로 흥행과 작품성을 보증하는 인물이 되었다. 물론 ‘인랑’에 들어 약간 삐끗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김지운이 느아르, 호러,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스타 감독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인랑’의 경험은 이번 ‘Dr.브레인’의 SF 장르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예측되기도 한다.

김지운 감독(사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각설하고 애플TV플러스 역시 한국 진출을 위한 첫 작품 선정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구독자 확보를 위해서도, 마케팅적 측면의 홍보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한국 스타 감독의 작품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 이유에 의한 선택이 바로 김지운 감독인 것으로 보인다. 김지운 감독의 SNS에는 언제나 이 작품 연출과 작업에 대한 소소한 콘텐츠가 업로드 되었다. 굉장히 바쁜 2021년의 봄과 여름을 보내고 있던 듯했고, 이제야 조금 한숨 돌리지 않았을까 싶어 메시지를 보내 보았다. 그가 좋아하는 커피 한잔 하며 담소나 나눌까 싶어서였다. 지금 ‘Dr.브레인’의 후반작업이 한창이라고 했다. 10월 초까지는 이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고. 그 이후에 커피 타임을 가지자는 연락이 왔다. 온갖 장르를 다 버무릴 줄 아는 감독이기에 그가 지금 마지막 다듬기에 열중인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칼럼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스타’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는 감독의 이름들이 꽤 나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극장에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류승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여전히 진행 중인 봉준호, 한국의 시네아스트이자 전 세계적 명성을 가진 박찬욱, 국내 최고 비주얼리스트 감독이라 칭할 수 있는 김지운까지. 더욱이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은 서로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작품을 연출한 경험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널리 이름이 알려진 스타 감독들이 더 있다. 하지만 이 셋은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이름 석 자 통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한국 산업 내에서, 또 한국과 해외의 합작 프로젝트 그리고 할리우드 프로젝트 등을 다양하게 진행하면서 한국 미디어 산업 자체의 확장 가능성 역시 긍정적으로 펼쳐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극장이라는 영화의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존속되어 온 등불은 여전히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건 활로는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 한국의 영화인들은 나름의 길을 잘 찾아 나가고 있다. 그리고 스타라는 수식어를 받고 있는 감독들이 그간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축적한 신뢰가 그 활로를 모색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물론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의 영화와 시리즈들이 성공해 준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포토파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