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메르켈 닮은 숄츠, 16년 만에 獨 정권교체 이끄나

박병희 2021. 9. 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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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셰트 경솔한 행동으로 불신 팽배..기민·기사연합 역대 최악 득표 위기
냉정·안정적인 숄츠, 국정 경험도 풍부..과반 연정 위한 정당 포섭 관건
총선 최대 화두는 '기후변화'..'반짝 1위' 녹색당 배어복은 잇단 구설수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자메이카? 케냐? 혹은 미키마우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지난 3일(현지시간) 독일 총선 기사를 보도하며 쓴 제목이다.

독일 유권자들은 1949년 연방 공화국 수립 이후 치른 총선에서 단 한 번도 특정 정당에 과반 이상의 득표를 허용치 않았다. 항상 2~3개 정당이 연합해 정부가 구성됐고 다양한 연정은 정당 고유의 색깔로 표현됐다.

자메이카 국기를 이루는 세 가지 색 검정, 노랑, 녹색은 각각 중도 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기민·기사 연합)과 자유민주당, 그리고 환경을 강조하는 녹색당을 나타내는 색이다. 케냐 연정은 자메이카 연정에서 노랑을 상징하는 자유민주당 대신 빨강을 상징하는 사회민주당(사민당)이 합류하는 연정을 의미한다. 미키마우스는 빨강 바지와 노랑 신발 차림이니 기민·기사 연합, 사민당, 자유민주당의 조합으로 이뤄진 연정을 뜻한다.

독일 총선이 압도적인 지지율을 나타내는 정당 없이 혼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차기 연정 전망도 복잡해지고 있다. 앞서 폴리티코 기사의 제목은 독일 총선 결과가 예단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국기에 비유한 것이다.

사민당 20년만에 원내 1당?

독일 주간 빌트 암 존타그가 12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민당은 전주보다 1%포인트 오른 26%를 기록하며 지지율 1위를 유지했다. 기민·기사 연합의 지지율은 20%에 머물렀다. 사민당과의 격차는 6%포인트로 벌어졌다. 경선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녹색당의 지지율은 1%포인트 하락해 15%를 기록했다. 자유민주당 지지율은 13%로 전주와 같았고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과 반자본주의 성향의 좌파당 지지율은 각각 1%포인트 하락해 11%, 6%를 나타냈다.

2017년 총선을 2주 가량 남긴 시점에서는 기민·기사 연합이 35~36%, 사민당이 약 22~23%로 확고한 1, 2위를 유지했다. 다른 정당 지지율은 8~10% 수준이었다. 당시 기민·기사 연합이 처음부터 끝까지 1위를 유지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녹색당이 초반 반짝 1위에 올랐고 이후 기민·기사 연합이 장기간 불안한 1위를 유지하다 사민당이 치고 올라온 상황이다.

기민·기사 연합이 16년간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후임으로 내세운 아르민 라셰트 후보는 인기가 없다. 그는 총리 후보 지지율에서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후보, 녹색당의 안나레나 배어복 후보에 밀리며 3위에 그치고 있다. 인기 없는 라셰트 때문에 기민·기사 연합의 득표율은 역대 최악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초반 기세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녹색당은 역대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대한다. 사민당은 2002년 총선 이후 20년 만에 원내 1당을 노린다.

총선 화두는 기후변화

총선의 최대 화두는 기후변화다. 공영 방송 ARD가 지난 3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정부가 가장 시급히 다뤄할 할 과제로 유권자들은 환경·기후변화 대책(33%)을 꼽았다. 다음으로 이민자 문제(22%), 코로나19(18%)가 꼽혔다. 2017년 총선에서는 이민자 문제(47%), 환경·기후변화 대책(9%) 순이었다.

기후변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환경주의를 표방한 녹색당이 경선 국면 초반 정당 지지율 1위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1980년생의 젊은 여성 총리 후보 배어백 후보도 신선함을 무기로 한때 총리 후보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의욕만 앞선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하고 있다.

배어백 후보는 지난 11일 유세에서 기후위기를 거론하며 가능하면 10년 안에 모든 국민이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금을 9000유로(약 1247만원)까지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한 유권자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충분히 말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메르켈 총리가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2008년부터 세계 경제위기가 잇따랐음에도 정부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배어백 후보는 보너스 의회 신고 누락, 저서 표절 논란 등 잇따라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경솔한 라셰트·안정적인 숄츠

지난 7월 독일 북부 지역에서는 최악의 홍수가 발생해 라인란트팔츠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바이에른주에서 180명이 목숨을 잃었다. 기후변화는 더욱 주목받는 이슈가 됐다.

기민·기사 연합의 아르민 라셰트 후보는 당시 수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경솔한 행동으로 유권자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애도 발언 중 다른 이들과 수다를 떨며 히죽거리는 모습이 사진기자들에 찍혀 논란에 휩싸였다. 수 차례 사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그를 메르켈의 후임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라셰트 후보가 수해를 입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현직 주지사라는 점에서 논란은 더 커졌다.

아르민 라셰트 독일 기민기사연합 총리 후보가 지난 7월17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에르프트슈타트의 수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애도 발언 중 웃고 있다. 사진이 공개된 후 라셰트 후보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반면 현직 재무장관으로서 사민당의 숄츠 후보는 안정적이고 냉정한 면이 메르켈 총리와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숄츠 후보는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재무장관으로서 적절하게 대응하며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과거 노동장관도 역임해 다른 두 후보와 달리 국정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숄츠 후보는 녹색당과 연정을 꾸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메르켈 총리가 집권하기 전인 1998~2005년 연정을 꾸렸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시간당 최저 임금 12유로, 신재생 에너지 확대 등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양 당 지지율 합계가 40% 정도에 불과해 과반 연정을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1~2개 정당을 더 포섭해야 한다.

사민당 입장에서는 녹색당에 좌파당을 더해 모두 진보 성향의 적적녹 연정을 출범시키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 하지만 좌파당이 원내 진출 최소 요건인 5%를 득표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하고, 5%를 넘더라도 적적녹 연정의 과반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우파 성향의 정당도 연정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사민당, 기민·기사 연합, 녹생당 조합의 케냐 연정도 가능한 셈이다. 기민·기사 연합이 원내 1당이 되더라도 과반 연정을 위해서는 좌우가 힘을 합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총선에서는 연정 협상이 진통을 겪으며 새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꼬박 5개월이 걸렸다. 이번 총선 역시 연정 구성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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