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곤 칼럼] 백신을 둘러싼 끝없는 눈속임

고현곤 2021. 9. 1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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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화이자·모더나 백신 1·2차를 6주 간격으로 맞는 국민은 총 2511만 명이다. 인구의 절반이다. 경제활동 왕성한 20~50대 대부분이 해당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달 초 “백신 공급이 불확실해지면서 한시적으로 화이자·모더나 접종 간격을 3, 4주에서 6주까지 늘린다”고 말했다. 양해를 구했다기보다는 일방적 통보에 가까웠다. ‘한시적’이라고 했지만 한 달이 훌쩍 넘도록 3, 4주로 돌아갈 기약이 없다. 기껏 나오는 얘기가 잔여 백신을 활용해 6주에서 좀 당겨보자는 정도다.

화이자 1·2차 간격은 3→4→6주로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3→4주 때의 정부 설명이 가관이었다. ‘접종자와 의료기관이 화이자 3주, 모더나 4주를 혼동할 수 있어 4주로 통일했다’는 것이다. 백신이 부족해 4주로 늘려 놓고, 마치 국민에게 큰 편의를 봐주는 것처럼 둘러댔다. 국민을 3주와 4주 헷갈릴 정도의 바보로 아는 건가. 솔직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 될 일이었다. 화이자 3주, 모더나 4주는 제약사가 최적의 조건을 따져 정한 가이드라인이다. 당연히 지키는 게 최선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기준도 같다. CDC는 불가피한 경우 최대 6주(42일)까지 늦출 수 있으나 ‘6주를 넘겨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독일은 미국과 같고, 영국은 최대 8주까지 허용한다.

「 추석 전 1차 접종률 70% 달성 위해

국민 절반, 6주 간격 벼랑 끝 실험

6주는 미 CDC 유효기간 마지막 날

2차 늦춘 바람에 1·2차 26%p 큰차

우리는 20~50대 대부분이 CDC 유효기간 마지막 날인 6주(42일)째 2차를 맞는다. 그래도 괜찮은 건지 불안하다. 정 청장은 “화이자의 경우 임상시험을 할 때 6주 데이터가 일부 반영됐다”며 “접종 간격에 따른 효과 차이에 대한 문헌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알아듣기 어렵게 설명했지만, 결국 과학적 근거가 확실치 않다는 얘기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은 국회에서 질의를 받고 “6주 만에 맞아도 효과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또한 모호한 대답이다.

만약 2차 때 몸이 안 좋거나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도 유효기간 6주를 꽉 채웠으니 더 미룰 수 없다. 일시적으로 백신 도입에 차질이 생긴다면 늦출 수도 없고 큰일이다. 모더나는 공급 물량을 직전에 통보해 주는 데다 들쑥날쑥하다. 이른바 ‘모더나 리스크’다. 이래저래 6주 간격은 아슬아슬하다. 20~50대를 대상으로 한 벼랑 끝 실험인 셈이다.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문화체육센터에 마련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12일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층 포함 18세 이상 성인 가운데 75%가 1회 이상 백신 접종을 받았으며, 접종 완료자도 전체 인구의 39%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방역당국은 추석 연휴 전까지 전체 인구 대비 1차 접종률 70% 목표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6주 간격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은 1차 접종을 늘리기 위해서다. 2차 접종 백신을 1차로 돌려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추석 전 1차 접종률 70%’ 달성에 목을 맨다. 구윤철 실장은 “1차만 해도 효과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국민이 1차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그런 정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1차 접종률이라는 게 의미 있는 수치가 아니다. 화이자 1차는 델타변이 예방 효과가 31%에 그친다. 2차까지 맞아야 비로소 88%까지 오른다. 1차를 늘리기보다 접종 간격을 당겨서 한 명이라도 더 2차까지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최재욱 고려대 의대 교수).

주요국 코로나 백신 1·2차 접종률


정부가 사정을 모를 리 없을 텐데, “1차 접종률에서 미국, 일본을 추월했다”고 자랑하기 바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를 다투는 2차 접종률 대신 1차 접종률을 앞세워 접종이 잘되는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마라톤으로 치면 완주한 사람이 몇 명인지가 중요한데, 이건 제쳐두고 반환점을 돈 사람이 많다고 떠벌리는 셈이다. 일종의 눈속임이다. 2차는 미루고, 1차 접종을 잔뜩 늘리다 보니 1차(65%), 2차(39%) 접종률 차이가 26%포인트에 달한다. 외국은 1·2차 차이가 크지 않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11일 현재 미국은 1차(62%), 2차(53%) 차이가 9%포인트다. 독일은 5%포인트, 싱가포르는 1%포인트에 불과하다. 일본은 1차가 62%로 우리보다 뒤졌지만 2차는 50%로 훨씬 높다.

정부는 그동안 백신을 제때 구하지 못한 실책을 감추기 위해 여러 눈속임을 써 왔다. 지난해 셀트리온 렉키로나주라는 치료제 덕분에 ‘코로나 청정국’이 될 듯 떠벌렸다. 올해는 그 얘기가 쑥 들어갔다. 치료제로는 청정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국민이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문 대통령 방미 때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위탁생산을 맡자 “한국이 백신 글로벌 허브가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이것도 눈속임이다. 위탁생산 백신은 국내에서 생산할 뿐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가 쓰려면 모더나와 별도 계약을 해야 한다. 모더나는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삼성이 풀어줬으면 하지만, 엄연히 정부가 모더나와 협의할 사안이다.

국산 백신은 또 다른 희망 고문이다. 문 대통령은 “백신을 소수의 해외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우리가 백신 수급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무능을 인정하지 않고, 백신 부족을 해외 제약사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러면서 “백신 자주권 확보가 중요하다”며 5년간 2조2000억원을 투입해 ‘백신 5대 강국’이 되겠다고 했다. 좋은 얘기지만, 국민에게 당장 필요한 건 6주까지 기다리지 않고 제때 맞을 수 있는 손에 잡히는 백신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2년 가까이 정부의 끝없는 눈속임과 희망 고문에 국민은 많이 지쳤다.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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