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긴급점검]빅테크, 동일기능 동일규제 필요.."규제 과속은 우려"
동일기능 동일규제 필요하지만 금융혁신 저해, 소비자편익 침해 우려
생존 기로에 놓인 금융플랫폼..일부 전문가 "규제 속도조절해야"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성기호 기자]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대형 정보통신기업)·핀테크에 대한 금융 규제가 강화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기존 금융사처럼 일정 부분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규제 일변도의 급격한 변화는 혁신을 후퇴시키고 소비자편의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에는 동의하나 규제의 범위와 속도가 지나칠 경우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플랫폼 규제 쇼크…“방향성 맞지만 속도 조절해야”
14일 아시아경제가 교수·연구원 등 경제 전문가 10인을 대상으로 빅테크·핀테크 규제에 대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비자 보호와 건전한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합리적 규제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여러 차례 언급한 ‘동일기능 동일규제’의 원칙에 뜻을 같이하는 전문가도 상당수였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빠져나갈 구멍이 반드시 생긴다"고 밝혔다. 빅테크·핀테크의 금융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를 예로 들었다. 해당 서비스는 광고가 아닌 중개에 해당할 수 있고, 이럴 경우 등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금융당국이 6개월의 금소법 적용 유예기간까지 주면서 밝혀온 만큼 규제 적용 명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 역시 "규제 차익이 존재했던 금융플랫폼에 동일규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에 대해서는 조절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규제 방향성은 바람직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규제 강화로) 관련 기업은 급사에 해당하는 저체온증 상태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빅테크·핀테크 생태계 붕괴와 금융혁신이 후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플랫폼의 역할은 정통 금융회사와 사업 방식과 목표 등이 다를 수 밖에 없는데 동일기능으로 규제한다면 혁신은 일어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또한 "플랫폼은 원래 소비자에 정보를 제공해 편의를 주는 게 핵심인데 소비자 편의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추가 규제 예고한 금융당국…생존 기로에 선 금융플랫폼
금융당국은 전통 금융권의 ‘기울어진 운동장’ 주장에 대해 의견 취합에 나서는 등 빅·핀테크 고삐를 더 조일 태세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은행연합회, 여신금융협회, 생명·손해보험협회, 핀테크산업협회 등 관련된 협회를 대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관련 업계 의견을 취합해 달라고 요청했다. 관련 협회는 취합한 의견을 이번주 내 제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고승범 위원장이 취임 당시 업계와 충분히 소통해 빅테크·핀테크와 금융사들의 갈등 해결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후속조치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의견 취합에서는 빅·핀테크를 겨냥해 평소 불공정했다고 판단했던 다양한 의견들이 총 망라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핵심은 최근 논란이 됐던 대환대출(대출 갈아타기) 플랫폼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금융사들은 해당 플랫폼이 과도한 경쟁과 수수료 인상, 금융사의 종속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이데이터 서비스에서도 역차별 목소리가 높다. 은행권은 금융거래의 수취인·송금인의 이름과 메모가 담긴 ‘적요정보’까지 제공하지만 핀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창구에서는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도 불만 중 하나다.
보험업계는 금융위가 추진 중인 전자금융업자의 보험대리점(GA) 등록에 대한 우려 목소리를 전달할 예정이다. 카드업계에서는 후불결제·전자금융업자인 간편 결제 업체의 수수료율 관리에 대한 의견을 나올 것으로 점쳐진다.
고공 성장하던 금융플랫폼 생사 기로
금융당국이 각 업계의 입장을 대거 수용할 경우 빅테크·핀테크 업계의 금융업 확장에 빨간불이 켜지는 것은 물론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금소법 위반 위기에 있는 카카오페이는 최근 운전자보험(삼성화재), 반려동물 보험(삼성화재), 운동보험(메리츠화재), 휴대폰보험(메리츠화재), 해외여행자보험(KB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 현대해상화재보험) 등의 판매를 잠정 종료했다. 보험을 어려워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리치앤코 소속 전문 상담원을 통해 제공했던 ‘보험 해결사’ 서비스도 잠정 종료했다.
금감원이 보험업계에 금융플랫폼과 맺은 보험상품 제휴 현황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 금융플랫폼과 보험업계간 협업에도 균열이 생긴 셈이다.
빅·핀테크 규제가 금융사 전체로 파장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지용 교수는 "예컨대 카드사들도 빅테크와 손잡고 상업자표시 신용카드(PLCC) 사업을 하고 있는데 플랫폼에서 판매가 중단되면 타격을 입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비자들의 편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금융업은 그 특성상 건전성 규제 등 적절한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나, 가격 등 영업행위를 규제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시에 규제가 시행되는 것은 금융업 전체에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봐야 한다"며 "소비자 관점에서 조금 더 경쟁을 풀어놓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한다"고 전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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