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은 확신 있는 목회자가 복음 필요한 곳으로 갈 때 일어나"

백상현 2021. 9. 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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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야성으로 교회 분립 개척하는 권오헌 서울 시민교회 목사
권오헌 서울 시민교회 목사가 12일 서울 광진구 천호대로 예배당에서 목회 야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권오헌 서울 시민교회 목사는 학생신앙운동(SFC) 간사 출신이다. 부친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간경화로, 모친은 경북대 1학년 재학시절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너의 부모는 너를 떠났으나 나는 너를 떠나지 않고 함께할 것이다”는 기도응답을 받았다.

19세 때 가장이 된 그를 잡아준 것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의 SFC였다. 81년 경북 안동 길원여고 교사였던 그가 6개월 만에 교편을 접고 대구에 내려온 것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권 목사는 “당시 돈이 없었다. 남동생은 등록금이 없어 군에 갔고 여동생은 휴학 상태였다”면서 “밤새 울면서 하나님께 매달렸는데, ‘그깟 돈이 없다고 울어서 되겠느냐’는 응답이 있었다. 그 이후로 희한하게 문제가 풀렸다”고 회고했다.

86년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뛰어든 곳은 캠퍼스였다. 87년 28세 때 SFC 대구·경북지구 대표 간사, 90년 부산지구 대표 간사가 됐다. 92년엔 전국대표 간사가 됐다. 신혼집에는 대학생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당시 제자가 제자를 낳는 경험을 수없이 했는데, 복음이 좋았고 학생이 좋았다”면서 “그때 교육내용이 부족해도 상대가 좋으면 어느새 닮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어 “당시는 하나님 나라의 최전방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자존심 하나로 사역했다”면서 “간사들은 ‘돈만 없을 뿐 주께서 알아서 다 해주신다’는 야성으로 캠퍼스 곳곳을 누볐다”고 웃었다.

94년 영국 유학길에 올라 올네이션스 크리스천 칼리지(ANCC)에서 선교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는데, SFC 본부에서 발령이 나지 않았다. 98년 10월 할 수 없이 SFC 출신 동문 여섯 가정과 집에서 대구 불꽃교회를 개척했다.

권 목사는 “그때도 다들 ‘목회 임지가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기도해보니 월급은 없더라도 목양할 곳은 많다는 감동을 주셨다”면서 “개척교회를 하다가 굶어 죽은 목회자가 하나라도 나와야 한국교회가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심정으로 목회하니 겁날 게 없었다”고 전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라 다들 교회개척을 뜯어말렸다. 하지만 2명의 선배목회자가 ‘아무도 교회를 개척하지 않을 때 개척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격려했다. 캠퍼스에서 배운 대로 말씀으로 제자를 양육했더니 350여명이 모이는 교회가 됐다.

그는 “교회 개척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사람과 재정문제에 찌들어 목회자의 표정이 어둡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되는 교회는 목회자의 얼굴이 늘 밝고 밥값도 자기가 낸다. 그때 성도들은 초월자이신 하나님께서 돈과 사람 문제를 책임지신다는 걸 깨닫고 출석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에서 11년 1개월 목회 후 2009년 성도 98%의 찬성을 얻어 서울 시민교회에 부임했다. 권 목사는 “분쟁이 있던 교회였는데, 강단에 서자마자 성도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때 ‘너와 상관없이 내 자녀는 내가 이끌어 준다’는 영감을 주셨다”면서 “그때 목회는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011년 12월 전임 목회자 시절 채용한 부교역자의 거취 문제로 갑자기 교회에 분란이 생겼다. 그가 선택한 것은 138㎡(약 42평) 사택을 59㎡ 부목사 사택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논란이 잠잠해졌다.

권 목사는 “캠퍼스 전도 때도 한방에 10명씩 살았다. 불편했지만 익숙해지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목회자가 너무 편안함만 추구하면 성도들이 시험에 들 수 있다”며 웃었다.

전도팀이 열심히 전도했지만 정착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전도자가 직접 새가족까지 챙기는 새가족 교구를 신설했다. 그러자 300명으로 불어났고 교구를 분립했다.

권 목사는 “새가족 교구의 성장을 보며 모든 교인이 전도하는 게 아니며 전도를 해본 사람이 전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전도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따로 모아놨더니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2016년 교회는 설립 40주년을 맞아 경기도 구리에 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34억원의 개척자금과 성도 154명을 지원했다. 권 목사는 “사실 34억원으로 시민교회 주차장을 살 수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자동차 몇 대 더 주차할 수 있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다. 개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전체 교회라는 ‘숲’이 자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의정부 숲교회는 분립 개척했고, 서울제일교회 서울등대교회는 부교역자와 성도를 함께 파송했다.

그는 목회가 안 되는 이유가 주변 환경보다 목회자 자신에게 있다고 봤다. 권 목사는 “목회는 사람을 만나 돌봐야 하는 목양이다. 목회 열정, 복음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신학교에 가면 안 된다”면서 “목회지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복음이 필요한 곳,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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