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야당은 정권 되찾을 생각이 없다
의존하고 절실함 없는 야권
유권자 피로감 높아지게 할 뿐
대통령은 야권의 공격을 감내
하고, 여권은 집권 후 전략
제시하는 정교한 역할 분담
여당 후보는 미래 얘기하는데
야당 후보는 방어에만 급급
수권정당의 모습 보이지 못해
국민의힘은 정권을 되찾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허술하게, 이렇게 허접하게 대선후보 경선 국면을 가져갈 리 없다. 당 차원의 대선 전략도 없는 듯하다. 정권 심판, 반문재인 정서라는 진부한 선거운동 재료에만 기대고 있다. 그것을 잘 활용할 실력마저도 달린다.
대선 결과는 남의 일인 듯 승리에 대한 절실함이 없어 보인다. 이기면 좋고, 져도 그나마 남아 있을 쪼그라진 보수당의 당권이나 당내 세력 유지가 목표인 듯하다.
지난 총선은 보수 궤멸이란 평가를 가져왔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야당은 정권 심판론을 부르짖었다. 이 조건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건 결과가 말해준다. 밑바닥에서 확산하는 중도층 중심의 야권 심판론을 애써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정신승리법(그것도 잠시 선거운동 기간에만)이었다. 그보다는 대선을 앞둔 당권에 더 관심이 있었고, 골수 보수세력은 보고 싶은 것만 봤다. 중도층 시각은 “탄핵당하고도 정신 못 차리는”이었다. 보수 야당은 정권 심판론을 과대평가했고, 정권에 실망한 여론을 온전히 보수 세력의 지지로 착각했다.
그런 보수가 조금 변하는가 했더니 아닌 모양이다. 그 안일한 보수, 그 절실함 없는 보수, 정권 못 찾아도 내 기득권은 그대로라는 그 품격 없는 보수. 대선이 6개월 채 남지 않은 지금 “역시나 보수는”이라는 시각이 늘어간다.
미래를 다투는 선거에 들어섰음에도 반문재인만 있다. ‘어떻게 하겠다’가 없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의 입에선 정권의 실정과 무능만 나온다. 안보나 경제에 대한 철학이나 거시적인 정책 얘기가 거의 없다. 당에서 뒷받침해 주고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수권정당 이미지는 없고, ‘궤멸당할 만한 보수’의 모습이 다시 어른거린다.
반문 정서나 무능 내로남불 정권 같은 주장이 사실일지라도 대선 승리의 충분조건마저 담보하진 못한다. 선거운동의 에너지원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오래 끌고 메뉴가 한 가지면 이것도 생명력을 잃는다. 피로도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느 때부터인가 외부 노출이나 메시지가 그전보다 확실히 줄어들었다. 답답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고, 야권은 박근혜 정권과 똑같은 불통이라고 공격한다. 하지만 이것은 여권 전체의 선거 전략으로 바라봐야 한다. 임기 끝나는 날까지 묵묵히 일만 하는 대통령 이미지, 거기다 공격만 하는 야권 후보들. 진부한 공격은 보는 이로 하여금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대통령이 야당의 공격을 감내(사실은 유도)하는 동안 여권 후보들은 ‘집권하면 어떻게 하겠다’를 말한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교한 역할분담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는 안 된다’ ‘다 갈아엎겠다’ ‘단죄하겠다’는 주장은 ‘~을 꼭 하겠다’ ‘이렇게 바꾸겠다’는 슬로건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대선 결과는 늘 그랬다.
국민의힘과 후보들은 여당의 노회한 전술에 말리고 있다. 여권 핵심부와 열성 지지층은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는 의혹 한 개에 근거 없는 묻지마 의혹 열 개를 보태 무차별 공세를 가한다. 다 계획이 있는 거다. 선거는 사실의 게임이 아니라 인식의 게임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은 당 밖의 경쟁력 있는 후보들을 당 안으로 끌고 들어와 그저 그런 후보들로 끌어내렸다. 후보들의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문제 많기는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권은 총력전을 한다. 대통령은 화살이 자기에게로 향하는 걸 감내하며 말없이 온몸으로 여권 후보를 지원한다. 여당과 열성 지지층은 전방위 공격으로 야당 후보들이 방어와 해명만으로도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손발을 묶어 둔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효율적 방어나 큰 틀의 전략 없이 도토리 키 재기 식의 경선만 관리한다. 대선 후보들이 나섰으면 수권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무능·위선 정권이라고 공격해도 그건 현 정권에 해당하는 거다. 여권 후보는 그 지점을 차별화할 것이다. 야당은 여권이 만들어 놓은 운동장에서 목표 지점을 잃은 채 바보처럼 경기하고 있다. 현재로선 여권 전략에 말렸다. 이렇게 해서 정권을 되찾겠다고? 역시 정신 못 차린 보수의 정신승리법이다.
김명호 논설고문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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