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OS 갑질'한 구글에 2000억원대 과징금 부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구글의 ‘OS 갑질’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074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구글이 삼성전자 등 기기 제조사에게 안드로이드 변형 OS 탑재 기기를 생산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경쟁 OS(포크 OS)의 시장진입을 방해하고, 혁신을 저해한 책임이 무겁다고 본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구글은 기기 제조사와 플레이스토어 라이선스 계약과 OS 사전접근권 계약을 체결하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파편화 금지계약(AFA)’을 반드시 체결하도록 강제했다. AFA에는 기기 제조사가 출시하는 모든 기기에 포크 OS를 탑재할 수 없고, 직접 포크 OS를 개발할 수도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서 나아가 구글은 앱 개발 도구(SDK) 배포를 금지함으로써 경쟁 앱 생태계 출현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는 구글이 일종의 ‘사설 규제 당국’ 역할을 했다고 표현했다. 그 결과 아마존·알리바바 등 모바일 OS 사업은 모두 실패했고, 기기 제조사는 새로운 서비스를 담은 혁신 기기를 출시할 수도 없었다.
이를 통해 구글은 모바일 분야에서 시장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해나갈 수 있었다. 2010년 모바일 OS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38%였던 구글은 2019년 97.7%로 확대되며 전체 시장의 거의 대부분을 점유하게 됐다. 모바일 앱마켓 시장에서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꾸준히 95~99% 수준의 점유율을 유지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플랫폼 분야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남용행위에 대해 엄정한 조치를 함으로써 향후 플랫폼 분야 법 집행에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의의를 밝혔다.
구글에 대한 경쟁당국 제재는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높은 사안이다. 앞서 2018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AFA 등 구글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 43억4000만유로(약 5조6000억원)의 과징금을 물린 바 있다. 이번 공정위 제재가 EC 제재 사례와 다른 점은 스마트폰·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 뿐 아니라 기타 스마트기기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한 행위까지 포괄적으로 봤다는 것이다.
AFA는 스마트폰 뿐 아니라 모든 스마트 기기에 대해 적용됐기 때문에, 기기 제조사는 스마트워치·스마트TV 등 기타 스마트 기기에도 포크OS를 탑재할 수 없었다. 공정위는 기타 스마트기기 분야가 차세대 핵심 플랫폼이 되기 위한 ‘OS 주도권 확보 경쟁’이 시작되는 분야로 봤다. 실제 구글도 기존 모바일 영역에서 구축한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해당 분야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진행 중에 있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 시계 관련 사례가 ‘구글의 갑질’을 보여주는 대표적 케이스다. 삼성은 2013년 8월 스마트 시계인 ‘갤럭시 기어1’을 출시했는데, 당시 구글이 70여개 제3자 앱을 탑재한 삼성전자의 행위를 AFA 위반이라고 압박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애써 개발한 스마트 시계용 포크 OS를 포기하고 앱 생태계가 전혀 조성돼 있지 않았던 타이젠 OS로 변경해야 했다.
삼성전자는 기어3 모델까지 타이젠 OS를 출시했지만, 타이젠으로는 앱 생태계 구축의 한계에 직면하게 됐다. 결국 삼성전자는 올해 초 8월 갤럭시 워치4를 출시할 때는 구글의 스마트 시계용 OS인 웨어 OS를 탑재해야 했다. 공정위는 “초기 삼성전자가 개발한 포크 OS로 갤럭시 기어1을 출시할 수 있었다면 스마트 시계 시장의 경쟁상황은 현재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엘지전자 LTX 스마트 스피커, 아마존 스마트TV, 삼성전자 드론·로봇 등 사례에서도 비슷한 행태가 반복됐다.
공정위는 “구글은 제품 출시 전 개발 단계부터 경쟁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고 거래 상대방을 통제해 혁신적인 경쟁 플랫폼 출현을 차단했다”며 “이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경쟁제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과징금 2074억원은 AFA로 인해 경쟁이 제한되는 모바일 OS시장과 앱마켓 시장을 중심으로 산출된 금액이다. 모바일OS는 무료로 라이선스 되기 때문에 관련 매출액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공정위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앱마켓 수익을 기준으로 관련매출액을 계산한 후 중대한 위반행위에 해당되는 부과율을 곱해 과징금을 산출했다.
또 공정위는 시정명령을 통해 기기 제조사에게 플레이스토어 라이선스 및 OS 사전접근권과 연계해 AFA 체결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을 기기 제조사에게 통지해 기존 AFA 계약을 시정명령 취지에 맞게 수정하고, 그 내용을 공정위에 보고하도록 명령했다.
구글과 관련된 공정위의 추후 사건 심의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공정위 ICT 전담팀에서는 해당 건 외에도 앱 마켓 경쟁제한 건, 인앱 결제 강제건, 광고 시장 관련 건 등 총 3건의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구글이 게임사 등에게 경쟁 앱마켓에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은 지난 1월에 조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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